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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1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다. 보건의료운동의 확장성과 변혁성을 강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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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분신했다. 2023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업무방해와 공갈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한다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법원 앞에서 몸에 불을 붙였다. 이 정권의 노조탄압이 사람을 죽였다.

 

분신한 노동자가 끝내 사망한 직후, 정부는 출범 1년을 자찬하는 성과집을 발표했다. 이름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복원의 1년’. 정부가 꼽은 ‘30대 핵심성과’ 1호는 ‘노동개혁’이다. 노동자를 죽이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힘을 키운 게 이 정권의 ‘성과’다.

 

민주노총은 정권퇴진 투쟁을 전면화했고, 한국노총도 대정부 총력투쟁을 선언했다. 각계각층에서도 시국선언과 정권퇴진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출범 1년 만에 저지른 일들을 볼 때 남은 4년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다는 절박함이다. 10.29 이태원 참사, 일제 강제징용 자체배상안, 주52시간제 폐기… 단 몇 가지만 꼽아도 결코 지나친 염려가 아니다.

 

 

이러한 정세에서 보건의료 영역에서도 지난 1년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작년 여름 아산병원 간호사의 안타까운 죽음, 대학병원의 연이은 소아청소년과 진료 중단, 최근 대구 10대 응급환자의 구급차 내 사망사건까지… 모두 한국 보건의료체계를 근본적으로 돌아볼 계기를 제공했지만, 이 정권은 ‘필수의료’와 ‘공공정책수가’라는 대중 기만적 프레임으로 변혁의 동력을 저지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출범 1년 30대 핵심성과에는 ‘필수의료 기반 강화’도 포함돼 있다. 응급의료체계 구축, 재난적의료비 지원 확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이 세부성과로 제시됐다. 전임 정부의 모든 것을 지워버릴 듯하던 포부와는 달리, 어느 하나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이다.

 

내용이 새로울 것 없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을 새롭게 포장하는 정치에 비판의 초점이 있다. 공공의료 대신 필수의료와 공공정책수가를 내세우는 것은 누구의 이해관계와 권력 강화에 복무하는가? 이 정책의 추진을 위해 복지부와 의사협회가 내내 긴밀하게 협의하는 것부터가 모든 것을 말한다.

 

‘약자복지 강화’라는 성과 역시 마찬가지다. 기준중위소득 인상이나 긴급복지지원 확대와 같이 새로울 것 없는 세부성과보다, 그 배경에 대한 설명이 더욱 많은 것을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는 복지로는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없다는 문제 진단.

 

건강보험의 보장성 대신 지속가능성을 내세우고, 필수의료, 재난적의료비로 정당화한다. 기여를 하는 자와 지원을 받는 자로 가르고,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한다. 급여를 줄 만한가, 그 기준과 요건만 묻고 따진다. 무조건도 없고 보편도 없다. 권리도 없고 정의도 없다. 오직 공고화된 분할선만 남는다.

 

구조적 불평등도 사라지고 개인들만 남는다. 구조적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여성, 장애인, 노조는 약자인 척 하는 기득권층이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순수한 약자만이 그 자격이 있다.

 

이 와중에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운영위원회 구성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배제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관련 자료 바로보기).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견제할 노동자의 조직된 권력을 빼앗고, 나아가 노동자를 갈라 정권의 지향에 맞게 길들이려는 비열한 시도다.

 

정부의 ‘필수의료’와 ‘공공정책수가’라는 프레임에 발맞춰, 공급자들은 모든 것이 체계 탓이고 수가 문제라는 논리를 효과적으로 전개하는 중이다. 벌써 몇 달째 간호법이 모든 이슈의 블랙홀이 되고 있지만, 직종 구도를 넘어 계급 질서, 노동-자본 관계를 직시할 때다. 보건의료 역시 사회 속에 있고, 노동자의 권력은 건강보험을 넘어 사회 전체를 향한다. 보건의료운동은 사회변혁운동의 일환으로 (다시) 자리매김하는 시대적 과제를 맞고 있다.

 

의료의 시장성과 상품성을 줄이고 보건의료체계 내 권력 관계를 재편하는 것, 나아가 불건강과 건강불평등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사회구조적 모순을 제거하고 노동자와 시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보건의료운동은 정치운동이자 노동운동, 시민운동이 되어야 한다. 또한 궁극적으로 사회변혁운동이 되어야만 한다.

 

간호법 이슈가 단지 간호인력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보건의료 노동문제이자 정치문제, 시민들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문제라는 점에서, 아산병원 간호사의 사망이 필수의료 부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장시간 노동과 높은 노동 강도가 그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정권의 노동운동 탄압이 노동자를 분신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점에서 보건의료운동의 확장성과 변혁성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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