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관련 의료법이 개정될 때까지 시범사업을 지속할 작정인 듯 하니, 제도화 문턱을 거의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원격의료가 비대면 진료라는 단어로 대체되어 가고 있는 시점에서 그동안 원격의료의 문제점을 꾸준히 비판해 온 우리 연구소는 이 상황을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 팬데믹의 영향이 컸다. 감염 위험 때문에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 틈을 타 중개 플랫폼 앱 시장이 빠르게 형성되고 활성화되었다. 그 결과 지난 3년간 많은 이들이 중개 앱 서비스가 제공하는 ‘편리함’을 경험하였다.
이렇게 다수의 공통된 경험을 토대로 형성된 사회문화적 인식과 경로는 쉽게 바꾸기 어렵다. 이는 그 자체로 ‘문화인지적 제도’로서 정책을 유지,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가 하향되었음에도 비대면 진료가 중단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물론 어쩔 수 없으니 현실을 받아들이자는 말은 아니다. 원격의료에 내포된 문제가 없어지지 않는 한 비대면 진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멈출 수 없다. 정부 주장과 달리, 원격의료는 안전성과 효과성을 충분히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건강권 보장에 역행한다. 또 영리화와 상업화를 추동하며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 약화와 건강불평등 악화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오진과 의약품 오남용, 의료의 질적 수준 저하와 비용부담 증가, 방문진료와 가정간호 등 통합돌봄 체계 구축 정책의 우선순위 저하, 의료인력 배치의 왜곡과 그에 따른 접근성 저하의 위험 등. 비대면 진료가 야기하게 될 위험의 목록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가지 더, 불평등과 관련하여 ‘디지털 패러독스’ 문제도 있다. 비대면 진료의 가장 큰 수혜집단으로 거론되는 이들 중 상당수(노인, 장애인 등)는 정작 낮은 ‘디지털 리터러시’ 등으로 인해 비대면 진료 접근성이 가장 떨어지는 집단이 될 확률이 크다. ‘의료취약지 의료지원 시범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충분한 해법이 되리라고 보기 어렵다.
이렇듯 비대면 진료 도입을 막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어떻게 저지할 수 있을지, 뚜렷한 대안은 부재한 실정이다. 대안을 찾으려면 먼저 현상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필요할 터. 우리는 지난 논평(☞관련자료: 바로가기)에서 말했듯이, 보건의료를 산업화하여 경제성장 동력으로 삼으려는 정치경제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같은 체제적 차원의 접근은 보다 근본적인 대안 모색과 함께 다음과 같은 담론 경합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한다.
첫째, 초진 허용 범위나 진료가산수가, 의약품 배송 등 이번 시범사업의 세부 방안을 놓고 벌어지는 기술적, 정책적 차원의 논쟁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향후 제도적 변이를 전망하는 체제적 관점이 없다면, ‘스냅샷’처럼 지금 시점의 상황만 딱 잘라 “뭐가 문제인데?”하는 식의 반론을 논파하기 어렵다.
둘째, 해외 사례와 비교하며 우리만 뒤쳐져 있다는 식의 부당한 논리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일차의료기반과 주치의제 여부뿐만 아니라 체계의 공공성 수준, 상품화·영리화 양상 및 맥락이 전혀 다른 국가들과의 단순 비교는 별 함의가 없는 소모적 공방만 낳을 뿐이다.
셋째, 소비자 만족도와 편의성 제고를 이유로 비대면 진료 도입을 정당화하거나 심지어 이를 공공성 강화로 ‘둔갑’시키려는 프레이밍 전략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지난주에 실린 한 경제지 사설 제목을 보라.
“생명 못 구하는 응급 의료 … 알맹이 빠진 비대면 진료” (5/31 매일경제)
앞뒤 구절의 피설명항이 바뀐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논리적 고리가 없는 두 이슈를 엮어서 비대면 진료의 전면 시행이 마치 공공성에 이로운 것처럼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려는 의도가 훤히 보인다. 플랫폼 업체 ‘타다’의 법원 판결에 편승해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역시 ‘기술혁신=선(善)’이라고 프레이밍하는 보수 언론의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식의 여론전이 치열할 테지만, 체제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사회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의료 영리화를 추동하는 것과 동일한 구조적 힘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어떤 정책과 수사를 동원하더라도 비대면 진료에서 파생되는 결과가 의료 영리성 심화에 따른 공공성 약화라는 사실을 덮을 수 없다.
물론 생계와 ‘독박 돌봄’ 등으로 인해 시간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 비대면 진료가 큰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 빈곤으로 의료접근성이 제한된 이들에게 더 좋은 대안은 유급병가와 돌봄서비스 확충일 테다. 비대면 진료 시대가 열리면 아플 때 병가나 연차를 쓰기 더 어려워질 위험도 있는데, 이걸 공공성 강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우리는 정치경제적 분석을 토대로 좀 더 과감한 비판과 전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번 제도화 과정에서 교묘히 ‘숨어있는’ 정부를 끄집어내고,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슈퍼 앱(SuperApp)’을 꿈꾸는 자본의 환상을 들춰낼 필요가 있겠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도입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의료계와 산업계를 중재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정작 이 판을 설계한 핵심 주체가 바로 정부다. 비대면 진료의 한시적 허용을 결정했을 때 과연 지금처럼 중개 플랫폼 시장이 활성화될 줄 예측하지 못했을까? 또 난립한 플랫폼 업체들의 위법 행위를 방치하고 있다가 이슈화된 후에 오남용 의약품 처방 제한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것도 실수라고 보기 어렵다.
당시 “코로나 사태 계기로 비대면 의료를 막고 있던 ‘큰 둑’이 무너진 셈”(☞관련기사: 바로가기)이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는 애시당초 ‘한시적’으로만 허용할 생각이 없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2012년부터 기재부의 공공연한 숙원사업이었던 만큼, 시장이 무럭무럭 클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방임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국가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발판이다. 그러니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는 건 별로 중요한 관심사가 아닌 것이다. 앞으로 정부는 수가를 더 올려주는 한이 있더라도 의료계를 ‘달래가면서’ 관련 산업을 확장시키고자 할 것이다.
이것이 산업화의 중요한 발판인 까닭은 단순히 비대면 진료 중개 시장만으로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투자 여력을 갖춘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업체들은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의료 마이데이터’ 사업이나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 등 여러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로 사업을 넓혀 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는 비대면 진료 중개와 약 배송뿐만 아니라, “병원예약, 건강검진, 개인건강기록, 영양제, 맞춤형 건강보험 등 모든 의료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B2C 의료 슈퍼앱이 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힌 업계 1위 ‘닥타나우’ 대표의 발언에 잘 드러나 있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개인 건강정보를 활용해 건강기능식품 등의 맞춤형 광고를 띄우는 초보적 행태는 아마도 곧 실현될 듯 싶다.
플랫폼 업체들 간 치열한 영역 쟁탈전이 벌어지겠지만, 결국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소수 업체가 독과점하는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업체는 주식 상장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투자를 유치하면서 ‘토탈 헬스케어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박차를 가할 것이다. 최근 아마존이 진료 전문 플랫폼 기업 ‘원 메디컬’을 인수했듯이, 네이버나 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들에 인수, 합병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국가대표’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에 따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이렇듯 자본의 상상력을 따라가다 보면 슈퍼 헬스케어 앱들이 우리의 건강을 지배하는 세상이 펼쳐진다. 공적 통제의 부재 속에서 이윤 극대화의 기업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공공성 약화와 불평등 심화는 불보듯 뻔한 결과다. 보건의료 영역을 잠식해 들어오는 ‘금융+바이오+플랫폼 자본주의’에 빗장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중립을 가장하며 책무성을 방기하는 정부의 기만적 태도를 비판하는 한편, 사실상 유일한 대안적 저항 전략으로서 민주적 공공성의 강화를 추구해야 한다. 사회문화적 요인이 비대면 진료 제도화 과정을 추동했다면, 마찬가지로 국가-자본권력에 맞서 이를 저지할 수 있는 힘도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보건의료 공공성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경험했다. 여기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기술‘혁신’이 사람이 아닌 자본에게 복무할 경우 ‘편의성’이 공공성을 배신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공유될 때, 공적 주체를 통한 플랫폼 기술의 민주적 통제를 꿈꾸는 동료 시민들이 하나둘 늘어날 때, 비대면 진료 도입을 기점으로 본격화될 국가-자본의 ‘웅장한’ 프로젝트를 무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