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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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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 당사자가 오롯한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자긍심의 공간이며, 이 사회에 성소수자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는 투쟁의 공간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2000년 대학로에서 처음으로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되었으며, 서울 이외에도 대구, 부산, 제주, 전주, 인천, 광주 등 전국에서 매년 축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로 24회를 맞이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7월 1일 을지로 일대에서 주최 측 추산 5만여 명이 참여해 축제를 즐겼다.

 

한 지역사회에서 퀴어문화축제 같은 성소수자 관련 행사가 열리는 것은 성소수자를 그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성소수자의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중요한 보호 요인으로 밝혀져 왔다. 가족과 친구, 동료들이 나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퀴어문화축제 역시 지역사회 수준에서 성소수자 구성원에게 지지 자원으로 작용해 이들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오늘 소개할 논문에서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지역사회 환경이 청소년 성소수자의 건강 관련 행동, 특히 약물 사용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았다(☞논문 바로가기: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환경과 청소년 성소수자의 약물 사용 간 연관성). 이 연구는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 청소년 건강 설문조사에 참여한 청소년 성소수자 총 2,684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참여자의 약물 사용 경험은 술, 담배, 불법 마약, 마리화나(캐나다에서 2018년부터 합법화)를 사용해본 적 있는지 그리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물을 비의료적인 목적으로 사용해본 적 있는지 묻는 설문 문항을 통해 측정했다.

 

저자들은 청소년 성소수자 참여자가 다니는 학교를 둘러싼 지역사회 환경이 성소수자를 얼마나 지지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설문조사와 별개로 여러 자료를 수집해 분석에 포함했다. 지역사회 수준의 성소수자 지지도는 총 세 가지로 측정했다. 첫째로, 각 지역사회 내에서 퀴어문화축제와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TDoR), 성소수자 부모모임(Parents, Families, and Friends of Lesbians and Gays, PFLAG) 같은 성소수자 관련 행사가 열리는지 알아보았다. 둘째로, 성소수자를 지지하고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인 술집과 카페, 예술 집단, 인권단체, 의료기관, 교회와 같은 지역사회 자원이 있는지 파악하였다. 마지막으로 각 지역사회에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행사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가 있는지 확인했다.

     

성소수자 지지적인 지역사회 환경이 청소년 성소수자의 약물 사용과 연관성을 가지는지 분석한 결과,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지역사회에 사는 청소년 성소수자는 이러한 환경에서 살고 있지 않은 이들에 비해 약물 사용을 현저히 적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구체적으로 참여자의 성별을 나누어 살펴보면,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환경에 거주하는 경우 불법 마약을 사용할 가능성이 남학생은 0.88배, 여학생은 0.92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성소수자 지지도가 높은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여학생은 마리화나를 사용하거나 흡연할 가능성이 각각 0.82배, 0.88배 낮았다.

 

퀴어문화축제 같은 성소수자 관련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지역사회 내 성소수자 구성원에 대한 수용도와 친화도가 높아지고, 이러한 환경은 궁극적으로 그 지역의 청소년 성소수자의 건강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비단 약물 사용뿐만 아니라 자살 관련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들이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 발표한 다른 논문에서도 지역사회의 성소수자 지지도가 높을수록 그 지역에 거주하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 생각, 자살 시도, 자해 경험이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논문 바로가기: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환경과 진보적인 정치 환경 그리고 자살 행동 간 연관성).

 

2015년부터 서울시청광장에서 개최되었고, 올해도 서울시청광장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서울시가 광장 사용을 허가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축제 장소를 을지로로 변경했다(☞관련 기사: 기독교 행사는 ‘공익’? 퀴어퍼레이드 ‘불허’한 서울시, 콘서트는 ‘허가’). 그 대신 7월 1일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예정이었던 서울시청광장에는 기독교계 CTS문화재단이 행사 개최를 신고한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가 열렸다. 지난 6월 17일에 열린 대구 퀴어문화축제에서도 홍준표 대구시장이 공무원 500명을 축제 현장에 투입해 축제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그 과정에서 경찰과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관련 기사: 경찰에 막힌 ‘불도저’ 홍준표…경찰 “퀴어축제 적법” vs. 洪 “책임 묻겠다”).

 

오늘 소개한 논문은 퀴어문화축제와 같은 성소수자 관련 행사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과 투자가 청소년 성소수자의 약물 사용에 보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특히 청소년 성소수자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혐오세력과 이를 방관하는 지방자치단체의 행태를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 앞으로의 퀴어문화축제는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방관도 없이 순탄하게 개최되어 그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성소수자를 지지해주기를 바란다.

 

 

*서지 정보

 

Watson, R. J., Park, M., Taylor, A. B., Fish, J. N., Corliss, H. L., Eisenberg, M. E., & Saewyc, E. M. (2020). Associations between community-level LGBTQ-supportive factors and substance use among sexual minority adolescents. LGBT Health, 7(2), 82~89.

 

Saewyc, E. M., Li, G., Gower, A. L., Watson, R. J., Erickson, D., Corliss, H. L., & Eisenberg, M. E. (2020). The link between LGBTQ-supportive communities, progressive political climate, and suicidality among sexual minority adolescents in Canada. Preventive Medicine, 139, 106191.

 

조수미. (2019). 퀴어문화축제 공간의 상징과 의례. 한국문화인류학, 52(3), 209-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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