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고문

[고래가 그랬어:건강한 건강수다] 나에 관한 것은 내가 결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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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 238호 ‘건강한 건강 수다>

글 : 정혜승 이모는 아플 걱정, 공부할 걱정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변호사에요.

그림 : 요오우 삼촌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료인들이 성심껏 진료하고 환자에게 아픈 원인, 치료 방법, 약을 처방한다면 무슨 약이고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를 친절히 설명해 줘요.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뭘까요? 사람들은 의사가 치료가 필요하다고 권하면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아요. 수술처럼 우리 몸에 상처를 입히면서 하는 치료도, 의사가 필요하다고 하면 하기로 결심하죠. 그래서 결정하기 전에, 일단 내가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혹시 다른 치료 방법은 없을지, 특히 수술 같은 치료를 굳이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해요.

 

나에게 닥친 일을 정확히 알고 그다음 뭘 할지를 결정할 권리를 ‘자기 결정권’이라고 해요. 어떤 사람은 힘든 치료를 받으면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치료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일을 하며 남은 생을 보내요. 어떤 사람은 아무리 가능성이 작고 힘들지라도 할 수 있는 치료를 모두 해보기도 하고요. 각자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거예요. 자기 결정권은 헌법에도 규정되어 있어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제10조에서요. 미성년자도 역시 자기 결정권을 가져요. 작은 일이라도 나에게 닥치는 일들에 대해 정확히 알고 결정할 수 있죠. 다만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서, 경험이 많은 어른의 도움을 받는 거예요.

 

 

12살 한 친구가 ‘모야모야병’에 걸렸어요. 뇌혈관 안쪽이 두꺼워지면서 혈관이 막히는 흔치 않은 병이에요. 병원에서는 친구에게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고 수술받은 친구는 안타깝게도 오른쪽이 마비되고 말을 잘 못하게 되었어요. 모야모야병에 대한 수술은 원래 마비와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수술 전에 설명하고 환자가 수술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게 해요. 이 사건에서 병원은 환자의 부모님에게만 설명했대요. 친구는 왜 자신에게는 설명하지 않았느냐고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했어요. 대법원은 원칙적으로는 환자가 어리더라도 환자에게 직접 설명하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부모에게 설명했다면 환자에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판결했어요. 미성년자는 아직 정신적·신체적으로 성숙하지 않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어른들이 대신 설명을 듣고 전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 거죠. 여러분은 이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어린이 환자의 의견과 보호자의 의견이 다를 때 병원은 누구의 결정에 따라야 할까요? 그리고 몇 살부터 자기 신체에 관해 결정하는 게 바람직할까요?

 

심하게 아파서 혹은 사고를 당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없을 때, 수술할지 말지, 어떤 치료를 받을지 다른 사람이 대신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 있어요. 이때 나 대신 누가 결정해 주는 게 좋을까요? 한국에서는 보통 가족관계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요. 그렇지만 최근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이 아예 없거나, 같이 사는 친구가 가족보다 나를 잘 알거나, 실제로는 부부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거나, 동성 부부라서 혼인신고를 법적으로 할 수 없는 등 법률상 가족이 아닌 경우도 많아요. 나를 가장 잘 아는 이가 나 대신 결정해 주는 것이 당연히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요.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동반자’라는 제도를 통해 내가 원하는 사람과 살 수 있게 법률적으로 인정해 주기도 한답니다. 본인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일 때 그 사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대신 결정해 줄 수 있도록, 어떤 변화를 만들어야 할지, 같이 생각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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