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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수요 증가를 반영한 의사 증원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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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발걸음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최근 정부 여당이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릴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직후 대한의사협회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의대 정원 확충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관련 기사: 의협 “정부 의대 정원 확대, 경악과 혼란…모든 수단으로 총력 대응”). 필자는 지난 글에서 미국 의사인력의 규모는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평균 근무시간 감소로 인하여 의사의 실질공급량이 인구 증가율을 하회했다는 연구를 소개하였다(☞관련 기사: 20년간 미국 의사 근로시간의 변화가 의사 인력 정책에 주는 함의). 이번에 소개할 캐나다의 사례(☞논문 바로가기: 인구 고령화와 의사 근무 시간의 변화가 의사인력 수급에 미치는 영향)는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대 정원을 둘러싼 논쟁과 관련하여 인구고령화 측면에서 좋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캐나다 인구는 약 4천만 명에 인구 고령화율은 19%로 한국(약 5100만 명)보다 인구는 다소 적으나 비슷한 고령화율(한국 17%)을 보이며, 인구 천 명 당 의사수는 캐나다(2.47명)가 한국(2.18명)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캐나다는 지난 수십년 간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의사의 채용을 장려하였고 2000년대 중반 의대 정원을 늘리는 정책을 시행하여 인구 당 의사 수 비율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현재 캐나다 역사상 인구 대비 의사 수가 가장 많은 상태이지만, 왜 여전히 의사 수 부족에 따른 접근의 어려움과 의료인력의 과로 등의 문제는 지속되고 있을까?

 

연구진은 1987년부터 2020년까지 약 30년 동안 캐나다 인구가 43% 증가한 데 비하여 의사인력은 93%로 훨씬 빠르게 늘었지만, 의사 근무 시간의 감소와 인구고령화로 인한 의료수요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의사부족 현상을 지속시키고 있음을 설명한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캐나다 내 의과대학 졸업자 규모는 연 1,600~1,700명 수준을 유지하다가 이후 크게 늘어나 현재 연간 약 2,900명의 의사인력이 신규 배출되고 있다. 또한 적극적으로 외국 의사면허 취득자에 대한 문호를 개방하여 현재 캐나다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의사 중 외국 의대 졸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6%에 달한다.

 

캐나다의 적극적인 의사인력 확충 정책으로 지난 30년 동안 의사 수 증가율이 인구 증가율을 상회하여 인구 대비 의사 수가 1.35배 정도 증가하였지만 고령층의 의료수요 증가를 보정하면 의사 실질 공급량이 1.18배 정도 증가한 것에 그친다. 이에 더하여 의사 근무 시간이 같은 기간 17% 감소하여 실제로는 30년 간 인구 대비 의사인력의 실질 공급량이 7% 증가했을 뿐이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수요 증가로 인하여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인구 대비 의사 실질 공급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2000년대 중반 의대 정원을 급격하게 늘리면서 의사인력 실질 공급량의 감소세가 멈추고 추세가 전환되어 2020년이 되어서야 겨우 1980년대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캐나다는 이미 1970년대 고령화 사회(65세 인구 7% 이상)가 되었고, 2000년대 초 고령 사회(65세 이상 인구 14% 이상)에 진입하였다. 캐나다는 고령 사회로 진입한 직후 의사 수를 대대적으로 늘리는 정책을 폈다. 의대 정원 증가와 관련된 논의가 한창인 2023년 한국의 시점은 고령 사회로 진입한 지 5년이 되는 시기로, 2000년대 초 고령 사회가 되고 몇 년 후 의대 정원을 늘린 캐나다와 유사한 상황이다.

 

게다가 한국은 2000년에 고령화 사회가 된 지 18년 만에 매우 빠른 속도로 고령 사회로 이행하였다. 향후 몇 년 안에 캐나다보다 더 높은 인구 고령화가 진행될 전망임을 고려하면 캐나다가 과거 겪었던 의사인력 실질 공급량 부족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물론 의사 공급을 늘린다고 속칭 ‘필수과목’ 의사와 ‘지역’ 의사의 부족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인구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의사 공급 확대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의사 부족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게다가 캐나다처럼 외국, 특히 저소득 국가들에서 의사 인력을 빼오는 것은 실효성이 낮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비윤리적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대안일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명확하다. 만시지탄이 되지 않도록 신속하고 과감하게 의사 증원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서지 정보

 

Islam, R., Kralj, B., & Sweetman, A. (2023). Physician workforce planning in Canada: the importance of accounting for population aging and changing physician hours of work. CMAJ, 195(9), E335-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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