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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은 노동자 건강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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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지난 11월 9일 야당의 단독 의결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 3조 개정안, 속칭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노란봉투법’은 노사관계의 당사자와 규칙을 바꾸는 법이다. 사용자의 개념을 확대하고, 합법적 파업의 범위를 넓힌다. 또한, 법원이 파업으로 인한 노동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라도 파업 참여자가 손해배상액 전체를 동등하게 나눠 부담하는 대신 참여자 개개인이 미친 손해를 따로 산정해 그만큼씩만 책임지도록 한다. 사측이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천문학적 규모의 배상금을 청구하고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는 행태를 방지하려는 취지를 가진다.

 

반응이 뜨겁다. 경영계에선 법안 통과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다. 여당이 이런 움직임에 힘을 싣고 있는 반면, 야당과 양대 노총은 해당 법안의 조속한 공포를 요구하고 있다. 개정안의 시행이 여당 대표의 말처럼 “우리 경제의 숨통을 끊어 놓을” 것이라 우려하는 목소리들 가운데에서, 진정한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의 삶과 건강에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는 관점은 지워져 왔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이런 드문 관점을 갖고서, 노동 쟁의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가압류의 실태와 이를 경험한 노동자의 건강을 살펴본다(☞논문 바로가기: 갚을 수 없는 돈, 떠나는 동료, 아픈 몸: 2018 손해배상·가압류 노동자 실태조사). 연구진은 2018년 7월부터 6개월에 걸쳐 비영리단체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와 협력해 손배가압류를 경험한 노동자 231명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분석했다. 설문 시기와 근접한 시기에 조사된 한국근로환경조사와 한국복지패널 자료를 활용해 연령, 성별, 종사 업종이 동일하지만 손배가압류를 경험하진 않았을 노동자들과 건강 결과를 비교했다.

 

설문 결과 응답자 중 69.3%가 회사로부터, 28.6%는 회사와 경찰 등 국가기관 양쪽으로부터 손해배상 혹은 가압류 소송을 당했다. 이들에게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액 규모는 75.3%의 경우 10억원을 넘었다. 고졸 이하(84.3%)의 남성(86.6%) 노동자가 대다수인 이들은 10년 이상 한 회사에서 일하면서도(95.7%) 그만한 큰 돈을 손에 쥐어 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40.4%는 6~9년, 30%는 9년 이상 손해배상이나 가압류가 제기된 채 그 무게 아래에 살아야 했다.

 

응답자들은 사측으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3권의 행사를 방해 받았다. 손해배상 또는 가압류가 진행되는 동안 겪은 직장 내 부당노동행위 경험을 물었을 때, 51.3%는 노조 활동을 빌미로 한 인사고과, 성과급 등의 불이익을, 29.7%는 손배가압류 금액을 들먹이는 회유나 협박을, 24.1%는 손배가압류 당사자라는 이유로 관리자의 감시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또한, 노동조합의 쟁의권을 포기하라는 압박을 받은 경우가 22%, 노동조합 사무실 출입이 제지된 경우가 20.3%, 관리자나 회사 측에서 사직을 권유 받은 경우가 19.4%에 달했다.

 

손배가압류 소송에 뒤따르는 사측의 이러한 움직임은 노동자를 직장 동료들로부터 배제시키고, 이들의 노동조합 동료들이 떠나도록 만들었다. 신체적 폭력, 왕따나 괴롭힘을 경험한 응답자가 각각 10.3%였고, 노조 조합원이 50% 이상 감소했다고 응답한 경우는 74.1%였다. 응답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 소송은 성공적으로 그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인다.

 

손배가압류 소송을 경험한 응답자들은 근로환경조사 결과를 통해 알아본 일반 인구의 노동자보다 건강 상태가 나빴다. 응답자 중 남성의 35.5%, 여성의 32.3%는 자신의 건강이 나쁘다고 평가해, 그 확률이 일반 인구 노동자에 비해 매우 높았다. 그 외에도 두통 및 눈의 피로, 전신 피로, 요통, 상지통, 하지통을 겪을 확률이 통증의 종류에 따라 남성 응답자에서 4.1~9배, 여성 응답자에서 4~8.2배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았다.

 

한국복지패널 조사 결과와 비교해 본 응답자들의 정신 건강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손배가압류 소송을 경험한 남성 응답자의 60.6%, 여성 응답자의 71.0%가 지난 1주간 우울증상을 경험했다고 말했는데, 이는 일반 인구 노동자보다 각각 11.9배, 8.6배 더 높은 수치였다. 남성 응답자의 31%, 여성 응답자의 19.4%는 지난 1년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이는 일반 인구 노동자에 비해 남성 응답자는 21.9배, 여성 응답자는 22배 더 자주 자살을 생각했음을 의미한다. 남성 응답자 중 3%는 같은 기간 동안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었는데, 이는 35.4배 더 높은 수치다. 한국복지패널에서 비교 대상이 된 일반 인구 노동자 중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했다고 응답한 경우가 너무 드물어 이 숫자가 정확하다고 해석하긴 어렵다. 그러나 손배가압류 소송을 경험한 응답자들의 정신 건강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있는지 가늠하기엔 충분해 보인다.

 

연구는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와 그에 따른 가압류 조치의 함의가 노동자가 불법 행위로 사측에 입힌 손해를 보상 받는 정당한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측의 부당노동행위가 뒤이었고, 직장 동료가 등을 돌렸다. 함께 연대해 온 노동조합의 동료들은 흩어졌고, 천문학적 규모의 손배액이 주는 부담과 가압류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이 남았다. 이 모든 심리적, 경제적 부담과 불안, 그리고 가까운 사회적 관계망의 붕괴는 노동자의 몸과 마음에 아픔으로 그 흔적을 남겼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될 때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조직의 특수한 이익이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과 권리라는 보편적 가치이다. 본 개정안이 “우리 경제의 숨통을 끊어 놓을” 것이라면, 반대로 지금 우리 경제는 노동자의 건강을 대가로 연명하고 있는 것인지,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질문하게 된다. 사람 하나하나의 좋은 삶과 건강을 목적으로 두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시행을 기대한다.

 

 

*서지 정보

박주영, 최보경, 김란영, 윤지선, & 박형근. (2020). 갚을 수 없는 돈, 떠나는 동료, 아픈 몸: 2018 손해배상·가압류 노동자 실태조사. 보건사회연구, 40(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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