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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남긴 사회적 상흔, 사회적 거리두기와 구별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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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은 (시민건강연구소 영펠로우)

 

코로나는 빠르게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팬데믹은 모두의 위기라 불렸지만, 그 과정에서 생명가치의 위계를 드러내며,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라는 씁쓸한 결과를 남겼다. 바이러스 감염의 직접적 피해뿐만 아니라 그에 대응하느라 시행되었던 정책들도 우리 사회에 여러 형태의 상흔을 남겼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다. 이는 코로나의 실체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충분히 쌓이기 전부터 적극적으로 권장되어 온 방역 지침이었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모두가 동의하고 따를 수 있는 규범처럼 여겨지곤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단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쉽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새로운 행위 관습으로 채택할 수 있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이 존재하고, 이들 사이에는 새로운 경계가 그어질 수 있다. 타인, 더 나아가 외집단으로 선을 긋고, ‘다름’을 ‘옳지 못함’으로 규정하며 혐오가 발아할 수 있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준수’라는 사회적 과정이 개인과 집단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형성될 수 있는지에 주목한 논문이 게재되었다(☞논문 바로가기: 거리두기를 통한 구별 짓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의 규범 형성과 집행). 연구진은 미국 내 소득 수준이 높고, 백인이 대부분인 그린빌과 스프링필드에 거주하는 부모와 10대 자녀를 대상으로 팬데믹 초기(2020년 4월부터 8월)에 진행한 인터뷰 결과를 분석하였다. 이 연구의 목적은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둘러싼 구체적인 규범 형성 과정을 톺아보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1)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규범 형성은 개인이 접근 가능한 자본 수준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2) 그렇게 새로운 규범으로 발현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그 자체로 또 다른 문화자본으로 기능하며 계급을 구별 짓는 수단이 됨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그린빌과 스프링필드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은 어떻게 그들의 기존 자원을 활용하여 손쉽게 사회적 거리두기 규범 형성에 안착할 수 있었을까. 이들은 미국 평균 수준보다 넓은 주거 환경에 살고 있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발생하는 피로감을 풀 수 있는 충분한 옥외공간을 확보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연구진은 두 지역 내 코로나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체득된(embodied)’ 문화자본인 건강증진 활동을 사회적 거리두기 규범을 수월하게 지역사회 내에 안착시킨 중요한 비가시적 기전으로 설명한다. 이들 지역은 하이킹, 스키와 같은 외부 건강증진 활동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공고한 곳이었다. 그 덕분에 지역주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심리적 어려움을 외부 건강증진 활동을 통해 발산할 수 있었고, 이는 그들의 삶에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관습이 무리 없이 안착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더 나아가 연구진은 지역주민들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부여하는 도덕적 의미 부여와 우월감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는 궁극적으로 내집단의 결속을 높이고 외집단과의 경계를 강화하는 기전으로 작동하였다. 내집단의 규범으로 자리 잡은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거리두기에 참여하는 동기부여로 작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외부인들을 배척하는 ‘이중잣대’가 되었다.

 

특히,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반한 상황에서 이러한 특징이 두드졌다. 만약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목적이 단순히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를 지키지 않은 주민들 역시 외부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지탄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 구성원의 규범 위반은 단순 실수로 용인되었고, 외부 구성원일 경우는 그 집단을 향한 반감의 증가로 이어졌다.

 

이 연구결과가 함의하고 있듯이, 개인이 향유하는 모든 유형의 자본은 자신을 둘러싼 외부 상황의 변화에 맞춰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원천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논문에서 말하는 ‘뛰어난’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력을 포함해) 이러한 적응력을 개인의 지성과 미덕, 신념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연구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팬데믹을 비롯해 긴박하게 변화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요구되는 적응력(혹은 회복력)은 개인이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유한 자본의 양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구조의 제약을 받는 개인의 행위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부족하다면, 상대적으로 적응이 지연되는 개인과 집단은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고 지탄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낙인찍힐 위험이 증가한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지난 팬데믹 시기 동안 홈리스나 이주민 등 사회적 거리두기를 따르기 어려운 집단을 향한 낙인이 심화되기도 했다.

 

올해는 지난 3년 6개월간 지속됐던 팬데믹이 마무리된 해이다. 그런만큼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팬데믹에 대한 복기도 빠질 수 없다. 미국 사례처럼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회 규범으로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위계를 더 공고하게 만든 측면은 없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나의 무엇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하였는지에 대한 성찰과 함께, ‘사회학적 상상력’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을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서지정보

Mercer, K. H., & Mollborn, S. (2023). Distinction through distancing: Norm formation and enforcement during the COVID-19 pandemic. Social Science & Medicine, 338, 11633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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