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연구조차 되지 않는 사람들: 기후 재난 속 장애인의 삶

138회 조회됨

 

김지민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1970년부터 2021년까지, 지난 50년간 기후 위기로 발생한 재난이 앗아간 목숨이 무려 2백만 명에 이른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홍수, 폭염, 가뭄, 산불, 허리케인 등의 기후 재앙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리비아 동부의 해안 도시 데르나에서 올해 9월 발생한 대홍수로 인한 사망자는 약 2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히말라야산맥의 빙하가 녹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홍수와 폭우의 위험이 커져가고 있다. 지난해 6월 파키스탄 국토 1/3을 잠기게 한 대규모 홍수는 1,739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이재민의 수는 3천만 명에 달했다. 지구촌 곳곳에서 전례 없이 무자비한 재난을 초래하고 있는 기후 위기 앞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은 모두에게 공평한 위험을 선사하지 않는다. 재난은 ‘발생 이전→발생 당시→발생 이후’의 세 단계 속에서 사회 계층이나 집단에 따라 불균등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이들일수록 더 큰 타격을 받는다. 그동안 기후 재난에서 취약계층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진전되어 왔지만,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고려는 부족한 실정이다.

 

기후 재난이 장애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의 부족만이 문제가 아니다. 장애라는 하나의 문제만이 아니라 성별, 연령, 인종, 소득·자산 등에 따라 중첩적이고 복합적인 취약성을 가진다는 사실이 흔히 간과되고 있는 것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 기후 변화가 장애인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학계의 연구 동향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연구가 발표되었다(☞논문 바로가기: 포용적인 미래: 기후 및 환경 변화의 맥락에서 본 장애 인구).

 

연구진은 학술 데이터베이스에서 ‘기후 변화’, ‘환경 변화’, ‘장애 인구’라는 검색어를 사용해 기후 또는 환경 변화의 맥락에서 장애인들의 경험을 연구한 학술 논문들을 수집하였다. 출판 기간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고, 실증 연구가 아닌 논문들은 제외하였으며, 영어로 출판된 논문만 분석에 포함하였다. 최종적으로 21편의 논문이 선정되어 문헌 고찰을 진행하였다.

 

장애인과 관련해 기후 변화의 영향을 다룬 학술 논문의 수는 이처럼 매우 적은 실정이다. 연구가 이루어진 지역도 주로 북아메리카와 유럽이었다. 하지만 유엔 세계기상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기상 이변으로 인한 사망자 10명 가운데 9명이 남반구에서 발생하였다.

 

연구 내용도 기후 또는 환경 정의의 일부 차원에 국한되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연구가 비용, 자원, 혜택 등의 분배적 차원의 정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반면 재난 대응과 회복의 과정에서 교차성의 관점에 따라 더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인정 차원의 정의는 그 필요성만이 제기되었을 뿐 구체적인 조사와 분석은 이루어지지 못한 실정이었다. 모든 집단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의 절차적 정의 역시 거의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 소수이지만 일부 연구들을 통해 포용적인 기후 재난 대응에 관한 귀중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례를 다룬 선행연구에 따르면, 감각 장애(시각장애, 청각장애)를 겪는 이들은 재난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대피 안내에 관한 정보에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장애 여성일수록 대피소에서 지내는 동안 성폭력 피해를 경험할 위험이 더 컸고, 허리케인이 지나간 이후 장애 아동 중 12%가 ‘홈리스’ 상태로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난 이후 장애인일수록 감염병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의 위험을 더 크게 경험했다. 몰디브에서는 장애 아동이 재난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을 때, 새 학교의 시설과 프로그램이 장애인을 돌보고 교육하는 데 적절하지 않았던 것이 밝혀졌다.

 

이 연구는 기후 재난과 관련한 연구에서 장애인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현실을 지적하며, 장애인에 대한 포용적인 연구와 활동을 요청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사건들 속에서 장애인의 필요와 맞닿는 대응과 적응 과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기후 변화가 장애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지 밝혀내는 연구가 좀더 활발히 이뤄질 필요가 있다.

 

특히 연구진이 제안한 것처럼, 교차성의 관점을 토대로 장애 유형과 기후 재난의 종류에 따라 세분화된 자료 수집과 분석이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이러한 연구는 단지 평가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 기후 변화의 영향을 다루는 정치적 활동들과 연계될 필요가 있다.

 

기후 재난은 남반구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과 장애인처럼 가장 약한 이들에게 더욱 혹독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모두 기후 재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포용적이고 정의로운 미래에 대한 고민을 더는 뒤로 미룰 수 없다.

 

 

*서지정보

 

Kosanic, A., Petzold, J., Martín-López, B., & Razanajatovo, M. (2022). An inclusive future: disabled populations in the context of climate and environmental change. Current Opinion in Environmental Sustainability, 55, 101159.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는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 정기 후원을 하기 어려운 분들도 소액 결제로 일시 후원이 가능합니다.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