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우리는 주변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폐지 수집은 빈곤 노인이 현실에서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경제활동 수단 중 하나다. 지난해 12월에는 전국 폐지 수집 노인을 대상으로 한 정부 차원의 첫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조사 결과, 폐지 수집 노인 가운데 생계비 마련을 위해 폐지를 줍는 이가 절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하지만 노동 강도에 비해 그 수입은 고정적이지도, 충분하지도 않다. 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지난해, 폭염경보가 발효 중인 가운데 폐지를 줍던 노인 한 분이 온열질환으로 숨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곳곳에 한파주의보가 내린 요즘 같은 날씨에는 특히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
이렇듯 야외에서 폐지, 플라스틱, 고철 등 재활용품을 수거하고 판매하는 노동자들은 저임금 외에도 폭염, 한파, 교통사고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다. 하지만 제도권 밖에 방치되어 있는 이러한 비공식 노동자들을 위한 보호조치는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폐기물 수거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물론 이러한 노동에 담긴 환경적 가치를 반영하여 ‘자원 재생 활동가’라는 명칭을 사용하거나 그 공적·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또 많은 지자체에서 재활용품 수집인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실태조사 결과가 보여주듯이 여전히 제도적 뒷받침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한편 열악한 노동이라고 해서 젠더 불평등이 없을리 만무하다. 도시사회학자 소준철이 <가난의 문법>(푸른숲, 2020)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듯이, 재활용 수거인들의 포식자 관계도에서 여성 노인은 최약체로 분류된다. 부양 가족 때문에, 도난 위험 때문에 오랜 시간 일해도 소득이 더 적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성별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오늘은 여러 위험한 노동환경의 영향을 받는 비공식 폐기물 수거인들의 성별 건강 차이를 조사한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 매립지의 남녀 폐기물 수거인들: 건강 및 사회 경제적 지위의 차이).
이 연구는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하여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 지역에 있는 매립지 2곳의 폐기물 수거인을 대상으로 2018년 4월부터 5월까지 데이터를 수집하였으며 최종적으로 총 361명(여성 96명, 남성 265명)을 분석 대상에 포함하였다. 연구진은 성별에 따라 폐기물 수거인들의 건강 상태와 작업 환경, 경험에 어떠한 차이가 존재하는지 확인하였다.
연구 결과, 여성 폐기물 수거인은 남성보다 폐기물 판매에 따른 월 평균 소득이 약 22%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더 양호한 건강추구행위 경향에도 불구하고 만성질환과 관련된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등의 수치가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성별 소득 격차에 대해 힘의 우위에 있는 남성이 전자제품, 금속제품 등 경제적 가치가 큰 재활용품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반면 여성은 가족 돌봄 의무로 인해 폐기물 수집일이 적었기 때문으로 설명하였다. 또한 여성의 상대적 저학력과 고령 등의 특성이 더 나쁜 건강결과로 나타났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폐기물이나 재활용품을 처리하는 작업은 직업보건과 사회생태학 측면에서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 일을 수행하는 비공식 노동자들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낙인과 사회적 보호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복지부는 이달부터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지역 내 폐지 수집 노인을 전수조사하고, 이를 기반으로 급여가 더 많은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의 연계와 더불어 주기적 현황 점검과 관리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연계되는 일자리 사업이 ‘폐지 수집보다는 낫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나아가 오늘 소개한 연구 결과가 시사하듯이 재활용품 수거인 중에는 여성 노인과 같이 더 취약한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이들이 더 이상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더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섬세하고 포괄적인 정책 개입이 필요할 것이다.
*서지 정보
Wilson, K. S., et al. (2022). Men and women waste pickers on landfills in Johannesburg, South Africa: divergence in health, and socioeconomic status. International archives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health, 95(2), 351-363.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는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