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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없는 경제정책방향, 결국 관점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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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정부가 연일 숨가쁘게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부동산 재건축 규제 완화나 부담금 폐지를 비롯한 각종 세금 감면 등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 일색이다. 그러다보니 세간의 평가 역시 비판 일색이다.

 

비판의 공통 분모는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다. 지난해 약 60조원의 역대급 세수 결손이 났음에도 대규모 감세 정책이라니, 보수 언론조차 이건 아니다 싶었나 보다. 좌우 진영의 대립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상식 이하의 비합리적 국정 운영에 고개가 절로 돌아간다.

 

물론 우리는 재정건전성 신화에 반대한다. 경기 침체를 핑계로 긴축 재정을 편성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지원 정책을 축소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문제다. 확장 재정 지출에 따른 인플레이션 위험이 있다 해도 현재 고물가·고금리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한 정책 예산은 증대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를 고수하는 가운데 엉뚱하게 부유층과 대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자 적자 재정을 감수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임시투자세액 공제 연장 등 최근 발표된 숱한 감세 정책 중 대부분이 저소득층, 영세기업과는 무관한 것들이다.

 

반면 복지 확대에는 박하다. 지난 4일 발표된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물가안정과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여러 세부 정책들이 열거되어 있다. 노인 일자리 지원 사업 확대와 같이 나름 도움이 되는 계획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큰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거나 단기적이고 지엽적인 게 많다.

 

의료 분야를 보더라도 그렇다. 건강보험료 장기체납자의 급여제한을 면제하는 소득・재산기준을 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여전히 모든 생계형 체납자를 포괄하는 데 역부족이라는 한계가 있다. 소득하위 30%에 대한 의료비 본인부담상한액을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하는 것도 현상 유지에 가깝지 눈에 띄는 지원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시내 곳곳에 현수막을 걸고 홍보하고 있는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 인하”는 전형적인 선거용 생색내기 정책에 가깝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국내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의 특성상 건강보험료를 직접 인하하는 방식은 부유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만든다. 반면 줄어든 건강보험 재정은 보장성 축소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일 것이다.

 

 

흔히 정치가 경제를 흔드는 ‘폴리코노미(Policonomy)’가 문제라고 한다. 상반기 물가안정을 목표하면서도 SOC 사업 재정의 조기 집행이라는 모순된 정책을 추진하는 걸 그 예로 꼽는다. 한데 언제 그러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노골화의 정도만 다를 뿐, 경제정책의 정치적 종속은 늘 있어 왔던 법칙과도 같은 현상이다.

 

조삼모사식 미봉책으로 보일지라도 상반기 공공요금 동결과 같이 경제적 약자에게 도움이 되는 결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즉, 폴리코노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의도와 내용이 핵심이다. 기재부의 엘리트 공무원들이 무능해서 비합리적인 정책을 제시했다기보다 관료적 이해관계에 따라 집권당의 선거 승리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 조합을 고심 끝에 내놓은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듯 정책적 비합리성은 정치적 합리성의 측면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질문도 정치적 합리성을 향해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선심성 지원 정책과 부자 감세 정책의 조합이 유리한 선거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판단은 어떻게 정치적 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 말이다.

 

우리는 합리성의 판단 기준 역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동일한 정책도 누구의 관점에서 보는지에 따라 합리적일 수도, 비합리적일 수도 있다. 정부가 기득권층에게 유리한 (곧 자신들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하는) 정책들을 선거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는 까닭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주류 관점이 그만큼 친기득권적이기 때문일 테다.

 

공공성 강화와 불평등 극복을 지향하는 사람중심 관점에서 볼 때 긴축재정과 부자 감세는 불합리한 정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문화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지금의 보수화된 이념 지형에서는 합리적인 것으로 수용된다. 신자유주의를 “기득권층의 특권 복원을 위한 정치적 기획”이라고 봐야 하는 까닭이다.

 

우리의 답답함은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과 지역소멸, 저출산·고령화라는 복합적 위기 상황과 경기 침체의 장기화, 높은 정권심판 여론 등으로 정치적 기회의 창이 열렸음에도 공공성 강화와 불평등 극복을 주요 선거 의제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데 있다.

 

달리 말해, 우리의 막막함은 기존의 경제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체제 수준에서의 대변혁이 이뤄져야만 거대한 사회적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음에도 정작 이러한 주장과 제안이 현실에서 합리적 대안으로서의 지위를 얻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하지 말자. 구조적 위기의 가속화는 기존 정치적 합리성의 토대를 흔들면서 통치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고, 이는 국가권력과 경제권력 간의 균열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각자도생의 논리로는 자녀와 노인 돌봄 부담을 더욱 개인화해야 하지만, 통치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돌봄위기의 책임으로부터 국가권력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이번 선거용 정책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선거를 맞아 여야 정치권이 앞다퉈 저출생 대책과 간병비 대책 등을 발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 그리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크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문제에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는 통치 차원의 요구, 그리고 그 정도 수준의 대안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회의감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우리의 첫번째 과제는 통치의 위기를 사회 진보의 기회로 번역하는 일이어야 한다. 기성 정치권의 대안으로는 우리 사회가 마주한 위기들을 해결할 수 없기에 체제 차원의 근본 변화가 필요하다는 총체성 관점이 주류화될 수 있도록, 그래서 그것이 새로운 정치적 합리성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때마침 이 일을 실천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운동의 흐름이 출현했다. 지난해 말부터 ‘체제전환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둘 많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와 동료 시민들이 모여 장기적 전망 속에서 새로운 정치운동을 모색하고 있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우리의 답답함을 해소해 줄 의미 있는 행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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