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응급의료의 사회화, 공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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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동안 광역시에 있는 한 대학 병원 응급실을 찾을 일이 있었다. 가기 전 각오한 것보다는 나았지만 사정은 좋지 않았다. 한 눈에도 대목 시장이 따로 없을 정도로 붐볐다.

인간적인 진료까지 기대하는 것은 현실을 너무 모르는 것일까. 제 시간에 치료 받는 것조차 조바심을 내야 했다. 대놓고 불만을 말하는 이는 적었지만, 환자와 의료진 모두 아슬아슬한 살얼음판 위에 있었다.

마침 몇몇 언론도 응급실 문제를 다루었다. 추석 연휴에 대형 병원 응급실로 환자가 몰려 불편이 심했다는 것이다. 환자 진료가 불충분하고 업무 처리가 늦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큰 병이 아니면 지역의 당번 병원을 이용하라는 처방은 이번에도 그대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지역마다 연휴 기간에 당번 병원을 지정하게 되어 있고,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감기나 복통 같은 가벼운 병은 이렇게 해결하면 쉽고 편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한마디로 이런 시스템이 있어도 대형 병원에 환자가 몰리는 것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환자 탓이 아니다. 미리 말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가장 ‘합리적’으로 판단한 결과 대형 병원 응급실을 찾는다.

우선 당번 병원을 이용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고 효과적이지 않다. 이번 추석만 하더라도 막상 추석 당일은 당번 병원을 찾기 힘들었다. 다른 날도 한밤중까지 진료하는 당번 병원은 거의 없다.

당직 병원을 찾아낸 이후에도 문제가 남는다. 감기나 소화불량처럼 가볍거나 익숙한 문제가 아닌 한, 환자 스스로 자기 문제에 맞는 의료기관인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치의가 있거나 종합병원 이상이면 모를까, 어디를 가야 제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 주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전에, 정보를 얻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인터넷에 온갖 정보가 다 있다지만, 접근성이나 정보의 이해 정도로 볼 때 아직은 보편적 방법이 될 것 같지 않다.

실제 경험해 본 결과로는 119로 전화를 하는 편이 가장 빨랐다. 그러나 당직 병원 정보를 얻는 것 이외에는 쓰임새가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겠다. 보건복지콜센터(129번)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응급 환자에 대비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관리나 행정 차원의 결함, 즉 당직 병원의 지정과 운영, 또는 이들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것이 핵심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이런 방법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가정이 정확하지 않다면 그 이후의 관리는 덜 중요하다.

응급상황에서 사람들이 행동하는 방식은 의료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 꼭 불안과 공포 때문만은 아니다. ‘응급’이 왜 응급인가. 일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응급이라 부른다.

자주 경험하는 일이 아니고, 따라서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기 어렵다. 설사 지식과 정보가 있다 하더라도 막상 응급 상황을 만나면 그런 준비가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갑자기 크게 아프거나 심각한 증상이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어지간해서는 차분하게 인터넷을 검색하고 정보를 찾아 제3의 의견을 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전문가의 시각에서는 합리성이 떨어지지만, 환자와 가족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행동하는 것이 바로 큰 병원을 찾는 것이다. 대형 병원 응급실의 혼잡과 대기, 그 결과로서의 불만은 당연하다. 휴일에 대비하는 체계를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꼭 휴일에만 그런 것도 아니다. 우리의 응급의료체계는 여전히 ‘체계’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 각 개인에 크게 의존하고 그 결과 우연과 ‘운’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 단적인 증거다. 환자, 보호자, 의료인의 개인적 판단이 응급환자의 진료를 결정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물론, 전체주의적 시각이 아니라면 개인의 판단과 자율성은 존중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응급의료에서 나타나는 복잡함과 ‘혼란’이 자율성 때문이 아니라 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결과라면?

다시 응급의료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첫걸음은 응급의료체계를 보는 시각을 뿌리부터 바꾸는 일이다. 민간 ‘활용론’, 즉 민간 자원이 충분하니 이를 활용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이번 연휴 응급의료의 뼈대인 당번 병원 제도가 이런 생각을 잘 나타낸다.

그러나 응급의료체계에서 민간 병원은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약간의 진료비 인상으로 민간의 응급의료를 강화한다는 목표는 달성할 수 없다. 한 의료기관에서 응급의료는 단순히 한 분야나 전문 과목의 일이 아니다. 기관 전체의 조직 방식과 역량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차 수준이든 3차 수준이든 응급의료체계는 공공의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응급의료기관이 국영, 공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전체 의료기관의 소유가 공공이든 민간이든, 응급의료 영역의 인력, 시설과 장비, 재정, 거버넌스 등을 ‘공공화’ 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투자를 크게 늘리는 것도 중요하고 긴급하다. 아무리 한국 의료가 시장화 되었다고 하더라도, 응급의료는 그렇게 되기 가장 어려운 영역이다. 이윤을 위한 민간의 투자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투자가 일어날 가능성은 가장 작은 반면, 투자의 필요성은 가장 크다. 언론의 보도대로 추석 연휴에 대형 병원 응급실에 환자가 집중되었다는 것이야말로 투자의 필요성을 명확하게 나타내는 징표다.

우선, 현재의 응급의료 중심 기관들이 제대로 된 진료를 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환자는 넘쳐나고 인력과 시설은 턱없이 모자란다. 원칙과 가치에 맞는 진료를 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환자를 탓하지 말아야 한다. 당분간 대형 병원에 응급 환자가 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은 그대로 인정하자. ‘공급’ 쪽이 우선이다. 인력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시설과 장비를 개선하며 지원 서비스를 보강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체계 또한 바꾸어야 한다. 환자들이 무조건 대형 병원 응급실을 찾지 않도록 하려면 질 높은 응급의료가 단계화, 지역화 되는 것이 원칙이다. 응급의료의 ‘전달체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도 이런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응급의료의 수준과 환자의 경험, 그리고 체계에 대한 신뢰는 서로 원인과 결과가 되는 연속적 과정이다. 지역과 단계별로 투자를 통해 선순환의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응급환자가 적정 수준의 응급의료기관을 찾고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비로소 ‘응급의료체계’가 구축되는 것이다.

<서리풀 논평>은 2012년 7월 9일에도 응급의료를 주제로 삼았다. 당시 배경은 중증외상센터를 둘러싼 논란이었다. 연휴 기간 동안의 응급의료와는 여러 가지로 비교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결론은 이번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응급의료의 공공성 강화가 아니면 중증외상센터든 지역의 응급의료센터든 제대로 된 체계를 갖추기 어렵다는 뜻일 터.

건강권에서 출발하는 것도 같다. 불안과 공포의 응급 상황에서 제대로 된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중요한 인권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안전망이자 토대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하는 진정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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