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만큼 무겁고 어두운 주제는 별로 없을 것이다. 어린이날의 대체공휴일에 발간되는 논평 주제로 썩 적절해 보이지 않을 수 있겠다. 기사 제목에 이 용어를 쓰지 말라는 보도 권고기준이 있을 만큼 언급 자체만으로 부정적 파급력이 큰 것도 사실이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를 다루려는 건 그만큼 중대하면서도 소외된 사회적 문제라는 판단에서다. 이번 논평에서는 자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환기와 더불어 기존 대응의 한계와 그 대안에 대해 논의해보려고 한다.
‘자발적 죽음’이라는 낯설고 두렵고 난해한 사건에 대해 가급적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자살은 우리 모두 함께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다. 그리고 이미 익숙한 사실이 된 것처럼, 한국은 전세계에서 손 꼽히는, 자살률이 높은 국가 중 하나다. 2022년 자살률은 10만명당 25.2명으로 OECD 국가 평균의 두 배를 넘는 실정이다.
그에 따라 그동안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여러 제도적 노력이 이뤄져 왔다. 2004년 ‘제1차 자살예방 기본대책’ 수립을 기점으로, 2011년에 ‘자살예방법’이 제정되었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을 비롯해 광역·기초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여러 자살예방기관들이 운영되고 있다. 또 많은 지자체들에서 관련 조례를 제정해 자살예방에 힘쓰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자살률은 2015년 이래 25~26명 대에 정체돼 있다.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자살률이 더 올라갔을지 모르므로 성과가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그간 자살률 감소 목표를 달성하는 데 거듭 실패해 온 건 사실이다. 실패 원인으로는, 범부처적 지원을 끌어낼 수 있는 거버넌스의 부재와 자살예방사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예산과 인력 부족 등이 주로 거론돼 왔다. 최근에는 지자체의 역량과 책무성을 강화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그렇게 해서 자살예방정책이 원활히 추진된다 하더라도 소기의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지난해 발표된 ‘제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4월)과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12월)의 주요 정책들을 살펴보면 이렇다. 정신건강검진의 격년 실시와 자살예방상담서비스 강화, 생명존중안심마을 조성, 고위험군 발굴과 집중사례관리, 자살예방교육 의무화와 인식개선 캠페인, 자살시도자·유족에 대한 사후관리 등이다.
이는 대체로 자살을 정신병리학적 문제로 전제하는 접근이다. 물론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충동을 겪는 이들에게 긴급 심리상담과 정신의학적 개입은 필수적이다. 또한, 자살의 의료화 프레임은 (의지 박약의 문제가 아님을 드러내며) 자살시도자와 유족에 대한 낙인을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신건강 차원의 접근만으로 자살 위험을 온전히 없앨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살은 개인의 유전적, 심리적, 신체적 요인과 더불어 대인관계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자살의 원인(동기)은 정신건강과 같은 어느 한 가지 요소만으로 환원될 수 없다. 자살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자살생각의 주된 이유는 ‘경제적인 어려움’(44.8%), ‘가정생활의 어려움’(42.2%), ‘정서적 어려움’(19.2%) 순으로 나타났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실제 자살자 중 50대 남성 비율이 가장 높은데, 이는 실직과 파산 등 경제적 어려움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빈곤(화)은 자살의 중요한 요인으로, 최근 한 연구결과에서도 경제적 수준이 낮거나 경제 상황이 나빠질 때 자살발생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노인에서의 높은 자살률도 노인 빈곤 문제와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자살예방대책에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금융·신용·복지 서비스 지원을 연계하는 계획 정도만 단편적으로 제시돼 있을 뿐이다.
자살위험성이 높은 사회집단에는 정신질환자와 경제적 하위계층 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성소수자, 북한이탈주민, 이주노동자 등도 포함된다. 또 최근에는 특히 여성 청년에서 자살률이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다. 이들은 모두 정치적·경제적·문화적 권력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적 약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정부는 대상자 맞춤형 자살예방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이것이 이들을 자살에 취약하게 만드는 사회구조적 요인까지 포괄하는 개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부의 자살예방정책에는 자살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한 고려가 크게 부족하다. 정책의 실행가능성이라는 현실적 이유를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이것이 자살을 단지 병리적 행위로 단순화하는 의료화 모델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따르게 되면 자살의 구조적 요인은 간과될 수 밖에 없다. 생의학적 자살예방 담론은 자살에 대한 도덕적 비난과 자살의 범죄화 경향에 맞서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사회 부정의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어렵게 하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살을 좀더 다양한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살, 차악의 선택>(2010)의 저자 박형민은 실제 발생하는 자살 가운데 많은 사례들이 오랜기간 ‘성찰적’ 과정을 거친 결과로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자살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지향하는 적극적 행위로 해석될 수도 있다. 만약 자살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 억압되고 배제된 약자들이 자살(시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했는지, 그 목소리를 복원하는 작업도 자살예방을 위한 노력에 함께 포함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살예방 상담과 치료, 교육 등이 지금보다 강화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동시에 자살의 불평등성에 주목하는 가운데 자살예방정책이 탈정치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의 압력 속에서 왜곡되고 불의한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살 고위험군을 발굴하고 모니터링하는 사례관리는 특정 인구집단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국가의 생명정치적 수단으로 기능할 수도 있고, 자살자의 미래 기대소득 감소분을 계산하는 사회적 비용 담론은 경제적 가치가 적은 이들의 죽음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지 모른다.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고 자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정의의 관점과 지향을 보다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결국 자살예방정책의 수준을 뛰어넘는, 사회 전체적 변화를 추구하는 과제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제안에 비현실적인 생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말자. 각자도사 사회는 그대로인데 자살자 수만 급감하길 기대하는 게 더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극복해가는 여정 속에서 자살로부터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음 세대 어린이들에게 언제까지 자살위험사회를 물려줄 순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