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 249호 ‘건강한 건강 수다’>
글_ 오로라 이모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에 딴지 놓는 걸 좋아해요. 건강 정책을 연구하고 있어요.
그림_ 오요우 삼촌
아침 시간, 어떻게 보내? 씻고, 옷 입고, 밥 먹고, 가방 싸느라 바쁘지? 이 일들을 혼자 하는 날도 있겠지만, 보통은 도움을 받을 거야. 아침을 떠올려 봐. 잠을 깨우는 목소리, 밥 냄새, “오늘 비 온대.”라는 말과 함께 건네받은 우산 등. 이런 도움이 없다면 아침 준비가 훨씬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릴 거야. 이 일은 보통 돈을 받지 않고, 잘 보이지도 않아. 그래서 ‘그림자 노동’이라고 불리기도 해. 사람들은 보통 돈 받는 일만 노동이라고 생각하잖아. 늘 곁에 있지만 좀처럼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 일들이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는데 말이야.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아. 몸으로 하기도 하고, 신경을 많이 쓰기도 해. 예를 들어, 아침밥을 만드는 것, 옷을 개는 것과 같은 일은 주로 몸으로 해. 하지만, 가족들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하고 찾아보는 것, 가족들의 기분을 살피며 걱정하는 건 정신적인 일이야. 예를 들어 가족을 위한 쇼핑을 생각해 봐. 다른 가족을 위해 틈틈이 핸드폰으로 물건을 고르는 걸 본 적 없니?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는 모습이 별로 힘들지 않아 보였을 수도 있지만, 가족을 위해 최선을 선택하려고 머리와 마음을 계속 쓰는 일이야.
이런 일 대부분이 여성의 몫이야. 세계적으로 여성들은 남성보다 하루 평균 3~6시간을 더 많이 무급 가사 노동에 쓴다고 해. 직장에서 일을 한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야. 남아공의 여성 광부들은 거의 잠도 못 자. 새벽 5시에 광산에 가야 하는데, 그 전에 가족들을 챙기려면 2시에 일어나야 한대. 광산에서의 일도 쉽지 않은데, 이른 새벽에 일어나 집안일까지 하는 거야. 이러다 보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겠지. 충분히 쉬지 못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게 되니까. 한국도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여성의 가사와 육아 시간이 늘었고, 스트레스와 피로도 심해졌다고 해.
우리는 이런 돌봄에 감사하라고 배워. 어버이날의 카네이션처럼 고마움을 표현하라고 해. 하지만 생각해 봐. 가족을 돌보는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에 감사해하는 것이 그 일을 영원히 엄마의 몫으로 굳어지게 하는 건 아닐까?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수고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는 의미가 될 수 있으니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는 건 중요해. 응원이 되고 힘이 되잖아. 하지만, 변화를 위해서는 사랑과 헌신이라는 표현이 자칫 위험할 수 있어. 아름다운 표현이 현실의 불공평한 구조를 가릴 수 있거든. 우리는 이 현실을 똑바로 보고, 더 평등한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해. 이를테면,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공평하게 집안일을 분담하고, 사회적으로는 이러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원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해.
이런 변화를 위해 우리가 해나갈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먼저, 집안일을 잘 살펴보는 것부터 해볼 수 있을 거야.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 일에는 어떤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지, 성별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는 거지. 그리고 우리도 그 일에 참여할 수 있어. 예를 들어, 집에서 설거지를 돕거나, 동생을 돌보는 것. 불평등한 남녀 노동 분담과 관련해서는 우리부터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해. 유니세프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5-14세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집안일을 40%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대. 성별 차이가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는 거겠지. 그러니 집에서도, 학교에서도‘여자가 잘하는 일’,‘남자가 잘하는 일’이라고 나누지 않고 함께 일하는 노력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