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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체결규모 세계 1위 국가’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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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열린 7.4전국농민대회에 왔다가 지금껏 귀가하지 못한 청년 농부가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김재영사무국장은 이날 1톤 트럭에 빈 농약살포기계를 싣고 왔다는 이유로 현재 남부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정부가 지난 6월 ‘쌀 15만톤 시장격리대책’을 발표했지만, 산지쌀값은 역대급 하락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전국농민대회를 앞두고 농민들은 정부에 쌀값 근본대책 수립을 요구하며, 이대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항의의 뜻으로 ‘농기계를 반납하겠다’ 고 선포했다. 농민단체들은 그간 집회에 농민의 상징물로 트랙터나 이양기 혹은 농작물을 가져온 바 있고, 전날 한우생산자집회에서는 소를 싣고 와 한우반납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7.4전국농민대회에서 경찰은 농기계들의 서울 진입을 과도하게 진압했을 뿐만 아니라, 농약살포기계는 차량에 실려만 있었을 뿐인데도 김재영 농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연행하고 끝내 구속했다.

 

지금 농민들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작년 4월 윤석열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거부권 발표에서 드러났듯이 현 정부는 생산가격에도 못 미치는, 그나마 10년 전 목표가격인 20만원(80kg)의 쌀값마저 보장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 7월 3일 발표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농정방향 역시 오직 물가안정을 위한 ‘농산물 수입확대’ 뿐이다. 같이 나온 <역동경제 로드맵>에서는 대외여건을 ‘지경학적 분절의 심화, 경제안보에 입각한 자국우선주의 기조 확산’으로 진단하고, 이에 대하여 ‘2027년까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규모 세계 1위 국가’가 되는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으로 대응한다고 밝혔다. ‘FTA 체결규모 세계 1위’ 목표가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것은 1995년 이후 신자유주의 자유무역협정체제 하에서 농산물 시장개방의 직격탄을 맞아 왔던 농민들에게는 주요 농산물의 생산기반 붕괴와 농촌의 빈곤화로 내몰릴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적 차원에서의 농정의 흐름은 자국 농민과 농업기반 안정화를 우선에 두며 공정가격 보장과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2023년 11월 폴란드에서 시작된 농민들의 도심과 고속도로 점거 트랙터 시위는 2024년 2월까지 유럽 22개국에서 이어졌는데, EU는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농민들의 요구에 따라 남미공동시장(MERCOSUR)과의 FTA 협상 중단, 다른 모든 FTA 유예 등의 보호정책으로 선회하였다.

 

반면 윤석열정부는 2027년까지 식량자급율을 55.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는데(관련기사), 이처럼 일관된 농산물 수입확대 방침 하에서 어떻게 식량주권을 확보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농민들이 정치적 입장과 의사를 표현하고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통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것을 범죄화하고 정치적 참여의 권리를 억압하는 상황에 이른 지금, 농촌과 농민의 권리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째, 한국 정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국제분업과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식량생산과 공급체계가 바람직한가이다. 소규모 가족농과 농민은 전 세계 인구의 70-80%를 먹여 살리지만, 기아와 빈곤에 처한 사람의 70% 이상도 역시 농민이란 사실은(참고문헌) 자유무역협정이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체계적인 농업 수탈의 구조라는 것을 명백히 드러낸다. 더욱이 한국에서 쌀은 물가관리의 희생양이자 농촌을 통제하는 수단이었다. 그런 농민들에게 이제 와서 양곡관리법이 ”시장의 수급 조절기능을 마비시킨다“며 윤석열정부와 여당은 쌀을 다른 상품과 달리 특별대우를 할 수 없으니 ‘형평성’에 맞게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후재난의 피해와 인구감소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 농민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자유무역이라는 불평등하고 철 지난 사지로 내모는 것이 어찌 형평한가.

 

우리가 생각하는 형평성이란 농산물의 가격이 생산원가를 보장하는 수준이 되어야 할뿐 아니라, 농민들이 도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특별한 기여에 보상하고, 농촌 지역사회를 유지하면서 존엄하게 그 일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형평성은 정의롭게 마땅한 몫을 나누는 기준을 의미하는 것이지, 오로지 상품의 시장가격으로만 경쟁하는 것으로 왜곡되어선 안된다. 의료, 교육, 주거 등 삶의 모든 필수요건들에 대해 시장에서의 이익 여부를 따진 결과 지금 같은 농촌의 쇠락과 불평등이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둘째, 농촌과 농민을 살리는 대책은 농민에게 있다. 농민들의 노동이 제대로 보상받고 품위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을 넘어, 기후재난 대응·생물다양성 보호·식량주권 확보라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들어내는 것은 현재 전지구적 과제이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가족농은 세계식량생산의 80%를 맡고 있다. 이들은 지역의 농생태학 및 에너지 활용과 방제, 자원과 토양관리 등 광범한 맥락적 지식을 식량 및 농업생산관행에 적용함으로써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관련 자료). 그래서 많은 국가들이 소규모 가족농들을 생태환경적인 농식품 생산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다양한 기술적, 재정적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체 농가의 80%가 소규모 가족농이다. 정부는 밀착된 지역기반의 경험과 지식을 살려 대안적이고 회복력 있는 모델을 시도하는 농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현재 지역소멸 혹은 지역불평등의 최전선에 있는 곳들은 농업이 경제적 기반이 되는 지역들이다. 가장 불평등한 지역과 사람들의 노하우가 다시 지역과 국가, 지구의 생존의 열쇠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농민들의 참여의 권리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며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점차 농민은 정치적으로 가장 주변화된 집단이 되어가고 있다. 고령화와 함께 감소하는 인구 규모(2023년 기준 전체인구의 4%)로나 그들이 시장경제에서 가지는 몫(농업 부문은 총 GDP의 3.2%, 전체 예산중 농업예산 2.8%)으로 따르자면, 농민들의 사회정치적 권리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대표되지 못한 채 단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치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결정에 대하여 참여할 권리는 모든 인간의 기본권이다. 유엔농민권리선언 10조에도 “농민들이 자신의 삶, 토지, 그리고 생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 사업 또는 계획의 준비 및 시행 단계에서 직접 그리고(또는) 대표 단체를 통해 적극적이고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참여의 권리는 정책수행과정의 민주적 결손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옹호되며, 이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주권자들이 실현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국가는 농민들이 중요한 농정 정보에 접근하고, 그 내용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공적 논의 과정에 농민 당사자가 참가하여 발언하고 그들의 주장이 공식적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동원이나 민원수준의 참여를 넘어서기 위해 이해당사자로서 농민들은 정책에 대하여 정부나 민간사업자들이 가지는 정보와 같은 수준의 내용을 숙지해야 하며, 농민들의 결정 역시 다른 행위자들의 결정만큼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더욱이 농민들의 정치적 참여는 민주주의의 규범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동체의 문제해결에서 윤리적이고 실용적인 차원에서도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더 확대되어야 한다.

 

김재영 농민의 구금 뒷바라지 비용모금을 제안한 동료농민은 “자기의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 청년이 심각한 사태를 발생시키지 않았는데도 구금시키는 세상은 그리 옳은 세상이 아니” 라면서 “‘의는 외로우면 안된다’”라고 적었다.

 

지금 ‘의를 외롭지 않게 하려는’ 수많은 농민들이 “윤석열 정권, 농업을 버렸다”고 진단하며 탄압에 대한 항쟁을 선포하고, 8월 6일 긴급농민대회를 예고했다. 약자만 골라서 일방적으로 싸우는 윤석열정부가 농민들의 입을 틀어막고 이대로 죽어가도록 내버려 둔다면, 농민들의 오랜 희생과 불평등한 삶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대한 시민들의 분노로 정권 자멸의 순간을 앞당길 뿐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참고문헌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2024.7.3.) <세계 농민들 생존권 투쟁의 중심, 공정가격 그리고 식량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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