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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과 취약성이 만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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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안녕을 묻기조차 망설여지는 요즘이다. 폭염이 길어지면서 벌써 스무명이 넘는 온열질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분간 무더위가 이어질 것이라고 하니, 노약자와 환자, 그리고 특히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야외 노동자들의 건강 피해가 우려스럽다. 그런데 끓어오르는 건 단지 기온만이 아니다. 지난주 광복절 행사가 사상 초유 두 쪽 난 것을 비롯해 대통령의 연이은 파행적 국정운영으로 인해 사회적 갈등도, 사람들의 마음도 끓어오르고 있다.

 

우리는 지난주 논평에서 현재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는 민주주의 문제를 다루었다. 누가 뭐래도 그 일차적 원인과 책임은 가장 큰 정치권력을 가진 대통령에게 있을 것이다. 대통령직을 맡은 개인 한 사람의 독선적 태도와 무능한 리더십, 이념적 편향과 왜곡된 역사관이 얼마나 큰 (불필요한) 사회적 고통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지, 우리 모두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집권세력의 교체나 권력구조 개편(내각제 등)만으로 당면한 민주주의 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무너진 ‘최소한의 상식’을 회복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투쟁의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몫(목소리) 없는 자들의 몫(목소리)”을 되찾아주는 것이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과 사회적 소수자·약자에 대한 공고한 차별과 억압을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특정 정권의 차원을 넘어서는 구조와 체제의 문제라는 점에서 우리의 공적 분노 역시 특정 개인과 정치세력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지난 논평들에서 누차 밝혔듯이,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는 구조와 체제의 변화를 필요로 하며, 이는 자유, 평등, 평화 등 사람 중심의 가치를 지향하는 시민들에 의한 민주적 통제와 공적 지배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 힘든 시절이지만, 사회권력 강화를 위한 대안을 찾는 일에 함께 노력해야 할 이유다. 사회권력의 강화는 보다 많은 이들이 정치적 주체로 정립되면서 각 분야에 흩어져 있는 사회운동들의 더 큰 연대를 통하여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오늘날 시민사회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공공성 담론이 지닌 잠재력과 한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공공성(公共性, publicness)’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다차원적 개념이다. 비교적 많이 알려진 논의를 따르면, 공공성은 ‘국가와 관계된 공적(official)인 것’이면서, ‘모든 사람과 관계된 공통적(common)인 것’이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open)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흔히 공민성, 공익성, 공개성이라는 세 가지 핵심요소로 구성된다거나, 절차적 공공성, 주체로서의 공공성, 내용으로서의 공공성으로 구분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공공성 개념의 특징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와 구성이 계속 달라지는 맥락의존적 특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개념적 유동성 내지 확장성 덕분에 공공성은 구체적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와 열망, 필요 등을 담아내는 정치적 지향이자 사회적 규범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회운동과 투쟁들이 공공성을 기치로 내걸고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물론 공공성에 대한 이러한 접근이 낯설 수 있다. 하지만 공공성 개념이 비정형적 특성을 가진다는 사실은 기존 연구와 논의를 통해 잘 드러나 있다. 국내 전력산업 구조 개편과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담론을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공공성은 ‘공-기표(empty signifier)’로서의 특성을 가진다(최규연, 2020). 이는 공공성이 고정된 기의 없이 광범위한 맥락에 활용되면서 각 맥락에 따라 최적화된 서로 다른 기의를 창출한다는 의미다. 공-기표로 탈의미화된 공공성은 여러 담론에서 ‘사적 이윤 추구에 반대되는 모든 것’이라는 기저 의미를 공유함으로써 더 큰 담론적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공공성을 바람직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일종의 대항개념으로 구성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김창엽, 2019). 전국민 건강보험 도입에 따른 의료이용량 증가가 의료기관들의 과도한 영리추구 행태와 그에 따른 문제점들로 이어지면서 과거에는 거의 쓰이지 않았던 공공의료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 역사적·경험적 근거이다. 공공성을 ‘반-현실’로 규정하는 접근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바꾸는 실질적인 지향이자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공공성을 이렇게 구성된 개념으로 정의하면, 맥락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고 폭넓게 의미를 확장(변주)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민주적 공공성을 고안한 사이토 준이치가 공공성을 “자유를 위한 (어느 누구도 ‘행위할 권리’, ‘의견을 피력할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을 정치적 자유를 위한) 장소”로 규정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특성 때문일 테다. 따라서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그동안 ‘공공’에서 배제되었던 ‘비국민’과 ‘비인간’ 존재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공공성을 재구성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다만 공공성을 단지 공-기표로만 간주할 경우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에 의해 왜곡될 우려가 있다. 진주의료원 폐업 당시 홍준표 도지사가 병원 문을 닫아 혈세를 아끼는 것이 공공성을 높이는 길이라는 논리를 펼쳤던 게 그 단적인 예이다. 또 구체적 현실에서 벌어지는 공공성 투쟁의 성과가 특정 집단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비치는 경우 그 담론적 효력을 상실하게 될 위험도 있다. 이는 공기업 민영화 저지 투쟁의 결실로 노동조합이 고용보장의 이익을 얻듯이 구체적인 이익향유의 집단은 쉽게 가시화되는 반면, ‘공공이 향유하는 유익’은 비가시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배권력의 악의적 프레임 공세일지라도 시민 다수가 이렇게 인식하게 되면 공공성 담론의 정치적 효과는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공공성 개념은 분명히 권위주의적 국가권력(구조)과 신자유주의적 경제권력(구조)에 대한 문제인식과 대안의 틀로서 구성되어 왔다. 특히 지난 199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의 편입이 본격화되고 국가권력이 경제권력의 조력자가 된 상황에서 사회권력이 이에 맞서기 위한 수단으로 공공성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즉, 공공성은 사회 모든 영역으로 시장 논리와 기제가 잠식해 들어오는 것에 대한 대항개념으로서의 성격이 크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공공성을 둘러싼 해석 투쟁의 문제를 비롯해, 세부 영역의 공공성 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집단 간 엇갈린 이해관계와 권력불균형으로 인해 연대가 약화될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민주주의 강화를 위해 공공성 개념을 적극 재구성하면서도 이러한 위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공공성 강화를 통해 장기적, 거시적 차원에서 모두가 향유하게 될 (현재) 비가시적인 공공 유익을 가시화하는 시도일 수 있다. 또는 교육, 주거, 돌봄, 에너지 등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의 공공성 강화 실천들이 나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새로운 공통감각(커먼즈)을 만들어내는 과제일 수도 있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예컨대, 건강보험 급여 보장성을 높이자는 의료 공공성 운동은 비교적 쉽게 많은 이들의 동의를 모을 수 있겠지만, 미등록 이주민에게도 ‘국민’과 동등한 의료보장 자격을 부여하자는 의료 공공성 운동의 경우에는 그만한 호응을 얻기 힘들 것이다. 나와 내가 속한 집단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혹은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그 운동에 연대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변화되어야 할까?

 

공적 주체가 체계(체제)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공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과정을 공공성이라고 본다면, 자신의 유불리를 초월한 공공성 강화 운동은 바로 공적 주체의 변화, 특히 ‘관계론적 전환’을 동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곧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주체라고 하는 기존의 허구적 근대 자유주의 인간관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를 상호의존 관계에 있는 ‘취약한 주체’로 재인식하는 것을 뜻한다.

 

물론 취약성은 특정 집단과 계층을 낙인찍고 주변화하는 지배권력의 온정주의적 통치 담론으로 쓰일 위험이 있다. 당연히 우리는 이러한 취약계층 담론에 반대하며, 사회구조적 부정의 문제에서 기인한 병리적 취약성을 줄이고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취약성은 우리 모두 서로 연결되고 의존하는 존재라고 하는 사실, 즉 취약하기 때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의존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취약한 것이라고 하는 인식(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지금과 전혀 다른 사회를 상상하고 지향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경험을 비롯해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재난은 동시에 우리 모두 취약한 사회적 존재라고 하는 공통감각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공공성 담론에 ‘보편적 취약성’을 새로운 사회윤리로 결합할 수 있다면 앞서 고민했던 난제들을 해결하고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공공성과 취약성이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또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 앞으로 많은 사회적 논의와 실천이 이뤄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창엽. (2019). 건강의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 한울아카데미.

최규연 (2020). “공공성은 공-기표인가? : 에너지 노동-환경 담론과 공공성을 중심으로.” 경제와사회, 209~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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