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등록외국인 현황에 따르면 2024년 6월 기준 국내 체류 이주여성은 약 59만 4천 명이다. 체류자격별로는 결혼이민(F-6)이 약 11만 3천 명으로 가장 많았고, 영주(F-5), 유학(D-2), 방문동거(F-1), 방문취업(H-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많은 여성들이 가정을 이루거나, 공부하거나, 일을 하는 등 저마다의 이유로 한국에 이주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곳에서의 삶은 어떠한가.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출입국 단속을 피하던 이주여성 노동자가 유산하였고, 자연분만으로 입원한 미등록 이주여성에겐 약 1,500만 원의 병원비가 청구되었다. 이혼 후 5년 동안 노숙 생활을 하던 이주여성은 구청의 퇴거 요구에 홧김에 방화를 저질러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아리셀 화재 참사 피해자의 절반이 여성 이주노동자였다. 이 모든 사건은 사회, 정치, 경제 등 다방면에 걸친 구조적 문제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이주여성이 한국에서 인권을 보장받고 건강한 삶을 이어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주여성을 한국 사회의 저출산·고령화를 해결해 줄 ‘마법’ 같은 존재로 여기며, 이들에게 의존하려는 방안만을 모색하고 있다.
한때 인구 감소 완화와 지역사회 활성화를 위해 농어촌 지자체를 중심으로 도입된 ‘국제결혼 지원 조례’는 이주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취급한다는 비판을 받아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폐지 절차를 밟고 있다. 어느 지자체에서는 혼인 적령기를 놓친 농촌 총각과 베트남 유학생의 만남을 주선하는 사업을 추진했다가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당하기도 했다. 필리핀 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역시 저출산 대책의 일환임을 강조하고 있다.
형태만 다를 뿐, 이주여성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정부의 국정 기조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하지만 핵심 문제는 이주여성이 한국에서 정주하고, 출산까지 하려 해도 우리 사회가 그에 걸맞은 여건을 갖추었는가 하는 점이다.
현재 전체 이주여성의 약 40%가 비수도권에 체류하고 있으며, 체류자격별로는 계절근로자의 95%, 비전문취업자의 58%를 차지한다. 농어촌 지역 산모들은 분만 산부인과 부족으로 원정 분만을 해야 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데,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이주여성은 ‘인종(국적)’, ‘젠더’라는 차원에 ‘지역’이 더해져 더욱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주여성의 건강 문제에 대한 개입과 지원은 ‘가족’을 구성하고 ‘내국인 자녀를 출산한’ 여성들에 한해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마저도 의료진과의 의사소통 문제, 임신·출산·산후조리 문화 차이가 고려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젠더 관점에서 모자보건을 넘어서는 이주여성의 건강 문제는 외면받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주여성의 건강, 특히 성·재생산 건강 문제와 관련하여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첫째, 임신·출산을 원하는 이주여성을 위한 안전한 지원체계 구축이다. 그뿐만 아니라 피임과 임신 중지에 대한 포괄적인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보장도 필수적이다. 이는 이주여성이 자신의 몸과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갖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둘째, 이주여성의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는 한국 사회에 대한 가치나 자격 증명 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체류자격이나 한국인 배우자, 자녀 양육에 종속되어 제공되는 배제적인 건강보험이 아닌, 보편적 건강보장이 필요하다. 이는 모든 이주여성이 차별 없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권리 보장이다. 마지막으로, 이주여성에 대한 배제적이고 차별적인 제도를 가능케 하는 혐오와 차별, 사회적 권력관계에서 불리한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이주여성을 인구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여기고 있지만, 구조적 문제들이 그들의 존엄한 삶을 지속적으로 침해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주여성은 단순히 국가적 목표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와 권리의 주체임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