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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조리사는 어떻게 급식대가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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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사라지는 ‘급식대가’

 

“정신을 차려보니 반쯤 비웠다.” 넷플릭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 흑수저 ‘급식대가’의 음식을 맛본 미슐랭 별 3개 심사위원의 평가다. 경남 한 초등학교에서 15년 근무한 그녀의 음식은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이런 ‘급식대가’를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학교 급식조리사 지원자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2020~2022년 3년간 전국에서 퇴사한 학교 급식조리사는 1만3천944명(☞관련기사: 바로가기). 2022년 기준으로 정년퇴임 전 자진 퇴사한 비율은 55.8%(3,016명), 입사 후 6개월 내 퇴사한 비율은 36.6%(1,104명)로 둘 다 증가 추세다. 신규 채용 미달 수준도 심각하다. 2023년 기준, 신규 채용 예정 인원 4,023명 가운데 873명(21.7%)을 뽑지 못했다. 강원 지역은 6명 전원 미달, 서울과 부산도 미달률이 각각 49.5%, 48.8%에 달했다.

 

퇴사가 늘고 신규채용이 어려운 데는 이유가 있다. 급식조리사 1인당 책임져야 하는 사람 수(식수 인원)가 많다보니 노동강도가 너무 세다. 건강 문제 또한 심각한데, 2021년 이후 폐암 산재승인을 받은 급식조리사가 113명에 달한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조리와 유해물질

 

고온에서 음식을 조리할 때 증기와 유해물질이 만들어진다. 이를 ‘조리흄(cooking oil fume)’이라 한다. 튀김이나 볶음을 할 때 기름과 음식이 타거나 과열되면서 만들어지는 미세 입자와 유해가스가 대표적인 조리흄이다. 국제암연구소는 조리흄을 2A군 발암물질로 분류한다.

 

울산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유철인 교수 연구팀은 2024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 학교 급식조리사의 조리흄 노출과 폐암과의 관계를 분석했다(☞논문 바로가기: 한국 학교 급식노동자의 조리흄 노출과 폐암 검진결과 분포).

 

연구팀은 55세 이상 또는 10년 이상 근무한 급식 종사자 203명을 조리흄 노출 그룹(167명)과 비노출 그룹(36명)으로 나누었다. 급식조리사와 조리보조원은 노출 그룹, 영양교사는 비노출 그룹이었다. 노출 그룹은 조리, 서빙, 음식 운반 및 조리 도구 관리 업무를 담당했고, 비노출 그룹의 영양교사는 조리사 감독, 행정 업무, 식단 계획 및 배급 관리 등을 수행했다. 연구 대상자들은 검사결과 등급별로 분류됐다. 1등급에서 4등급(4A, 4B 및 4X) 가운데 숫자가 클수록 폐암 가능성이 높으며, 3등급 이상은 폐암 양성그룹으로 정했다.

 

위험의 환기

 

연구 결과는 예상 그대로였다. 노출 그룹(167명)에서 3등급 이상인 폐암 양성그룹이 17명(10.2%), 비노출 그룹(36명)에는 폐암 양성그룹이 한 명도 없었다. 노출 그룹에서 4A(폐암 가능성 5~15%), 4B(폐암 가능성 15%이상) 및 4X 등급(폐암 가능성 매우 높음)인 사람은 각각 4명(2.4%), 1명(0.6%), 4명(2.4%)이었다. 근속연수, 마스크 착용 여부, 가정 내 조리시간 등 다른 요인들은 폐암과 별 상관이 없었다.

 

노출 그룹 중 폐암 양성그룹과 비양성그룹 간에 유일하게 차이를 보인 건 작업장 환기 상태였다. 폐암 양성 그룹에서 작업장을 환기한 비율은 70.6%, 음성 그룹의 작업장 환기비율은 94.0%였다(p=0.007). 환기가 허술한 경우는 환기를 철저하게 한 경우에 비해 폐암 양성그룹이 될 가능성(OR)이 14.89배 높았다(p=0.000).

 

갈아 넣는 뼈와 살

 

장시간 일하는 급식조리사의 폐질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밝힌 논문은 그동안 많이 발표되었다. 위 연구 역시 선행연구 결과들과 일치한다. 그런데 페암만 문제가 아니다. 급식조리는 근골격계 질환, 화상 등 산재 사고가 많다. 노동자들 스스로 “몸을 갈아 넣어서 하는 급식”이라고 말한다(☞연구보고서 바로가기: ‘밥하는 아줌마’(급식조리사)의 폐암 산재인정과 대안을 찾아서).

 

폐암 산재인정자 가운데는 이전에 이미 어깨 수술, 손목 수술을 받은 경험도 꽤 있다. 심각한 건강 위협과 엄청난 노동강도를 견디다 못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떠나고 있는데도 급식 조리가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 보고서에서 한 노동조합 활동가는 급식 조리를 ‘별 것 아닌 일’로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라고 말한다. 급식은 ‘별 볼 일 없는 아줌마’들이 조리하고 돈과 권력 없는 사람들이 주로 먹는다. 그래서일까?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취급받기 일쑤다.

 

급식 대접받는 세상

 

최근 일부 소방서의 끔찍한 급식이 공개돼 파장이 일었다. 어떤 곳은 급식단가가 3천원 수준으로 서울시 공립고등학교 무상급식 단가인 5,398원보다 적었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사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벌써 몇 년 동안 여러 번 비슷한 보도와 비슷한 파장이 있었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마치 환풍기 등 환기장치 설치가 잘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급식’을 깔보고 얕잡아 보는 사회적 편견이 급식조리사들을 힘들고 위험한 작업환경으로 내몰고 학생과 노동자들이 형편없는 급식을 먹게 만든다. ‘흑백요리사’에서 흑수저와 백수저는 똑같은 조리 환경에서 동등하게 제공된 재료를 이용해 요리했다. 그럴 때 흑수저는 백수저를 이기고 급식조리사는 급식대가가 되었다. 안전하고 쾌적한 조리 환경과 질 좋은 재료가 급식조리사들에게 제공되면, 수많은 급식대가들이 탄생할 것이다. 급식이 대접받는 날이 올 때, 자라는 아이들과 열심히 일하는 소방관들이 몇십만 원짜리 파인다이닝에 가지 않아도 학교와 작업장에서 급식대가의 ‘요리’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서지 정보

Kim M, Kim Y, Kim AR, Kwon WJ, Lim S, Kim W, Yoo C. Cooking oil fume exposure and Lung-RADS distribution among school cafeteria workers of South Korea. Ann Occup Environ Med. 2024;36.e2.

류지아, 김영정, 정진주. 2022. ‘밥하는 아줌마’(급식조리사)의 폐암 산재 인정과 대안을 찾아서. 사회건강연구소.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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