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사는 곳에 따라 기대수명이 다를까? –
박은혜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월세 계약기간 만료를 앞두고 이사를 결심했다. 부동산 앱을 켜고 올라온 매물을 둘러보니, 비슷한 크기와 구조를 가진 집이라도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교통 및 주변 환경이 좋을수록 집값은 비쌌고,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저렴해졌다.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 부담해야 할 주거비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같은데, 사는 곳에 따라 건강 결과까지 달라진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역 간 건강격차를 이해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첫 번째는 “누가 이곳에 사는가?”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구성효과(composition effect)로,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연령, 성별, 인종, 교육수준, 소득수준, 생활습관 등을 고려하는 접근이다. 두 번째는 “이곳은 어떤 곳인가?”는 질문과 연결되는 맥락효과(context effect)로, 지역의 교통, 산업 구조, 환경, 의료자원의 분포, 이웃 관계 등을 중심으로 본다. 최근에는 이 두 관점에서 더 나아가 특정 지역이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어떤 권력관계 안에 놓여 있는지까지도 포괄하는 연구도 늘고 있다.
오늘 소개할 연구는 이 세 가지 관점을 바탕으로, 영국 내 지역별 기대수명 차이는 왜 발생하며, 가장 큰 기여요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했다(☞논문 바로가기: 뒤처진 걸까? 영국에서 ‘지역 박탈 심화’와 기대수명 증가에 대한 종단적 생태학적 연구(2004년~2020년)).
영국 정부는 2000년부터 4년마다 “지역별 박탈 수준을 평가한 지표(IMD: Index of Multiple Deprivation)”를 발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지표인 IMD 2019는 (1)소득 박탈, (2)고용 박탈, (3)교육, 기술 및 훈련 박탈, (4)건강과 장애, (5)범죄, (6)주택 및 서비스 접근 장벽, (7)생활환경 등 7개 영역과 보조 지표(어린이와 노인 대상 소득 박탈)를 종합하고 가중치를 고려해서 317개 지방 당국(local authorities, LAs)별로 산출되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진한 파랑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가장 박탈된 지역이고, 흰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가장 덜 박탈된 지역을 의미한다(<그림 1> 참고).

그림 1. 영국의 지역별 복합박탈지수(IMD 2019) 분포
(출처: https://www.gov.uk/government/statistics/english-indices-of-deprivation-2019)
연구팀에서는 2010년, 2015년, 2019년 IMD에서 상위 20%에 속하는 박탈 지역 51곳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했다. 이 중 박탈 지역이 집중된 북부 30곳과 나머지 21곳으로 구분하고, 2004년부터 2020년까지의 기대수명을 비교했다. 그 결과, 비슷한 박탈 수준을 가진 지역임에도 북부와 나머지 지역 간 기대수명 격차가 분명하게 존재했다(<그림 2> 참고). 여성의 경우 북부 지역과 나머지 지역의 기대수명 격차가 평균 11.7개월이었고 남성은 평균 7개월이었다. 2004년 이후 여성에서는 기대수명 격차가 31% 증가했고, 남성은 7% 증가했다. 이 격차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팀은 소득 격차 연구에서 주로 활용하는 분해 분석(Decomposition Analysis)을 진행했다.
구성효과에서는 교육수준, 인종 비율, 가구 중위소득을, 맥락효과에서는 실업률, 비경제활동인구, 일자리 밀도, 산업 및 직업 구성, 경제 규모 등을 포함했다. 또한 정치·경제 효과 측면에서는 1인당 복지 수당 손실과 지방 당국 서비스 지출을 고려했다.
분석 결과,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가구 중위소득”이었다. 여성의 기대수명 격차의 44%(5.15개월/11.7개월), 남성의 기대수명 격차의 69%(4.84개월/7개월)을 설명했다. 이는 북부 지역의 가구 중위소득이 동일한 박탈 수준의 다른 지역과 같았다면, 기대수명 격차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정치·경제 효과 변수 중 “지방 당국 서비스 지출”이 기대수명 향상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였다. 이는 북부 지역과 나머지 지역 간 기대수명 격차를 여성에서 2.77개월, 남성에서 4.19개월 감소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동일한 박탈 수준을 가진 지역이라도 지방정부의 공공 서비스에 대한 투자가 기대수명을 늘리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대수명은 0세의 출생자가 향후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연수를 의미하며,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를 나타낸다. 한국의 경우, 1970년 62.3세였던 기대수명이 2023년 83.5세로 크게 증가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그러나 지역별로 구분해서 보면 시도 간 평균 기대수명 차이는 2.34년, 시군구 간 차이는 5.84년으로 나타났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이러한 결과는 한국의 건강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는 곳’에 따라 건강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제는 ‘지역’이 한 개인의 삶의 가능성과 역량을 제한하지 않도록, 이러한 건강격차가 어디에서 기인하며 어떻게 완화할 수 있는지를 분석하고, 이를 위한 정책적 개입을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서지정보
Simpson, J., Albani, V., Munford, L., & Bambra, C. (2025). Left behind? A longitudinal ecological study of ‘regional deprivation amplification’ and life expectancy growth in in England (2004 to 2020). Health & Place, 94, 103478. https://doi.org/10.1016/j.healthplace.2025.103478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는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