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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그랬어: 건강한 건강수다] 상처 입은 나를 인정하기, 도움받기 그리고 도움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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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 258호 ‘건강한 건강 수다’>

 

글_ 류재인 이모는 동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무서워하는 치과에서 일하는 의사예요. 무시무시하다고요?

그림_ 오요우 삼촌

 

동무들, 안녕. 치과 고모야. 오늘은 좀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는데 청소년 시기의 폭력 피해가 치과 이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해.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있으니까.

 

미국의 한 연구팀이 청소년기부터 시작해서 성인기까지 따라간 연구 조사 결과를 발표했어(Testa A, Mijares L 외, 2025). 1994~1995년 처음 조사를 시행했는데, 30년 전인 당시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난 1년간 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지를 물어봤대. 분석해보니 청소년기에 폭력 피해 경험이 있을 경우 평생 동안 치과 진료 이용이 적을 수 있다고 해. 어린 시절에 겪는 폭력의 경험이 당시뿐 아니라 청소년기, 성인기에도 직간접적인 피해를 남긴다고 본 거지. 왜 이렇게까지 장기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것일까. 연구팀은 그 이유로 자신이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수치심, 그리고 폭력으로 신체적 불편감이 생겨 적절한 시기에 치과를 가지 못한 것을 언급했어. 게다가 이러한 폭력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된다면 어떨까? 피해자는 폭력을 피하는 것이 삶의 최우선이기 때문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사회활동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상황이 결국 성인기의 교육과 직업선택 등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해.

 

고모는 이제 얼마 전 있었던 일도 기억이 깜박깜박하는 나이가 되었어. 기뻤던 순간, 행복했던 기억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해서 속상할 때도 있어. 반대로 어떤 기억들은 너무 선명해서 괴로울 때도 있지. 이런 걸 요즘 말로 ‘이불킥’이라고 하나? 그나마 그 정도면 다행이지만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내가 나 자신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어. 거기에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큼 나쁜 사람도 있어서 나아질 만하면 다시 걷어차일 때도 찾아와.

 

혹시라도 친구가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거나, 나쁜 행동을 해서 힘들다면 가장 먼저 무엇부터 해야 할까. 고모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상처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야. 말은 쉬워 보이지만, 사실 상처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상처받은 일만큼 싫은 일일 수 있어. 왜냐면 그걸 인정하는 순간 내가 약한 사람이 되거든. 그런데 말이야,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도 약한 사람이 돼버려. 내 마음에 상처가 나서 약을 발라줘야 하는데, 상처가 아니라고 그냥 내버려두면 그게 계속 상처로 남게 될 수 있어. 상처 난 나 자신이라도 사랑하고 돌봐주는 것. 그걸 나 자신만큼 잘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어제 일도 깜박깜박하는 고모가 얘기하는데, 한 가지 다행인 건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들이 괜찮아질 거라는 거야. 믿기 어렵겠지만 진짜야.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있어. 지금의 나 자신을 인정하기, 그리고 도움 요청하기, 도움 받기. 그래야 도움닫기가 가능해지거든. 앞으로 기쁜 일이 더 많을 동무들아. 건강하자, 그리고 행복하자. 근데 일단은 남은 여름부터 이겨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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