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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연대본부의 공동파업을 지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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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강릉 시민들께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지난 주말 내린 비가 해갈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번 가뭄 재난이 혹여나 건강 피해를 유발하지 않도록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과 지원에 힘쓰기를 당국에 촉구한다.

 

한편 이미 많이 알려진 것처럼, 이상기후로 인한 강수량 부족뿐 아니라 물 관리 체계의 미비함도 이번 물 부족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즉, 단순한 자연 재해가 아니라, 사회적 재난의 성격을 띠는 복합재난 사태라는 점에서 향후 철저한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

 

한데 우리 사회는 ‘의료재난’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재난을 겪고 있다. 물론 이달 1일부터 전공의 대다수가 수련병원에 복귀함에 따라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 ‘심각’ 단계와 비상진료체계는 조만간 해제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전공의 인력 공백이 의료재난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돌이켜보면,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를 촉발했던 의대 증원 정책은 ‘지역·필수의료공백’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었다. (시장실패를 시장방식으로 해결하려 한) 잘못된 진단에 기초한 대안이었다고 하나, 증원책이 사실상 철회된 마당에 전공의가 돌아온다고 해서 애초 위기 상황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국가가 규정하는 재난의 틀에 머물며 안심할 수 없는 까닭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번 전공의·의대생 집단행동은 ‘진짜’ 의료재난에 대한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이 불러일으킨 부작용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의사파업에 비해 산발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실제 재난은 오랜 기간에 걸쳐 비가시적으로 진행되는 ‘느린 재난’과 유사하기 때문에 사회적 경각심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 재난을 재난으로 인식하고 호명하는 데에서 위기 극복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번 의정갈등 사태를 겪으며 얻은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보건의료위기 대응을 국가에 일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는 정권이 바뀌었어도 마찬가지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보건의료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막상 내년 예산안을 보니 공공의료 확충·강화를 위한 예산은 별로 늘지 않았고,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지원금은 14.2%로 이번에도 법정 기준(20%)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시민들이 의료재난을 극복하는 주체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 중심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보건의료개혁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를 비판하고 견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개혁 의지와 동력이 비교적 큰 정권 초기, 지금 이 시점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한때 개혁을 표방한 과거 정부들이 그랬듯 시간이 갈수록 재정 보수주의와 경제성 논리에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주 수요일(9/17) 예정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 의료연대본부의 공동파업 투쟁은 의미가 크다. 이제 전공의가 돌아왔으니 서둘러 사태를 봉합하고 수련병원의 ‘정상화’를 정치적 성과로 삼고 싶어하는 정부를 향해, 지난 의정갈등 사이에 끼어 애꿎게 피해를 입은 병원 노동자들이 이렇게 얼버무리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번 공동파업은 일단 규모 면에서 눈에 띈다. 의료연대본부에 소속된 4개 국립대병원(강원대병원, 경북대병원, 서울대병원, 충북대병원)과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식당분회 등이 참여하는데(☞관련자료: 바로가기), 네 곳 이상 국립대병원 노조가 함께 파업하는 건 2004년 주5일제 공동파업 이후 21년만이고, 특히 강원대병원은 개원(2000년) 이후 최초 파업이라고 한다. 아마 그만큼 노동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방증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공동파업은 단지 노동조건 개선만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또 국립대병원 차원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의료연대본부가 제시한 ‘4대 공동요구안’(아래 그림 참고)을 보면, 의료재난을 초래한 근본 원인인 “시장 중심의 의료체계”에서 “공공의료 중심 체계”로의 전환을 추구하는 것이 투쟁의 최상위 목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림> 의료연대본부 공동파업 요구안 (출처: ‘공동파업 브리핑 1호’(5쪽), 2025년 9월 7일자)

 

이런 도전적인 목표와 그에 따라 제시된 요구안들 하나하나가 사람 중심 보건의료개혁에 부합하는 내용들임은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단기 집중 과제와 거시적 중장기 과제에 따라 투쟁의 우선순위가 나뉘겠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병원 노동자들의 이번 투쟁이 의료재난으로부터 ‘전체’ 사회 구성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는 것이다.

 

오늘 논평에서는 특히 이번 공동파업이 정부가 제시한 ‘국립대병원 역할 강화론’의 한계와 모순을 분명히 짚어주는 투쟁이라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권역 책임의료기관으로서 국립대병원의 위상과 기능을 크게 강화하여 지역·필수의료공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계획은 지난 정부에서부터 일관되게 추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왜 국립대병원을 지역·필수의료의 중추로 삼겠다고 하는 것일까. 사실 이것 외에 달리 선택할 대안이 없기도 할 테지만, 다른 한편 이를 통해 공공병원을 확충·강화하라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무마하려는 정치적 셈법도 깔려 있을 것이다. 전자보다 후자가 더 국가 부담이 크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과연 국립대병원을 ‘공공병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형식적으론 공공병원이지만, 그동안 대학병원으로서 “교육, 연구, 진료”에 전념한다는 구실로 사립대병원과 별반 다르지 않게 운영되어 온 게 사실이다. 민간 병원처럼 더 큰 수익을 내기 위해,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 국립대병원 역시 시장경쟁을 벌여왔다는 의미다. 이러한 운영원리가 그대로 유지되는 상태에서 공공·지역의료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국립대병원의 소관 부처를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이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경영실적에 대한 평가와 성과 압박에서 풀려나지 못한다면 본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추진 중인 정부 계획들도 기존 운영방식을 답습하는 것에 불과한데,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일환으로 환자 중증도를 높이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을 시행하면서 정작 비용절감을 위해 인력충원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국립대병원의 역량 강화는 최첨단 진단·수술 장비와 기기를 도입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수익 중심 운영체제를 강화하는 효과가 크다. 무엇보다 의료와 같은 노동집약적 전문서비스는 기계로 사람을 대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병원의 역량은 그 생산되는 서비스의 질로 가늠할 수 있으며, 이는 충분히 동기 부여되고 숙련된 인력에 달려 있다.

 

즉, 공공의료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양질의 인력을 얼마나 충분히 확보하는지가 국립대병원 역량 강화의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껏 이들 병원의 고용·노동조건 악화의 주범으로 작동했던 인건비 절감 기조를 전환해야 하지 않겠는가. 의료연대본부가 요구하고 있는 실질임금 인상과 총인건비 규제 제도의 전면 개선 등이 필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것은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자본주의 병원 생산체제에서 이윤을 남기는 주된 방법은 인건비를 후려치는 것이다. 전공의 이탈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경영진은 무급휴가, 신규 채용 보류 등을 통해 인건비를 줄이는 한편, 전공의 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기존 인력의 노동강도를 높이면서도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외면했다. 이런 비상경영 조치들이 노동자와 환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고통을 야기했는지는 다음 연구보고서를 참고하기 바란다(☞바로가기).

 

다만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할 대목은, 전공의 업무를 대체하기 위해 숙련된 간호사들이 대거 진료지원 업무 전담 간호사로 차출됨에 따라 병동 간호사의 전반적인 숙련도가 저하되었다는 점이다. 선행 연구결과를 보더라도 이는 의료의 질 저하와 나아가 사망률 증가라는 부정적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관련연구: 바로가기). 이런 건강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공동요구안에 담긴 것처럼, 간호사 1인당 적정환자 수 배치를 시급히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생산(제공)과 소비(이용)가 동시에 이뤄지는 의료의 특성상, 생산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그 결과도 왜곡되기 마련이다. 국립대병원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를 외면한 채 이들 병원을 중심으로 공공의료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주장인지, 이번 공동파업을 통해 노동자들이 직접 외치고 있다. 정부와의 권력관계에서 열세에 있는 노동자들이 의미 있는 투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누구나 어디서나 건강할 권리”를 위한 싸움은 우리 모두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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