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 재판부는 후기 임신중지로 인해 살인죄로 기소되었던 권ㅇㅇ 씨에 대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권씨가 태아가 출생 후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았고, 수술을 감행하는 것은 태아의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았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또한 임신을 유지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임신중지 방법이나 사산 조치 여부 등에 대해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공동정범의 행위로 보았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이 사건은 2년 전 ‘36주 만삭 낙태 브이로그’ 보도를 통해 세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대부분의 임신중지가 초기 임신기에 이루어진다는 인식 속에서 주변화되어 왔던 후기 임신중지 문제가, 그 복잡성 및 민감성과 함께 수면 위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는 곧바로 전문가 간담회를 열었지만 별도의 개선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사건을 살인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었다.
후기 임신중지에 대한 현실적 수요는 존재하지만, 의학적 판단가이드는 부재
사건은 임신중지에 대한 논쟁을 다시 소환하였으나 재판부의 판단처럼 애초에 이 사건은 낙태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자궁 내 태아가 생존 가능한 시점에 인공적으로 배출되어 살아 있는 사람이 된 이상 이는 낙태죄의 문제가 아니라 별도의 법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수술을 진행한 의료진은 의학적 근거가 없고 권고되지 않는 방법으로 임신중지를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행위는 임신중지를 선택할 권리의 문제를 넘어 마땅히 제공되어야 할 안전한 의료라고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극단적 사례를 근거로 임신중지에 대한 옹호나 반대의 입장을 일반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이 사건은 임신중지가 왜 필수의료서비스로 다루어져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배가 나올 때까지 왜 몰랐을까?”라는 질문은 여전히 반복된다. 그러나 임신의 인지가 늦어지는 상황, 혹은 임신을 인지했더라도 임신중지 결정이 늦어지는 상황은 분명히 존재한다. 한 번도 산전 진찰을 받지 못한 채 진통이 시작된 이후에야 처음 병원을 찾게 되는 경우 역시 실제로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은 청소년,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이주 여성인 경우에서 취약하나 반드시 특정 집단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한국은 임신 여성의 연령 구조와 낮은 출산율을 고려하면 선천적 결함을 가진 출생아 비율이 높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 통계에서는 다른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러한 통계는 일정한 임신주수가 지난 이후에도 임신중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말할 수 있는 권력의 부족, 경제적 제약, 정보 부족,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 문제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진료와 결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 실제로 해당 병원과 브로커는 약 2년 동안 임신중지 시술을 통해 약 14억 원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할 수 있는 것과 다르게 임신중지를 필요로 하는 여성들은 처음부터 따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선택할 수 없는 삶의 조건들이 겹쳤을 뿐이며, 각자가 가진 정보와 자원, 사회적 조건이 충분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 구성원 중 일부일 뿐이다. 특히 후기 임신중지 상황에 직면한 당사자들은 사실상 선택권이 매우 제한되어 있고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일수록 안전하고 질 높은 의료 서비스가 더욱 절실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수요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후기임신중지를 다룬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 않고 의료계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범위를 국제적으로 넓히더라도 관련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의료인조차 거의 없는 의학적 과정에 대해 당사자가 충분히 알아보지 않았다는 책임을 개인에게 물었다.
우리는 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을 당사자의 책임으로, 죄로 인정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예방할 수 있었던 수많은 단계들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가이다.
여성은 더 이른 시기에 임신을 인지할 수도 있었고, 적절한 정보와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으며, 재정적·신체적 위험에 놓이기 전에 안전하고 존중받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충분히 다른 결과에 이를 수 있었고 그래야 했다. 이런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 책임은 사회와 국가에 있다.
지난 6년 동안 임신중지는 비범죄화되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의료 체계는 마련되지 않았다. 유산유도제의 도입, 건강보험 급여화, 의료 가이드라인 마련과 의료인 교육, 포괄적 성·재생산 건강 상담 및 정보 제공 체계 구축, 불법 거래 및 민간 의료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이 가운데 상당수는 별도의 입법 없이 행정적 조치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중 하나라도 먼저 시작했어야 한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2024년 위기임신·보호출산 지원 정책을 우선 도입했고 이 정책은 사실상 출산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초기 임신 단계에서조차 임신중지 상담과 지원 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정책은 임신의 지속과 출산을 중심에 두며 여성의 다른 선택에 대한 의사결정을 제약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의 부작위와 전문가 집단의 책임 회피, 그리고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어느 날 준비 없이 닥친 임신의 순간에 개인들은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었다. 임신중지는 의료서비스로 인정받지 못한 채 공적의료체계의 주변을 맴돌면서, 광고와 함께 의료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범죄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 접근성은 개인이 가진 자원과 지식, 인맥, 정보, 권력에 따라 달라졌다. 임신 주수도, 시술의 안전성도, 경험하는 통증도, 그리고 죄책감의 무게마저 서로 다르게 분배되었다.
최선의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로 보장하라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개인에 대한 처벌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미 형법상 낙태죄의 효력이 상실된 2021년부터 2026년 1월 30일까지 발생한 신생아 살해사건은 20건에 이르며 판결문에는 하나같이 “임신중지 실패”라는 문구가 등장했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처벌로 논의를 마무리한다면 국가는 또다시 법무부, 보건복지부, 성평등가족부 뒤에 숨어 책임을 서로 떠넘기며 눈치만 보다가 또 몇 년의 시간을 흘려보낼 것이다. 그 사이 이 사건이 만들어낸 편견과 낙인은 더욱 강화될 것이며,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은 더욱 위태로운 조건 속에서 임신과 임신중지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국제산부인과연맹(FIGO)은 어떠한 생명도 여성의 생명과 건강을 희생시키면서 보호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안전을 넘어 양질의 임신중지를 기본적인 인권이자 필수적인 보건의료 서비스로 규정하고 있다. 2024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한국 정부가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변화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같은 해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정책 부재가 여성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임신중지 지원이 가능한 의료기관 정보 제공과 임신중지 의약품의 필수의약품 지정 등을 권고하였다. 이러한 국제적 기준과 국내 권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입법공백을 핑계로 공적 체계를 마련하지 않은 국가의 부작위는 단순한 정책 지연을 넘어, 국가의 책무가 사실상 이행되지 않은 상태에 가깝다.
어떻게 더 안전하고 정의롭게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재판부는 이처럼 “성차별과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 여성에게 가중되는 불이익과 이를 완화할 사회적·구조적·법적 보호 장치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사회적 제약을 고려하여 양형을 정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판단은 여전히 여성의 몸을 주체적인 개인의 몸이라기보다 잠재적으로 임신을 하게 될 몸, 따라서 관리되고 보호되어야 하며 사회적 지원의 대상이 되는 몸으로 재현한다. 이처럼 규정된 몸을 전제로 할 때 임신중지는 의료서비스로서 정당한 지위를 쉽게 인정받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주장해 왔듯이 임신중지는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다. 재생산 정의의 관점에서 모든 사람은 충분한 정보에 기반하여 자신의 치료와 삶에 대해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 또한 아이를 가질지 여부와 언제·어떻게 임신과 출산을 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 그리고 안전하고 존엄한 환경에서 아이를 양육할 권리를 차별과 제약 없이 보장받아야 한다. 현재의 의학적 기준에서 최선의 결과에 도달할 수 있도록 양질의 의료를 제공할 책임은 의료제공자에게 있다. 어떤 시술을 받는지 설명 듣지 못하고, 근거에 바탕 해 하지 말 것이 강력히 권고된 치료방법이 수행되고 환자의 옷차림에 따라 비용이 결정되는, 다른 의료라면 허용되지 않을 행위들은 임신중지 진료에서도 허용되어선 안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의료서비스를 어떻게 더 안전하고 정의롭게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다. 이를 방해하는 것은 의학적 근거의 부족이 아니라, 이미 축적된 근거조차 부정하고 임신중지 진료에만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적 편견과 건강권 보장의 책임을 방치하는 국가이다. 더 이상 여성의 몸이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