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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돌보라면서, 일터는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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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정신건강연맹(WFMH)이 지정한 세계정신건강의 날이다. 해마다 이날이면 ‘마음을 돌보자’는 말이 넘쳐난다. 우리는 마음의 문제를 어디에서 찾고, 그 해법을 누구에게 맡기고 있는가. 요즘 방송가에는 이혼, 연애, 육아처럼 누구나 겪을 법한 일상의 갈등을 전문가의 상담으로 풀어가는 프로그램이 심심찮게 보인다. 부부와 부모, 자녀의 위기가 상담을 거치며 해소되는 장면은 이제 익숙한 볼거리가 되었다. 마음의 문제가 일상의 언어로 말해지고 관심을 받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갈등과 고통의 원인을 개별 관계와 마음에서 찾고, 해법을 전문가 상담에만 맡겨두는 것으로 충분할까?

 

마음의 고통을 상담과 치료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진단을 받고 치료를 통해 일상을 되찾은 사람도 분명히 있다. 문제는 그 언어가 고통을 설명하는 유일한 방식이 될 때 생긴다.  과도한 업무량이 번아웃으로, 불안정한 고용이 불안장애로 불리고, 해법이 상담과 관리로 모이는 순간, ‘이 일터는 왜 이런가’라는 물음은 ‘당신은 왜 못 견디는가’로 바뀐다. 이런 변화는 방송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세계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쿠팡은 10월 한 달간 오피스, 물류센터, 캠프로 참여 대상을 넓힌 임직원 멘탈 웰빙 캠페인을 진행한다(관련기사). 노동 부담이 큰 물류센터까지 캠페인이 닿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런데 같은 시기 전해지는 소식은 씁쓸하다. 올해 1~8월 청년 노동자 산재 신청이 많은 사업장 2~4위를 쿠팡 계열사 세 곳이 차지했고, 이들의 신청 건수는 이미 지난해 연간 건수의 92%에 달했다(관련기사). 과로사로 산재 인정을 받은 사례가 있어도 사측은 6년째 과로사를 부인하며 손해배상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관련기사). 전북에서는 쿠팡 물류 배송 대리점이 수수료 삭감에 반발해 교섭에 나선 택배 노동자에게 배송 물량을 주지 않는 일도 발생했다. 노조가 이에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신청하며 쿠팡의 책임을 물었으나, 사측은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관련기사). 몸이 다치고 일감과 수입이 흔들리는 조건은 그대로인데, 마음 관리 프로그램만 확대되는 셈이다. 쿠팡이 앞서 밝힌 지원도 연 12회 무료 상담, 스트레스 분석기, 워크숍처럼 개인이 스트레스를 측정하고 관리하는 수단이 중심이다. 필요한 노동자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스트레스를 만드는 조건을 그대로 둔 채 결과만 개인이 감당한다면 그것은 관리자와 조직을 위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근로자 지원프로그램(EAP)의 기대효과로 이직률, 산업재해 감소와 생산성 증가가 나란히 적힌 것은 우연이 아니다(관련자료).

 

비단 기업뿐일까. 각종 지자체가 마련한 강좌와 선별 검사, 체험 프로그램도 일상의 관리법과 소통법을 알리는데 바쁘다. 편견 때문에 치료를 미루는 사람이 많으니 인식 개선은 여전히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잘 몰라서’ 개인화된 해법에 머문다는 가정 위에 서 있다. 각종 SNS와 유튜브에서 정보는 이미 넘치고, 고학력 직장인이 명상 앱과 코칭을 가장 활발히 소비하기도 한다.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장 손에 닿는 선택지가 그것뿐이기 때문은 아닐까. 내일 업무 구조를 바꿀 수는 없어도 오늘 저녁 수면 앱을 깔 수는 있다. 문제를 지식 부족으로 정의하면 해법은 교육과 캠페인이 되고, 노동 조건과 재원 배분은 질문 밖으로 밀려난다. 개인의 위기 징후를 선별하고 진단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 노동자를 보호할  일터의 안전망과 제도가 충분한지는 행사 안내문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다.

 

마음 관리는 이제 현대인의 일상적 과제가 되어간다. 글로벌 웰니스 연구소는 2024년 세계 웰니스 경제를 약 6조 7,600억 달러로 추산했고, 의료 또는 임상 분야를 뺀 정신 웰니스 부문만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12.4% 성장했다(관련자료). 시장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상황에서 구조에 손대지 않고 개인의 관리 역량만 키우는 접근은 시장이 가장 반기는 해법일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했던 행사들을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행사가 끝난 뒤 무엇이 남는지 묻자는 것이다. 정신건강 캠페인을 내세우는 기업은 프로그램 참여율이 아니라 장시간 노동, 산업재해, 고용 불안 같은 노동조건 지표를 함께 공개해야 한다. 참여율과 만족도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운영되었는지를 보여줄 뿐, 노동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조건이 달라졌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마음건강을 챙기겠다고 말하는 기업이라면, 노동조건에 대해서도 같은 수준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 역시 인식 개선 행사의 횟수가 아니라 진단 없이도 쉬고 도움받을 수 있는 안전망을 성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진단과 질병코드가 있어야만 쉬거나 지원받을 수 있는 구조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고통을 진단명에 맞춰 증명해야 하고 진단받지 못한 고통은 지원 제도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선별검사로 위험 신호를 찾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을 쉬어도 생계가 유지되는 제도까지 갖춰져야 의미가 있다.

 

10월의 각종 캠페인이 끝난 11월 1일에도 노동자는 같은 일터로 출근한다. 마음을 돌보라는 말에 앞서, 누가 고통을 정의하고 그 해법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무엇보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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