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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전략이 주목하는 사람들, 그 바깥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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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제정과 잇따른 기본계획 이후, 정부가 바뀌어도 출산율 회복을 중심에 둔 인구정책은 반복됐다. 여러 차례 비판과 대책이 이어졌지만, 저출생 흐름은 그 대책들을 비웃듯 꺾이지 않았다. 지난 정부는 급기야 ‘국가 인구비상사태’를 선언했고(서리풀논평 보기), 그 위기론의 연장선에서 이번 달, 새로 출범한 인구전략위원회는 첫 5개년 국가인구전략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내놓았다(보도자료). 출산율 제고만으로는 인구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는 뒤늦은 문제의식을 내세우며, 삶의 질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완화·적응·도약’의 세 전략을 제시했다. 일자리와 주거, 노후와 돌봄, 기술혁신, 이주와 가족 형태의 변화까지 아울러 인구문제를 넓혀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해서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과 지속가능성의 의미까지 바뀐 것 같지는 않다. 지속가능성을 말할 때 지켜야 하는 것은 사람들의 존엄한 삶과 돌봄의 조건이라는 것인지 국가의 규모와 재정이라는 것인지 계획을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의문이 든다. 성장과 안정의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고, 그 비용과 불안정은 누구에게 전가되는 것일까. 어떤 가족과 삶을 ‘바람직한 미래’로 상정하고 있는가. 대통령이 인구의 ‘양’보다 ‘질’을 말하는 대목에서 또한번 멈칫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질’은 누구의 삶의 질이고, 무엇을 기준으로 한 인구의 질일까.

 

‘국민’의 목소리로 초대되고 호명될 수 있는 사람들

이 의문은 10월 14일 인구전략 비전선포식과 토론의 발언자들을 살펴보면 더 분명해진다. 기업인·학자·돌봄기업 대표, 부모·청년·대학생·중학생, 가족을 돌보는 중년 여성과 요양원 원장, 엔터테인먼트사 소속 이주민 등이 참여해 결혼 비용과 육아휴직, 돌봄과 노년 일자리, 지역에 계속 살아갈 조건, 이주민 인재 유치 등을 말했다. (상동 보도자료).

그러나 발언자를 세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여전히 초대받지 못했는가이다. 누가 ‘국민’의 대표로 우선 선택되고 누구는 돌봄과 지원의 대상으로만 남는지, 혹은 아예 상상되지도 않는지 말이다. 일하고, 배우고, 돌봄을 맡으며, 당장은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더라도 미래의 조건이 나아지면 이를 선택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청년은 인구전략의 주체로 잘 호명된다. 반면 결혼을 원하지 않거나 기존 가족제도의 규범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열린사회’에서 어떤 구성원으로 상정되는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거나 장애와 질병, 불안정한 노동과 주거로 삶의 선택이 제약되는 청년, 자녀를 낳지 않기로 삶을 설계한 사람들의 선택과 경험은 얼마나 정책의 언어가 되는가. 정작 돌봄과 일자리 제도에 의존해 살아가거나 그 불안정 속에 놓인 사람들은 정책을 함께 만드는 주체로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가.

이 거리감은 정책을 만들고 설명하는 이들의 발언과 시선에서도 드러난다. 계획을 만드는 ‘우리’는 선명하지만, 그 계획 속에서 함께 살아갈 ‘우리’는 보이지 않는다. 정책을 만드는 이들은 자신을 정책의 대상자와 분리한 채, 돌봄을 받는 사람보다 돌봄을 제공하고 설계하는 사람의 자리에 서 있는 듯하다. 노년에도 주체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며 안전하게 살아가는 삶을 기준으로 삼고, 돌봄에 의존하거나 장애·질병·빈곤·불안정한 노동으로 선택이 제약되는 삶은 자신과 먼 타인의 문제로 두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다양한 삶의 형태와 요구를 정책 과제로 담는 것과,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 대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이들이 여전히 인구감소에 대응하고 남은 인구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대상으로만 불린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결국 이 계획을 설계한 이들에게 되물어야 한다. 누가 인구로 계산되고, 어떤 삶이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가치 있는 삶으로 인정되는가.

 

 

‘역량’이 사람의 가치를 대신할 때

그렇다면 기본계획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살펴보자. 계획은 일자리 창출과 함께 인구감소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기술혁신과 역량 향상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인구의 ‘질’은 사람들의 삶의 질이 아니라 역량과 생산성의 질을 뜻하는 것인가. 사람이 가진 역량을 펼칠 기회를 넓히는 것과 생산성에 기여하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그 차이는 정부의 발언과 예산 편성에서 드러난다.

농어업 인력난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도 이들이 번 돈을 송금해 국가경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농업 현장에서 사람들이 일하려 하지 않는 이유와 농촌의 노동조건, 임금·주거·체류의 불안정성을 살피기보다 이주노동자가 국내에 남기는 경제적 가치를 먼저 따진 것이다. 인구와 노동의 문제를 낳는 구조를 바꾸기보다 사람마다 얼마나 경제적으로 기여하는지를 따지는 시각이 먼저 드러난다.

장애인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예산 삭감 논란도 같은 질문을 남긴다. 당사자들이 요구하고 만들어 온 이 일자리는 권익옹호와 문화예술, 장애인 인식개선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장애인이 노동자이자 시민으로 공적 공간에 등장할 수 있도록 해 왔다. 보호작업장과 실적 중심 취업지원이 ‘근로능력’과 생산성을 기준으로 장애인의 노동을 선별해 온 데 맞서 노동의 기준을 넓히는 실천이기도 하다. 서울에서는 2023년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돼 4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경기도에서도 2027년도 예산 조정안에 사업비 127억 원이 반영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이 일자리가 예산 논리 앞에서 쉽게 위태로워지는 현실은 인구정책이 내세우는 권리와 참여가 실제 자원 배분에서도 우선되는지 묻게 한다(기사보기). 이주민과 노인의 삶을 경제활동으로 증명하게 하고, 장애인의 사회참여도 고용가능성으로만 평가한다면 사람의 가치는 다시 노동시장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따라 나뉠 수 있다.

이런 선별은 노동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생학에 기대 ‘쓸모 있는 시민’을 선별하고, ‘건강한 인구’를 만들겠다며 재생산을 통제해 온 역사는 충분히 반성되지 않은채 지금도 누구의 건강과 재생산을 우선할지 가른다. 모든 국민의 성과재생산 건강을 생애 전반에 걸쳐 살피겠다고 하지만, 성 건강은 HPV 예방접종과 생리용품 지원으로, 재생산 건강은 임신·출산과 난임, 가임력 보존으로 구체화된다. 성 건강을 임신을 전제로 한 육체적 관계에 한정하지 않고, 서로의 몸과 의사를 존중하는 관계와 성적 권리, 성매개감염과 암 예방까지 함께 다루는 관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월경통, 임신중지, 성폭력, 중년 여성의 건강과 완경기 증상은 언제쯤 선언이나 계획의 문구를 넘어 실제 정책과제가 될까. 50세 이상 인구가 이미 전체의 절반 가까이에 이른다는데, 완경기와 그 이후를 살아가는 여성의 노동환경은 언제쯤 정책에서 제대로 다뤄질까.

 

누구의 삶을 계획에 담고, 그 삶의 가치를 무엇으로 판단하며, 그 삶의 조건을 누가 결정하는지 다시 물어야 한다

이 물음에 답할 실마리를 지난 해 가족구성권연구소를 비롯한 활동가들이 함께 쓴 『연대와 돌봄의 법 보고서』에서 찾고 싶다. 이 보고서는 ‘소멸’의 언어가 사라질 지역과 일터를 지정하고, 출산하지 않는 여성과 생산성·정상성의 기준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삶을 지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소멸의 반대편에서 성장과 국가의 유지가 아니라, 불평등 속에서도 서로 의존하며 돌봄·연대·상호부조를 만들어 온 삶의 방식에 주목한다. 이 관점을 인구전략에 가져오면, 누락된 사람을 지원 대상으로 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당사자가 자기 삶과 관계, 필요한 돌봄의 조건을 결정하고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도 참여할 권한이 보장되어야 한다. 삶의 질은 역량이나 경제적 기여가 아니라, 각자가 존엄하게 살아갈 조건을 요구하고 결정할 수 있는지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전제에서 ‘완화·적응·도약’도 다시 읽혀야 한다. 인구 증가에 기대어 온 노동·복지·돌봄 구조를 바꾸는 전환, 다양한 삶이 동등한 구성원으로 공존할 조건, 역량과 생산성에 관계없이 누구나 권리의 주체로 살아갈 기본조건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족제도의 규범 밖에서도 가족을 이루고 관계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하며, 돌봄과 양립할 수 있는 노동조건도 보장되어야 한다. 다양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자기 삶과 필요한 지원의 조건을 결정할 권리, 누구나 생애 전 과정에서 존엄하게 살고 죽을 권리, 정상성 규범에 따른 차별과 배제에 맞설 성적 권리를 보장하는 일은 조금씩은, 그리고 언젠가는 다 취약해질 우리 모두의 삶을 지탱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인구전략은 사람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계획이 아니라, 인구가 줄어도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조건을 만드는 사회정책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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