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통일의 장애물이 될 의료 영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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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까지 가서 3대 대북 제안을 발표했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이런 중요한 발언(그것도 국내용)을 꼭 외국에서 하는지 까닭을 알 수 없다. 하지만 내용만 괜찮으면 장소야 뭐 어떠랴 더 시비하지 말자.

대통령이 제안한 것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이라는 이름으로 된 다음 세 가지 구상이다. ▲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 ▲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간 동질성 회복.

인도적 문제에는 이산가족 상봉이 들어갔고, 동질성 회복은 예의 민간접촉과 교류가 빠지지 않았다. 구체적인 방안과 제안이 있다고는 하지만 얼마나 새로운지는 의문이다.

그냥 봐서는 이전 정부가 한 제안과 잘 구별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이 역시 얼마나 참신한가를 따질 일은 아닌 것 같다. 방향이 옳다면 새로움은 중요하지 않다. 과거에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해야 하니,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새로운 표현이 눈길을 끈다. ‘민생 인프라’ 구축이 그것이다. 민생도 인프라도 우리나 자주 쓰는 말일 테니 북측이 제대로 이해할지 모르겠다. 남쪽 사람에게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맥락으로는 주민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서 협력하자는 뜻으로 읽힌다.

대통령이 직접 거론한 것은 ‘복합농촌단지’ 조성이다. “한국은 북한 주민들의 편익을 도모하기 위해 교통과 통신 등 가능한 부분의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고 북한은 한국에 지하자원 개발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남북한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생 인프라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일단은 건설이나 자원 개발, 투자 등이 포함된 것에서 짐작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말한 민생은 아마도 경제발전이나 소득 향상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문제의식의 폭이나 전망의 깊이가 많이 아쉽다.

경제와 소득이 민생의 물질적 기반이 된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통일 과정과 통일 후에 진정한 관심이 있다면, 민생을 이해하는 폭은 더 넓어져야 한다. 민생은 경제일 뿐 아니라 또한 일상적 삶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아니, 경제는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라고 해야 맞다.

통일 전이든 후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남과 북을 가릴 필요도 없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민생)에서 가지는 가장 큰 요구는 무엇일까.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 안전의 과제, 그 다음은 건강과 교육 같은 기본적 권리 아닐까.

그러니 민생 인프라는 단순히 경제를 발전시키거나 소득을 올리는 차원을 넘는다. 공동의 자원 개발 정도는 더더구나 좁다. 구조로도 실용으로도 마찬가지다. 영양, 보건과 의료, 교육 등의 인프라를 포함하지 않고는 정말 민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는 또한 3대 제안에 같이 들어 있는 인도적 문제와 동질성 회복과도 무관하지 않다. 특히 보건과 의료는 민생의 ‘인프라’일 뿐 아니라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현상’이기도 하다. 인도주의의 문제이자 동질성을 위해서도 긴요한 과제다. 지금 영양 수준이 어떠니 모자보건이 어떠니 하는 것을 새삼 말할 필요가 있을까.

민생을 위한 협력이라는 방향은 분명하다. 형식과 내용에 상관없이 보건의료 분야 남북간 협력과 지원을 크게 확대해야 한다. 대통령이 강조한 만큼 더구나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이제는 단지 현상을 넘어 인프라까지 포함하는 담대한 협력을 생각하자.

여기까지는 어쩌면 늘 하던 주장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제 이른바 민생 인프라가 북측에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덧붙이고자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보건의료는 그렇다.

통일은 결과일 뿐 아니라 또한 과정이라는 것이 출발이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그 결과의 실질은 과정에 좌우된다. 결과와 과정이 상호의존적이라고 해도 같은 뜻이다. 너나 할 것 없이 통일의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통일이 되었다고 치자. 남북한 주민의 민생에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은 무엇일까. 삶의 양식이 너무나 다른 이질적 세계, 그 중심에 보건의료가 자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통일 후 보건의료를 생각하면, 남북한은 동서독보다 더 많은 고통과 비용을 감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동서독은 분단 이전에 이미 근대적 국가체계를 갖추었던 곳이다. 의료 제도와 의료보험 역시 그 국가체계 속에 있었다. 분단 후에도 구심력이 남아 있었고 그만큼 재통합도 더 쉬웠다는 뜻이다.

독일은 1883년 비스마르크 시대에 의료보험을 시작했으니, 분단 이전에 이미 60년 넘게 같은 제도를 운영했다. 이 때문에 분단 후 동독도 의료보험(북한과 같은 무상의료가 아닌) 제도를 채택했고, 이 덕분에 통일 후 건강보장체계는 자연스럽게 통합되었다.

의사 교육이나 면허 제도도 비슷하다. 동서독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뼈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통일 후에 서독이 동독 의사들의 자격을 그대로 인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통일 이후 의료보험과 의사 제도의 통합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크게 들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사정이 워낙 다르다. 의료보험과 의사 제도, 그리고 전통 의학 등도 같은 구석이 별로 없다. 엄청난 갈등과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도전은 의료를 주고받는(교환하는) 근본 원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모두가 아는 대로, 북한은 ‘무상의료’를 뼈대로 하는 의료제도를 운영한다. 지금은 말뿐이라고 해도 남북의 근본적 차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북한 주민이 생각하고 경험하는 건강과 보건의료는 남한과 뿌리부터 다르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들에게 의료는 시장에서 거래하는 ‘상품’이 아니다.

이에 비해 남한에서 의료는 상품에 가깝다. ‘가깝다’고 한 것은 건강보험 제도가 상품으로서의 성격을 많이 누그러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본인 부담이 있고 보험에서 제외된 것도 꽤 많다. 이틀 치료를 받으면 하루 값의 두 배를 치러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삶의 원리이다.

남과 북 사이에 있는 이 간격을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북측도 얼마간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은 이 질문에 대한 남쪽의 답 또한 포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또한 민생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남측, 우리 스스로를 향한 과제.

큰 방향을 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금 나타나는 남북한의 차이를 넘어, 대부분 국가와 사회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와 원리를 기반으로 하면 된다. 이는 우리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건강과 보건의료는 공공성에 기초해야 하고, 경제적 부담 능력에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이렇게 보면, 지금 정부가 힘을 집중하고 있는 의료 영리화 정책은 자기 분열 또는 모순에 가깝다. 다른 것은 몰라도, 통일 준비와는 양립할 수 없다. 의료의 상업화, 상품화, 영리화는 결국 통일의 잠재적 기반을 크게 훼손한다.

앞으로 통일 비용이 얼마나 들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시장형 의료로 갈수록 통합의 비용은 그만큼 더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보건의료의 탈(脫)-영리화와 재(再)-공공화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다.

갈수록 잦아지는 통일 논의와 대북 제안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그렇다면 우선 인식부터 넓힐 것을 주문한다. 남측 보건의료 인프라의 공공성 강화, 이 또한 중요한 통일 준비라는 것을 잊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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