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성의 한 요양병원에서 불이 났고, 고작 6분 만에 29명의 사상자가 났다. 최근 들어 워낙 사건, 사고가 많다지만 유난히 가슴이 더 아프다. 요양병원이라니, 어느 정도는 미리 예상할 수 있었던, 마치 시한폭탄 같은 곳이 아니던가.
게다가 이런 사고가 처음인 것도 아니다. 그리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2010년 11월 12일 포항의 한 요양원에서 불이 나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 당시 상황도 이번 사고와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4평 남짓을 태우고 30분 만에 진화되었으니 대형 화재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사람들이 거동하기 어려웠던 데다 (요양원이니 오죽했을까), 연기에 질식하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오래 된 일로 논산의 정신병원 화재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1993년 4월 19일 한 개인 정신병원에 불이 나서 34명이나 되는 귀한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가 많았던 탓도 있지만, 사고 원인이 이번과 빼닮은 점이 다시 놀랍다.
당시의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자. 허가 받은 병상의 두 배가 넘는 환자에다 관리 인원은 규정보다 훨씬 적었다. 환자의 손발을 묶어 두어 대피가 어려웠고, 시설 특성상 출입문을 쉽게 여닫을 수 없게 만들어 둔 것도 원인이었다. 평소 긴급대피를 위한 체계나 준비가 없었던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지난 두 사건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그동안 배운 것이 거의 없는 셈이다. 거의 비슷한 사고가 다시 일어나고, 같은 진단과 처방이 되풀이된다. 관심과 분노가 불처럼 일어났다가 어느새 사그라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냉소와 비관, 자조가 압도할 만하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달라야 한다. 다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비슷한 사건, 더 크고 엄중한 사고가 또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마침 세월호 사건이 겹쳐 한 묶음으로 관심을 받게 되었지만, 그런 만큼 오히려 묻혀 지나갈 가능성도 크다.
병원이나 복지 시설이 안고 있는 위험은 진작부터 잠재되어 있었다. 게다가 사회와 생활의 변화는 위험을 더 키우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삶이 더 나아진다는 것이 자칫 헛된 꿈이 될 판이다.
시대적 변화의 일부는 우리가 이미 잘 아는 것이다. 노인 인구의 증가와 그에 따른 변화가 무엇보다 두드러진다.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처럼 주로 노인 환자를 돌보는 집단시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참고로, 요양병원에서는 치료 기능이 더 중요하다면 요양시설은 일상생활을 돌보는 일을 주로 하는 곳이다. 요양병원은 건강보험이 비용과 관리를 담당하는 반면, 요양시설은 장기요양보험이 담당한다.
이번에 불이 난 요양병원은 2002년 말 50여 개에 지나지 않았으나, 2013년 현재 1천 2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장기요양시설도 마찬가지여서 현재는 전국적으로 4천 3백 곳이 넘는다. 말 그대로 폭발적이다. 노인 돌봄을 사회화한 것은 분명 사회적 진전이지만 할 수 없이 위험도 같이 키워 놓았다.
이들 시설에서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 대다수가 노인이고, 그 가운데 또 많은 사람들은 인지기능이 떨어져 있다. 일반 병원에서도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많지만, 요양병원이나 시설에서는 더 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사고에 취약한 것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물론, 위험은 노인 시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앞서 1993년의 정신병원 화재 사건을 적었지만, 정신병원이나 정신보건 시설도 비슷한 위험을 안고 있다. 또 재활 시설이나 보육 시설도 그런 점에서 ‘특수’하기는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큰 화재 피해에 이런 시설에 많이 포함된 것이 우연일 리 없다. 2007년 3월의 러시아 요양원 화재(62명 사망), 2009년 6월의 멕시코 탁아소 화재(40여명 사망), 2013년 모스크바의 정신병원 화재(38명 사망) 등. 위험이 현실이 된 전형적 사례들이다.
내친 김에 위험을 제대로 규정하면, 의료시설치고 사고에 면제된 데가 있을까. 사고 가능성도 그렇지만, 병원이나 복지시설에서 사고에 대응하는 것은 항상 특수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 한 가지는 뺄 수 없다.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들 대부분이 환자라는 사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 상당수는 자기 결정과 행동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다. 우선 많은 환자가 혼자서 움직이기 어렵다. 이번 사고에도 그런 잘못을 저질렀지만, 일부 환자는 행동을 아예 제한한다. 그 이전에,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기 어려운 사람도 적지 않다.
병원과 장기요양시설, 그리고 복지시설이 안고 있는 위험은 이처럼 분명하다. 불이 나거나 건물이 무너지면 다른 곳보다 피해가 훨씬 중대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건강과 생명, 안전이 위협받는 역설이 빚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위험을 줄일까. 우선은 위험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널리 알려진 위험 – 예를 들어 영세 요양시설 – 은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이번 사고 때문에 요양병원, 요양시설, 정신병원 등은 다시 온갖 점검과 감독의 목표가 되게 생겼다. 얼마나 충실할지 또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지만 새로운 기회이긴 하다.
그보다 숨어 있는 위험에 더 신경 써야 할지도 모른다. 많은 위험은 현대와 첨단이라는 수식을 앞세우는 기술 뒤에 숨어 있다. 크고 좋은 최신식 병원에 화재나 사고 대비가 오죽 잘 되어 있을까,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러란 법이 없다. 위험은 자연과 시설, 기술, 사람, 그 어디든 잠재되어 있다. 설사 시설과 기술이 완벽하다 해도 사람이란 요소는 여전히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간접적이긴 하지만 한 가지 참고자료가 있다. 한국화재보험협회가 펴낸 ‘2012년도 특수건물 화재조사분석’이라는 자료다 (바로가기). 한 마디로 병원의 화재는 생각보다 잦다.
최근 5년간 병원 화재는 평균빈도 25.67건(대상건수 1천건 당)으로, 어림잡아 2-3퍼센트의 병원 건물에서 불이 났다. 학교나 공장, 아파트보다는 적었지만, 학원, 숙박, 목욕 등의 업종보다는 더 높은 수준이다.
위험을 인식하는 것과 함께, 의료나 복지시설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실질적 대비가 필요하다. 어떤 상황이 특수한지는 앞에서 이미 말했다. 장성의 요양병원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했어야 할 만큼 특수했지만, 결과적으로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사고 대응이나 대피훈련, 지침 등도 마찬가지다. ‘보편적’인 기준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는 하다. 장성의 요양병원도 사고 직전에 안전 점검과 보건소 현장점검을 받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이미 있는 기준과 보편적인 지침을 잘 지키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특수한 필요에 맞춘 기준과 행동지침이 설계되고 또한 실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병원에 불이 났을 때 어떤 환자를 누가 무슨 방법으로 대피시킬 것인가. 시설마다 맞춤형의 기준과 지침을 만들고 또한 제대로 연습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투자’(썩 좋은 용어는 아니다)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벌써부터 작은 요양병원에도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면 국가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내내 이 타령을 하다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갈까 걱정스럽다.
사고가 날 때마다 문제가 되는 것이 사람이 제대로 없었다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인력기준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도 더 투자해야 한다. 훈련과 연습도 마찬가지다. 짐작이긴 해도, 제대로 된 화재대피 훈련을 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돈,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예를 들어 환자의 불만).
투자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책임의 주체와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 현실적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무형의 투자를 고려하지 않는 낮은 진료비가 문제인지, 지나친 이윤 추구가 문제인지, 또는 사람의 자세와 태도에 흠이 있는지, 실제 이유와 상세한 방법은 그 다음 논의할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논리와 힘이 근본에서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안전과 생명을 위한 투자를 흔히 비효율로 보는, 이미 굳어버린 구조와 문화. 이것을 어떻게 이기고 고쳐 나갈지가 더 큰 사회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