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다시 시작하는 민주적 지방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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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어느 쪽으로 보기에도 결과가 ‘애매’해서다. 반대의 의사 표현도 아니고 그렇다고 힘을 보태는 쪽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어느 쪽이건 참담한 세월호 사건이 묻힌 것은 아쉽다.

 

매번 그렇듯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지 원인 찾기가 부산하다. 하지만 정치나 선거 전문가를 자칭하는 사람들의 설명도 그리 명쾌하지 않다. 교육감 선거 결과의 해석이 혼란스러운 것이 대표적이다.

아마도 매우 복잡한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있어서 그럴 것이다. 정권 심판이든 정권 지키기든 지나치게 단순하게 설명하면 오히려 진실과는 거리가 먼 법이다.

 

그러나 심층적인 분석은 이 글의 몫이 아니다. 그건 이 분야 전문가에게 맡기고, 그동안 여러 번의 지방 선거 끝에 배운 몇 가지 교훈을 짚어두자. 한편으로, 몇 주만 지나면 들어설 새 지방 정부에 흔히 벌어지는 잘못을 경계하는 의미도 있다.

 

첫째, 지방 자치가 발전하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전국 정당이 굳건한 토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선거 제도에 의존하는 한, 한 군데 지방정부만으로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지속성으로 말하면 더욱 더 그렇다.

열심히 일하고 좋은 성과를 낸 많은 지방 정부가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하고 선거에 졌다. 그 중에는 이른바 진보 정당이 집권했던 데도 포함되어 있다. 전국적 정치 지형의 압도적 영향력 때문이다. 지방선거의 한국적 특성인지 모르지만, 고립된 노력만으로 온전한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전망과 계획을 내놓고 지지를 호소했던 신인 후보 쪽도 마찬가지다. 정당 후보가 아니고는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도 잡지 못했다. 과천시의 녹색당 후보는 진작부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으나, 투표에서는 채 20퍼센트도 지지를 받지 못한 정도다.

지역에서의 노력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다. 지역 주민의 역량이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정치 구조와 결합해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데이비드 하비의 주장대로, 지역에서 수평적 변화와 수직적 변화는 같이 일어나야 한다(한상연 옮김, <반란의 도시>, 에이도스 펴냄).

 

두 번째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선거에 투사된 ‘욕망의 정치’를 어떻게 조정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어느 선거인들 투표권자의 일차적 욕망에서 자유로울까만 지방선거는 특히 그 정도가 더할 수밖에 없다.

온갖 개발과 인프라 투자 공약이 난무한 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공항과 철도, 도로를 새로 놓는다고 하면서 여야 모두 수조에서 수십조 예산이 더 든다고 예상했다. 다른 동네 도로의 과잉 투자는 비판하면서도 우리 지역의 개발은 균형 발전과 주민 복리로 치장하는 것이 지역 정치의 민낯이다.

보건의료 역시 여기에서 예외가 되지 못한다. 인천 송도의 영리병원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번에 당선된 후보는 송도의 국제병원을 ‘원안’대로 추진한다고 약속했고, 의료관광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걸었다. 건강이나 보건이 아니라 지역 경제가 핵심임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의료산업 특구니, 클러스터니 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명분이야 갖가지지만 대부분 ‘경제’ 담론에 전적으로 의존해 있다. 성장, 개발, 소득, 일자리, 경쟁력…이런 구호와 상징들이 서로 긴밀하게 결합된 것이 단적인 증거다.

영리병원이 어떤 파급효과를 미칠지는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의료산업이 누구에게 무슨 득이 있는지도 여기서는 따지지 않을 참이다. 다만 한 가지만은 명확히 하자. 지역으로만 보더라도, 특히 주민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비용과 이득만 비교해도, 이런 약속은 대부분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종류의 정책(만)이 매력을 갖고 유권자의 지지를 끌어낸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과연 그럴까. 물론, 어떤 경우에도 지역 정치가 자기 이해에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지방 선거가 이해관계와 욕망을 일차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역의 가치와 진정한 이해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아울러 경제적 합리성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특히 지역 공동체는 본질적으로 공공성과 개방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욕망의 지역 정치,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공공성과 개방성은 앞으로 있을 모든 선거와 투표에서도 여전히 문제와 과제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이는 4년마다 반복되는 선거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거 사이 ‘긴’ 시기 동안 축적되는 결과물이 선거에서 비로소 표출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만큼, 이제부터 다시 지역 정치는 공공성에 기초한 새로운 ‘숙고’ 과정에 돌입해야 한다. 이는 선거 결과를 재조정하는 과정인 동시에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주민과 소비자, 시민사회가 감당해야 할 의무라고 하면 바로 이런 것이다. 문제를 제기하고 또 토론해야 한다.

 

세 번째는 선거 참여를 넘어(이것은 지나갔다) 참여 민주주의의 실천이 당장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거가 막 끝난 지금은 새롭게 많은 것들이 결정되는, 말하자면 ‘기회의 창’이 열려 있는 시기라 할 수 있다.

다들 최선을 다해 제시한 공약이 한 가지 실천 수단이다. 새롭게 사람을 임명하는 것도 또 다른 기회가 된다.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하고 예산을 새로 짜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모두가 ‘미시적’ 참여의 대상이다.

참여는 또한 후퇴를 막기 위한 예방 수단이기도 하다. 지방선거의 승리는 자칫 약탈적 이익 추구로 이어질 수 있다. 오죽하면 그 많은 단체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처벌을 받았을까. 지역 토호란 말이 더욱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장 급한 것은 ‘사람’의 문제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제 온갖 논공행상이 벌어질 것이 뻔하다. 물론, 심지어 미국식의 엽관제에도 장점이 있다. 분명한 공통의 목표를 내걸고 정치적 책임을 함께 한다면, 서로 협력하는 사람들이 팀으로 일하는 방식이 왜 나쁘겠는가.

그러나 선거 후의 사람 쓰기는 흔히 매관매직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는다. 이해나 친소관계에 따라 임면하느라 제대로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중앙 정부에 비해 흔히 공공의 감시를 벗어나는 것이 사정을 더 나쁘게 만든다.

최근에는 지방의료원이나 보건소도 정치 바람을 탄다는 소리가 무성하다. 다시 말하지만, 정치적 목표와 책임을 같이 한다면 이런 자리도 당연히 정치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정치도 아니고 행정도 아닌, 신세 갚기나 편 가르기면 곤란하다. 지역을 망치고 주민에게 손해를 끼친다.

어떤 통로와 방식이든 참여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지방 자치의 긍정적 효과를 키우고 부정적 측면은 줄일 수 있다. 선거의 엄중함이나 공약의 기억이 바래기 전에 정책과 사업, 예산, 그리고 사람 쓰기에 ‘통제’의 힘을 만들어야 한다(특히 집단적으로).

 

앞에서 말한 몇 가지 과제들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희망에 찬 전망을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앞으로도 지방자치가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이 실망하고 냉소적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어떤 희망의 증거도 없다고 하기에는 이르다. 해석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교육감 선거가 한 가지 실마리가 아닐까. 더구나 선거의 결과는 늘 벌어지는 삶의 현실성에 이어져 있는 동시에 또한 그 일부만 반영한다. 누가 당선되었는가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진정한 변화가 만들어지는 바탕은 당선자나 그의 소속 정당, 그 이상이다.

 

찬찬히 생각해 보자. 지역과 지방자치란, 우리 삶을 좀 더 좋게 만들어 나가는 데에 결코 버릴 수 없는 현장이 아니던가. ‘정답’을 벌써 찾기는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하다. 대신, 새로운 근거가 될 만한 실천을 지금부터 늘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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