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폭주하는 의료 영리화 – 피케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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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의 한 프랑스 경제학자가 한국 사회를 (약간은) 흔들고 있다. 토마스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론> 이야기다. 올해 초부터 조금씩 언론에 소개되더니 4, 5월에는 거의 매일 국내 뉴스에 등장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새로 임명된 경제 부총리까지 한마디 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하필 실증분석 결과에 국제적 논란이 있다는 지적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인사청문회 답변 자료가 그렇다 하니, 아무래도 동문서답인 모양새다(질문자가 설마 연구가 얼마나 정확한가 물었을까).

 

그러나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외국 학자가 벼락 ‘스타’가 되었다 금방 잊히는 일이 워낙 흔한 사회가 아닌가. 몇 년 전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정의론의 주인공 마이클 샌델을 아직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번 ‘유행’은 좀 더 오래 갈지도 모르겠다는 예상도 있다. 그가 쓴 책은 오는 가을에나 한국어 번역본이 나온다니, 본격적인 유행은 아직 시작되기도 전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다른 나라까지 영향력의 정도가 제법 넓고 크다.

 

유행이라지만 그래도 절박한 문제를 제기한 점도 조금은 다르다. 다른 무엇보다 다루는 주제가 한국 사회가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불평등 문제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무슨 문화니 시대니 힐링이니 하는 ‘한국발’ 유행 사조와는 운명이 다를 수밖에 없다.

 

피케티가 주장하는 내용은 언론에 충분할 정도로 소개되었으니 그만하면 되었을 것 같다. 생소한 독자를 위해 전반적 소개에 중점을 둔 두 가지 글을 링크한다. 새사연 정태인 원장의 글(바로가기)과 한겨레21의 연재(첫 글 바로가기)를 참고하기 바란다.

 

자료니 분석 기법이니 하는 영역은 이 분야 전문가들이 더 논의하고 논쟁할 것이 많을 것이다. 으레 그렇듯 논점이 한두 가지일까. 그러나 기본적인 문제의식과 잠정적인 결론은 국내에도 충분하게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아주 짧게 이렇게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세계적으로 자본의 수익률이 성장률보다 커지면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누진적인 과세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간단하게 피케티 열풍을 소개했지만, 우리가 더 큰 관심을 갖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그것이 어떻게 ‘사회화’ 되는가 하는 것이다(‘소비’ 방식이라 해도 좋다). 피케티와 그가 말하는 소득 불평등이라는 의제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활용되고 적용되는가가 내용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어서다.

 

지금 가장 가능성이 높은(그리고 가장 걱정스러운) 시나리오는 불평등의 ‘탈(脫)정치화’ 또는 ‘반(反)정치화’가 아닌가 싶다. 이는 문제 제기가 학술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과 관련이 깊다.

 

학술적 논쟁은 당연히 ‘과학적’ 엄밀성을 문제로 삼는다. 게다가 피케티의 작업 자체가 ‘심증’에 그친 불평등의 ‘물증’을 제시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논란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론, 방법, 자료를 둘러싼 논란은 (당사자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해도) 흔히 연구의 맥락을 탈정치화한다. 얼마 전 <파이낸셜타임스>가 제기한 자료 문제가 바로 그런 예다. 지금이라도 외국의 인터넷 검색 엔진을 써서 피케티 논쟁을 찾아보라. 자료와 방법을 둘러싼 시비가 한둘이 아니다. 주객이 뒤집힌 느낌까지 줄 정도다.

 

한국이라고 사정이 다를까. 벌써부터 ‘현황 파악’을 강조하고 ‘정확한 자료’의 부재를 통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 많은(때로 지나친) 토의와 학술 행사도 상당수가 이게 초점이다. 그 말 자체로는 당연히 맞다. 현재 상황을 제대로 알고 분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자료가 제대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만 머물면 소득 불평등은 정치와 경제, 사회의 광장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학술과 전문성의 영역으로 유폐된다. 잘 알기도 어려운 ‘지니계수’나 ‘자본소득분배율’ 같은 암호가 권력을 쥐고 사태를 주도할 것이다.

 

그냥 의심이 아니다. 경제 부총리와 한국은행이 피케티 열풍에 대응한 첫 번째 방식이 실증분석과 자료 문제였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다시 말하지만, 소득 불평등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짐짓 모르는 것처럼 ‘정확한 수치’를 문제로 삼았다. 실증분석에 국제적 논란이 있다는 언급, 그리고 피케티 방식으로 한국 경제를 분석하겠다는 것. 더 정확하게 알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사실 한국 사회 내에서 이미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고 그 정도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부족한 자료와 신뢰성이 떨어지는 통계라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일관성이 있다. 소득 불평등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사회적 병리다.

 

결국 소득 불평등의 존재와 심화는 놀라운 사실,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이 문제를 이 시대의 과제이자 의제로, 광장으로 꺼내오는 일이 아닐까.

 

피케티 방식의 의의와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불평등의 규모와 추세를 드러내는 일은 정치적으로도 정책 기술로도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보태서 불평등 심화의 원인(예를 들어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의 비중)을 더 정확하게 밝혀줄 수 있다면.

 

그러나 소득 불평등은 이미 미지의 영역은 아니다.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진공 상태가 아닌 것이다. 다만 피케티의 연구는 우리의 관심을 다시 일깨웠고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그리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 자극과 힌트를 주었다.

 

피케티를 제대로 활용하는 출발점은 불평등의 ‘정치화’ 또는 ‘재(再)정치화’다. 누가 가장 큰 피해자인지, 무엇이 진짜 원인인지, 어떤 방법이 있는지, 문제기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논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피케티를 동원하는 방식을 따져봤지만, 그의 주장 가운데 일부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시장에서) ‘소비’된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 가운데 하나가 부의 불균형과 소득 불평등은 자본과 시장의 자연스러운(그리고 필연적인) 운동 결과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소득과 부의 역사는 언제나 매우 정치적이고 혼란스러우며 예측하기 어렵다. 역사가 어떻게 진전될지는 한 사회가 불평등을 어떻게 보는지 그리고 대응과 개혁을 위해 어떤 정책과 제도를 채택하는지에 달렸다.” (영어판 35쪽)

 

불평등은 한 사회가 어떤 정책과 제도를 택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이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그는 곳곳에서 실증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설득력을 높였다.

 

한국에서 피케티를 말하는 사람들은 애써 이런 사실에 눈을 감는 것 같다. 소득 불평등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탈맥락화’하면서, 그 원인으로 기술 발전, 글로벌화된 경제, 고령화 등을 지적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왜 어떤 나라가 불평등이 더 심한지 무엇이 불평등 수준의 차이를 만들었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시간에도 정부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데 열심이다. 앞의 문법을 따르자면, 그런 잠재력을 가진 정책과 제도를 추진하느라 여념이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의료 영리화 정책이 한 예다. 이것 하나로는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정책이지만, 전체 맥락은 명백하게 구조와 정책기조에 연결된다.

 

의료 영리화는 분명 일부 집단과 계층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만드는 정책과 제도다. 산수는 더없이 간단하다. 피케티처럼 수백년 자료를 모을 필요도 없고 새로운 경제분석 모형을 만들 이유도 없다.

 

의료법인이 영리 자법인을 만들 수 있게 해주면 그 경제적 과실은 누구에게도 갈 것 같은가. 그리고 영리법인이 각종 부대 사업을 하면 보통 사람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어떻게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불평등을 줄이는 제도적 장치인 공적 체계(예를 들어 건강보험) 바깥에서 더 많은 비용을 감당하라는 국가와 정부의 염치없는 압력이란.

 

한 가지 더.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건강의 불평등을 낳는다. 불평등의 피해자가 더 많이 아프고 더 일찍 죽는 것이다. 이들은 또 더 많은 비용을 내야 하는데, 그러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다시 더 심해진다. 이 한심한 악순환!

 

한국 사회에서 피케티는 일종의 ‘우발적’ 사건이다. 그러나 그가 던진 묵직한 의제를 베스트셀러의 주제나 단지 한 때의 지적 유행으로 소모해서는 곤란하다. 어떤 전문 분야의 이론 논쟁으로 그치게 해서도 안 된다.

 

이 질기고도 험악한 온갖 종류의 불평등을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막을지, 이 고단한 공동체의 핵심 화두가 되어야 마땅하다. 현실을 살피면 의료 영리화와 같은 제도와 정책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도전적인 이론이자 실천적 과제가 앞에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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