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최악의 조세 정책과 최악의 건강 정책으로 기록될 것 같다. 정부가 내놓은 담뱃세 인상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설마 ‘최악’일까 하겠지만 두고 보면 알 일. 설사 국회 논의 과정에서 원안이 바뀌더라도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먼저 건강 정책부터 보자. 금연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식이 모자라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물론 잘 알 것이다. 이번 언론의 보도를 보면, 이젠 대중이 공유하는 지식의 수준도 꽤 높다.
우리 연구소는 벌써 3년 전에 담뱃세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바로 가기 ).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흡연의 불평등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빈곤층과 취약계층의 흡연율이 더 높다. 담배 정책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전체 흡연율을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담배 규제 정책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둘째, 가격 정책과 비가격 정책 모두를 강화해야 한다. 가격만으로 흡연을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번에 보건복지부가 몇 가지 비가격 정책을 같이 발표했지만 면피용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셋째, 담뱃값을 인상한다면 어떻게 쓰는지가 명확하고 합당해야 한다. 담배를 사는 사람만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담배 부담금 자체의 소득역진성과 흡연율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고려할 때, 흡연자에 대한 의료 및 금연 서비스 제공에 좀 더 집중적으로 쓰여야 한다.”
건강증진기금이 더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쓰여야 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여러 군데서 지적했으니 더 상세하게 보태지는 않는다. 그러나 건강증진기금은 전체가 여전히 요령부득이다. 처음부터 나온 지적인데 갈수록 더 거세지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담배 정책은 건강 정책 가운데서도 동의와 지지를 받기 쉬운 편에 속한다. ‘도덕적’ 정책이라고 할까. 반대한다 하더라도 소극적이거나 현실론(예를 들어 단계적으로 하자는 것)에 머무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특성은 정책 시행에 유리한 조건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부가 얼마나 일관성을 가지고 어떻게 일하는가에 달려 있다. 특히 기업의 탐욕과 왜곡된 경제 논리, 그리고 말초적 정략에 휘둘리지 않고 정책의 ‘도덕성’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번 담뱃값 인상은 아예 건강 정책을 포기했다. 그동안 내팽개친 정책들을 마지못해 덧붙였으나 때는 늦었다. 건강 정책 비슷하게라도 보이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믿음을 얻었어야 했다.
그동안 담배 규제 정책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어떤 일을 어떻게 해 왔는지, 그리고 왜 그랬는지 궁금하면 2012년 11월 12일의 <서리풀 논평>을 참조하시라 ( 바로가기 ,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결국 이번 담뱃세 인상은 건강 정책의 허울을 쓴 ‘서민 증세’에 지나지 않는다. 도덕성과 진정성은 약화되고 꼼수 증세의 들러리라는 프레임에 갇히고 말았다. 최악의 건강 정책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정책은 또한 조세 정책으로서도 실패다. “결과적으로 증세”라는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의 오만하고 부도덕한 말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 꼼수와 겁박으로 인상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실패는 변하지 않는다.
공약한 복지 정책을 최소한으로 하는데도 증세를 피할 수 없었다는 정권의 애처로운 고백이다. 그렇다고 서민의 부담과 고통이 정당화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가장 역진성이 높은 세금을 올리고, 게다가 이젠 주민세와 자동차세까지 같이 올리겠단다.
올린 담뱃세는 주로 안전에 쓰겠다고 그럴싸한 용처까지 미리 생각해 놓은 모양이다. 복지 증세라는 말을 피하고 싶은 모양이나, 보통 사람들을 우습게 아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일반 재정에 무슨 꼬리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용도를 지정했다?
실패로 보는 더 중요한 이유는 납세자의 불신에 기름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조세 정책에 무슨 믿음이랄 것이 있었느냐고 되물으면 할 말은 없다. 조세 정책과 운영, 조세 당국을 믿지 못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이번 담뱃세 소동은 그렇지 않아도 보잘 것 없는 믿음을 완전히 없애 버린 꼴이다. 그 덕분에 앞으로 모든 조세 정책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 틀림없다. 재원 마련이 목적이든 또는 소득 재분배가 목적이든 마찬가지다. 경제의 효율을 높인다는 것을 목표로 해도 조세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 세대의 조세 부담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을 줄이면서 공공 재정의 기반을 확충하는 데에 사회 구성원의 이해와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이번의 실패는 또한 예상된 것이기도 하다. 증세의 꼼수 정치를 스스로 감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 감세’와 ‘서민 증세’에 충실하므로, 스스로는 성공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을 위협하는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길을 택했다. 그래서 다시 실패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당장과 단기도 장담하기 어렵다. 서민 증세의 폭발력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 강했던 영국 대처 총리가 1990년 왜 자리에서 물러났던가. 바로 ‘서민 증세’가 직접 원인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당시 보수당이 새로 도입한 주민세는 세대당이 아닌 가족 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내게 했다. 누가 봐도 소득 역진적일 수밖에 없는 일종의 인두세다. 스코틀랜드에서만 이 세금의 미납자가 50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연합통신 보도 바로가기). 전국적으로 항의와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유혈 폭동까지 발생했다.
물론 장기 영향이 더 심각하다. 한국에서 소득 불평등은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는 지경으로 악화되고 있다. 며칠 전 국내 신문에도 보도된 <세계 상위소득 데이터베이스(The World Top Incomes Database)>에서 생생한 실상을 직접 찾아볼 수 있다( 바로가기).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세계 최상위권이다(이젠 놀랍지도 한다). 상위 1퍼센트 또는 10퍼센트 어느 쪽을 기준으로 하든,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OECD 국가 중 3등 안에 든다.
게다가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같은 사이트에서 직접 그려본 것을 아래에 첨부했다. 위쪽은 상위 1퍼센트가 차지하는 소득의 비중, 아래쪽은 상위 10퍼센트의 비중이 변하는 추세다. 1990년대 말 경제위기가 시작된 이후 추세는 그야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 꼴이다.
이런 마당에 소득 역진성이 강한 간접세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고집하는 ‘부자 감세’와 짝을 이루어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빈곤을 심화시킬 뿐이다. 아예 조세 정책의 파탄을 감수하기라도 할 참인지.
최악의 조세와 건강 정책을 마주한 심정은 참담하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조세와 건강 정책을 다시 추슬러야 한다. 일단 담뱃세 인상과 증세를 완전히 분리하라.
건강 정책이라는 점에서 담뱃세 인상은 필요하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확인한 것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담뱃세를 증세 논의에서 떼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담뱃세를 활용할 수 있도록 건강 정책의 인프라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는 점을 덧붙여 강조한다. 현재로서는 담뱃세를 제대로 쓸 수 있는 정책, 사업, 체계, 인력, 기술과 지식 등 모든 것이 허약하다. 건강증진기금이 많이 있다고 해도 제대로 쓸 방도가 없다(일인당 얼마씩 그냥 나눠줄 수야 없지 않은가).
조세 정책도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우리도 이미 여러 차례 주장했고, 사회적 합의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 부자 감세를 철회하고 소득의 형평성을 강화하는 증세에 그리 큰 반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