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기고문

삼성 스마트폰의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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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9월 12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바로가기)

 

지난달 22일, 삼성전자 영국법인이 자사 스마트 폰에 얼음물을 쏟아 붓는 ‘아이스버킷 챌린지’ 영상을 공개했다. 자사 제품의 방수 기능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적지 않은 누리꾼들이 삼성전자가 선의의 이벤트를 상품 홍보에 ‘악용’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필자가 이 소식과 영상을 접하고 느낀 감정은 조금 다른 종류의 착잡함이었다.

루게릭 병은 운동신경만을 침범하는 퇴행성 질환으로,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 모른다. 발병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역학 연구를 하기도 쉽지 않다. 원인 규명을 위한 연구가 절실하고, 이것이 바로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통해 연구비 모금을 독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나마 지금까지의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이 병이 유전 요인과 환경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촉발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환경 요인으로는 납 등 중금속, 독성 화학물질, 유기용제, 전자기장 노출 등이 반복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전자기장에 노출된 전기공, 산화납에 노출된 실험실 노동자가 루게릭 병을 직업병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미국 IBM 노동자들의 사망 자료를 분석했던 한 연구는, 구체적인 위험요인을 규명하지는 못했지만 소속 남성 노동자들의 루게릭 병 비례 사망비가 일반 인구에 비해 유의하게 높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2012년, 필자는 루게릭 병 환자의 산재 소송과 관련하여 과거 연구들을 검토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당사자인 L씨는 2006년부터 다리에 기운이 빠지고 이유 없이 넘어지는 경험을 하다가 증상이 심해지면서 2009년 10월, 당시 36세의 나이에 루게릭 병을 진단받았다. 그는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약 15년 동안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했던 반도체 설비 엔지니어였다.

가족 중에 루게릭 병을 앓았던 사람은 없었고, 발병 연령도 평균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젊었으며,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환자와 가족들은 업무 연관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반올림’의 도움을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 급여를 청구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역학조사 결과를 토대로 산재를 불승인했다. 이어진 행정소송에서도 원고 측은 패소했고, 당사자들이 항소를 원하지 않으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필자는 역학(어떤 지역이나 집단 안에서 일어나는 질병의 원인이나 변동 상태를 연구하는 학문) 전공자로서 개연성을 ‘추정’할 뿐, L씨의 루게릭 병이 삼성반도체 근무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원래 과학의 세계에 확신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과학적 추론의 조심성을 엉뚱하게 악용하는 산재보험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삼성전자의 아이스버킷 챌린지 광고는 분명히 불편하다. 자사 노동자의 루게릭 병이 업무로 인한 것인지 밝히려는 애타는 노력에는 묵묵부답하더니만, 전 세계 루게릭 병 연구를 위해 호기롭게 스마트 폰에 얼음물을 퍼붓고 기부를 하는 그 모습이 말이다.

삼성전자의 기부 행위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이번 이벤트가 악의적 뻔뻔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삼성전자가 꼭 알아주었으면 하는 게 있다. 그들 사업장에서 일을 하다가 병에 걸린 노동자들 역시 삼성이 돕고 싶어 하는 희귀난치성 환자들 중 한 명이라는 걸. 기업의 사회적 공헌은 자사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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