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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세상읽기] 건강보험료 ‘대란’의 기억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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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지역 의료보험료가 큰 폭으로 오르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연간 소득액과 기본재산 평가분에 대한 보험료가 지나치게 많이 책정됐다며 이의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1990년 1월23일 <연합통신>(현 연합뉴스)이 전한 소식이다.

“농민들은 가족이 많은 편인데 가족 비례를 적용하고 농사 안 짓는 월급쟁이들은 소득 비례를 하고 있어요… 농사짓는 형이 교사인 동생보다 의료보험료를 더 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지요.” 1995년 9월5일 <한겨레신문> 기사를 그대로 옮겼다.

이때와 비교하면 보험료 시비는 줄었다. 고지서를 보낼 때마다 민원이 빗발친다지만, 기본이 동요하지 않는 것이 어딘가. 저절로 된 것은 아닐 터, 시간이 제법 지났으니 개선과 적응을 거쳐 안정된 것이다. 우여곡절을 거쳐 얻은 결과인 만큼 몇 가지 교훈이 없을 수 없다.

우선, 모두가 건강보험의 능력을 경험한 것이 큰 이유다. 봉급명세서나 보험료 고지서를 볼 때는 불만스럽다가도 나와 가족, 아는 사람들의 경험 때문에 누그러진다. 작건 크건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보험과 보험료가 모든 이의 일상이 되었고, ‘삶의 양식’ 속에 꽤 깊게 자리를 잡았다.

다른 이유 한 가지는 보험료를 내는 책임을 나누었다는 것이다.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처음부터 직원과 회사가 절반씩을 부담했다. 농어민이나 자영자는 국가가 일부를 보탰기 때문에 불만이 덜했을 것이다. 이렇게 부담의 책임을 나누고 사회화하면 낸 만큼 찾아 써야 한다는 상거래식 계산은 약해진다.

보험료를 정하는 과정이 조금은 민주적이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진료 수가를 정할 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라는 어려운 이름의 위원회를 거치는 것을 아시는지. 여기에는 소비자, 농어민, 근로자, 사용자, 의료인을 대표하는 위원이 참여해서 토론을 벌인다. 불만을 말하고 따질 최소한의 통로는 있는 셈이다.

형평성이라는 가치 기준이 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직장과 지역 보험을 통합할 때도 그랬고, 봉급생활자와 자영자의 보험료 부담을 비교하는 지금도 그렇다. 만족할 만한 정도까지 이루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지향성 때문에 제도의 신뢰가 높아졌고 부담에 동의하는 정도가 커졌다.

다 잘된 교훈이라 여기는 것은 아니다. 모두의 건강보험으로 만드느라 작은 혜택을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해 놓은 것은 큰 빚이다. 힘을 합해 큰 부담을 덜어주자는 사회연대가 제 원리지만, 이런 정신과 제도는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했다. 똑바로 취지를 살리자고 하면 새삼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갈등이 불거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20년도 더 지난 보험료 시비를 떠올린 것 그리고 그 과정을 되새긴 이유는 다들 짐작하실 것이다. 연말정산과 복지 증세는 아직 세찬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 세대를 헤쳐 온 건강보험의 경험이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책임의 사회화나 민주성도 유용하나, 특히 보편과 형평의 교훈을 강조하고 싶다. 보편이란 부담과 혜택 모두 당사자의 범위가 최대한 넓어야 한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복지의 필요를 절감하고 그 능력을 실감해야 부담에 동의하기 쉽다. 누가 내고 어떤 이가 혜택을 보는지, 잘게 또 많이 나눌수록 갈등은 커지고 진전은 더디다.

형평으로 신뢰의 바닥을 다지는 것은 더 중요하다. 세액 공제가 옳다는 작은 형평성만 갖고는 모자란다. 부자 감세 서민 증세라는 혐의를 둔 채 반걸음이라도 나갈 수 있을까. 믿음을 얻으려면 먼저 할 일이 더 크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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