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또 다른 헬기 사고를 모두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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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앞둔 금요일, 지난 13일 저녁에 전남 신안군의 가거도 부근에서 헬기가 추락했다. 안타깝게도 네 명의 인명사고까지 났다. 악조건 속에서 공무를 수행하다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빈다.

이런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무리한 것이라면 문제가 간단치 않다. 악조건 속에서 응급 환자를 빨리 이송하기 위해 안전을 희생하는 일이 흔하다.

 

사고 헬기는 치료가 급한 어린이를 목포로 후송하기 위해 가거도로 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저녁 8시 반이었다고 하니 야간의 헬기 비행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부근의 날씨도 예측하기 어려운 때가 많다니 처음부터 큰 위험을 안고 있었다.

사고가 난 가거도는 섬 가운데서도 더 먼 곳으로, 최근 케이블 방송 촬영지로 유명해진 ‘만재도’가 바로 옆에 있다. 육지에서 가거도에 가는 가장 빠른 뱃길이 쾌속선을 타는 것인데, 그것도 4시간 30분 쯤 걸린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니 응급환자를 옮기기 위해 헬기가 출동한 것이다. 군이나 해경의 함정도 이용할 수 있다지만 가까운(!) 목포까지 적어도 일곱 시간이 걸린다니 차선책 밖에 안 된다.

 

이번 사건은 결국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응급 환자가 생겼을 때 어떤 조치를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기본 원칙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상식에 가깝다. 최대한 섬 안에서 해결하고 그래도 안 되면 빨리 환자를 이송하는 것.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가 어렵다. 우선 환자 후송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헬기나 배를 이용해야 하는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곤란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거도처럼 먼 곳은 헬기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쾌속선도 4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것을 기억할 것). 그러나 헬기를 구하는 것과 운항 조건이 모두 맞아야 환자를 옮길 수 있다. 때맞추어 응급 환자가 생기는 것이 아니니 365일 24시간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만 그게 쉬울 리가 없다.

 

먼저 헬기가 운항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사실 정도만 다르지 선박도 마찬가지다). 모두 알다시피 시간이 밤이거나 날씨가 나쁘면 쉽지 않다. 언론에 보도된 것으로는, 가거도 보건지소가 소방 헬기를 먼저 요청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바로가기). 그러나 소방당국은 기상 사정 때문에 출동할 수 없다고 하는 바람에 해경의 헬기가 출동한 것이다.

헬기나 배 등의 운송 수단, 그리고 운항에 필요한 시설과 설비도 함께 갖추어져야 한다. 나쁜 조건이어도 안전성이 높은 시설과 장비, 인력이 있으면 제약이 줄어든다. 공공의 투자가 필요한 부분이다. 기상이 나쁘다고 또는 밤이라고, 어느 섬은 무슨 시설이 없어서 출동할 수 없다면 반쪽 역할을 벗어나기 힘들다.

 

시스템도 중요하다. 환자가 생길 때마다 군과 소방, 경찰, 산림청 등 헬기를 수배해야 한다면 그 사정도 딱하다. 응급의료 전용헬기인 ‘닥터헬기’가 생겨서 사정은 전보다 나아졌다. 닥터헬기는 2011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2천 명 이상을 이송했다고 한다 (라포르시안 바로가기).

하지만 전국적으로 인천, 목포, 원주, 안동의 네 곳에만 배치되어 있다니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다른 제약도 있다. 이번 사고가 난 가거도는 운항 거리 때문에 제외된 곳이었다. 또 닥터헬기도 4인승(환자를 포함하면 6인승)이라니 이번에 사고가 난 해경 헬기와 조건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어려운 사정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우선, “그렇게 어려우면 다른 데로 옮기라” 식의 반(反)인권적인 소리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곳에 뿌리박고 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고, 마음대로 선택할 수도 없는 처지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 감자

ⓒ 감자

 

사실, 한국에서 섬의 의료문제에 가장 먼저 본격적인 관심을 가진 곳은 ‘대우재단’이었다. 1979년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 30병상의 신안병원을 열었고, 진도군 조도에는 10병상의 의원을 지었다. 1980년에는 완도군 노화도에 20병상 규모의 완도병원을 개설했다 (대우재단 자료 바로가기).

 

그러나 이처럼 민간 부문이 할 수 있는 일은 몇 군데, 그리고 몇 가지의 부분에 그친다는 것은 짐작하는 그대로다. 결국 다른 방법이 없다. 가거도가 속한 신안군에만 70개가 넘는 유인도가 있다고 하니, 무슨 재단이나 기관이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이야말로 국가가 그 구성원을 위해 존재하는 이유다. 더 투자하고 체계를 발전시키는 수밖에 없다. 이번 사고에 한정해도 그렇다. 우선은 더 안전하게 응급 이송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의 시설이 문제라면 고쳐야 하고, 헬기가 허술한 것이면 더 안전한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시설과 장비, 인력이 모자라면 수를 늘리고, 질이 떨어지면 수준을 올려야 마땅하다.

 

 

응급의료를 넘어 건강과 보건의료 문제까지 확대하면 해야 일이 더 커진다. 물론, 따로 떼어서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일상의 준비태세와 능력이 잘 갖추어져 있으면 그만큼 환자를 이송할 일도 줄어드니 하는 이야기다. 이번 사고도 보건지소 한 곳만 있는 섬 안에서 해결할 수 없어 생긴 것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가거도에는 201세대 530여명의 주민이 산다고 한다(신안군청 홈페이지). 여기 인구야 도시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이들도 병을 앓고 그러면 의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더구나 노인이 많으니 ‘필요’로 치면 도시보다 더 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신안군의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30퍼센트쯤 된다고 한다.

 

이런 가거도 주민의 의료를 책임지는 곳은 보건지소 한 곳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는 생소하겠지만, 보건지소는 농촌과 어촌 주민이 이용하는 중요한 의료시설이다. 사실 많은 면에는 의료시설이 보건지소 한 곳밖에 없기 때문에 그냥 중요하다는 말로는 모자란다.

 

보건지소와 더불어 ‘보건진료소’도 이런 곳의 주민들에게는 중요하다. 보건진료소에는 보건진료원이 근무하면서 가벼운 질병을 진료하는 역할을 맡는데 보건지소와도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고가 난 가거도에는 보건지소가 있고 (그 때문이겠지만) 보건진료소는 없다.

가거도가 속해 있는 신안군은 모두 섬으로 되어 있어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의 역할이 다른 어느 곳보다 크다. 민간 병의원과 너무 멀거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곳이 여러 군데이기 때문이다. 2014년 『신안통계연보』에 따르면, 모두 16개의 보건지소와 23개의 보건진료소가 있다 (자료 보기).

 

 

사정을 설명한 것은 가거도의 상황을 이해하자는 취지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거도만의 형편이 아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섬, 또는 육지에 있더라도 멀리 떨어진 곳은 마찬가지다. 오래되고 익숙한 위기, 하지만 해결하지 못했고 전망도 어둡다.

 

 

1979년 대우재단이 섬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지만 30년을 넘게 형편과 문제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2년 5월 18일, 신안군 비금도에 있는 신안대우의원에서 대우재단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주최한 <섬지역 일차보건의료 발전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당시 신안군 보건소장은 이렇게 발표했다.

 

 

“년중 3분의 1정도가 폭풍주의보, 일기불순 등으로 인하여 선박 입출항이 통제되는 도서 여건으로 볼 때 우선 무엇보다도 도서별로 소재하고 있는 보건지소의 의료시설과 인력을 대폭적으로 확충하여 도서주민들이 언제든지 보건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도서를 권역화하여 도서의 권역별로 1개소씩 『응급의료지정병원』 수준의 시설을 갖춘 병원이 설치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의 불행한 사고가 ‘벽지’, ‘오지’의 응급의료 시스템과 보건의료체계를 점검하고 대안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실, 좋은 대안보다는 국가와 정부의 의지와 자세가 더 중요하다.

 

한쪽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지방 정부가 재빨리 나선 것은 다행스럽다. 사고 이후 전라남도는 바로 닥터헬기 운항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바로가기). 예산도 더 투입한다고 한다. 중앙 정부와 국회 등도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란다.

 

 

한 가지 걱정은 쉽게 말했다가 쉽게 식는 것이다. 빠른 의사결정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2011년 석해균 선장 사건을 계기로 중증외상센터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뜨거웠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없지는 않으니) ‘용두사미’라는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사고가 있을 때에만 반짝 관심을 받았다가 다시 흐지부지 끝날 것이라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10년도 전에 신안군 보건소장이 말했던 그 사정을 찬찬히 살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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