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부터 큰 기대는 없었지만 해도 너무한다. 도대체 성한 구석이 없고 구린내가 나지 않는 데가 없다. 5공 시절 텔레비전 연속극 대사로 유행했던 일본말, “민나 도로보 데스(모두가 도둑놈이다)”가 다시 생각난다.
방위산업 비리가 압권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말하고 아무 데나 안보위협을 내세우는 별 달은(또는 달았던) 사람들이 범죄의 한복판에 있다. 그들은 부끄러움도 없다.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소리가 무성하니 앞으로도 얼마나 더 놀라고 한심해 해야 할까.
더불어 무기중개상과 대기업이 등장하고 횡령과 배임의 죄목이 붙었다. 민관 협력(?)이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5백억 원이 없어졌다고 하나, 그게 전부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원개발을 둘러싼 비리는 또 어떤가. 공기업과 굴지의 대기업이 등장하고, 몇 백억이나 몇 천억이니 하는 돈은 그냥 푼돈 정도다. 이제 정치인과 공무원이 곧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무슨 결과가 나와도 아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성공불융자금’이라는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의 돈줄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정부가 해외자원 개발을 하도록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실패하면 갚지 않아도 되는 제도다. 첫 인상부터 엉성하게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2011년부터 작년까지 갚지 않도록 되게 감면한 돈이 2천 245억 원이라고 한다 (연합뉴스 바로가기 ). 자원개발이 본래 실패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으로, ‘한국적’으로 운영되었을 것이 뻔하다.
스스로 국민의 기업이라고 말하는 포스코 일도 한심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리품 노릇을 하더니 이제는 돈을 둘러싼 온갖 잡음에 비리의 의심이 가득하다. 지금까지 나온 것만으로도 여러 사람이 단죄를 받겠지만, 그 또한 전모를 알기는 어렵다.
이런 일을 두고 다들 정치적 해석을 하느라 바쁘다. 가장 유력한 것은 정권마다 새로 시작할 때마다 있는 ‘사정바람’이고 ‘군기 잡기’라는 것이다. 진작부터 예정되어 있었으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미루어졌다는 것.
맞아도 그만 틀려도 그만인 정치, 시사평론을 할 능력은 없으나,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자원개발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정작 높은 차원의 결정은 그냥 두고 과정에서 불거진 사소한(!) 부정만 뒤진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정말 무엇이 문제인지는 관심이 없고 개인의 잘못을 뒤져, 다른 일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힘 있는 사정당국을 모두 동원하고, 지침과 범위, 대상까지 정해 주었다니, 수긍할 수밖에 없다.
부정과 비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데에 누가 반대할까. 더구나 이렇게 빠져나간 돈 대부분은 그야말로 혈세로 마련된 것이 아닌가. 그 말 많은 소득세는 물론이요, 과자 한 봉지, 담배 한 갑, 술 한 병에도 붙은 세금이다.
기업은 세금을 쓰는 것이 아니라고? 천만에, 포스코만 하더라도 시작이 ‘대일청구금자금’ 즉 일제에 희생당한 값에서 출발했다. 더구나 민영화를 핑계로 전국민을 대상으로 국민주를 팔지 않았던가. ‘성공불융자금’도 135억 원이나 지원받았고, 대부분 날렸다고 한다. 공공의 자산과 시민의 땀을 사익을 위해 나눠가진 것이다.
공공의 자산을 빼내 사익을 채웠으니 반드시 처벌을 받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이번 역시 비슷하게 시작하고 끝내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토록 “나라와 경제를 걱정하는” 사정당국이 가는 길을 배워서 짐작한다. 무슨 결판이라도 볼 듯 몰아치다가, 금방 사회 분위기 위축과 경제 활력 저하를 걱정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그리고 마무리.
권력을 가진 쪽에서 의제를 만들었으니 당분간은 따라갈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이번에도 비분강개와 한숨으로 지내다 허무하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까. 왜 비슷한 일은 끈질기게 되풀이되고 좀처럼 나아지지지 않는가.
먼저 그 뿌리 깊은 ‘일부 몰지각한 개인’ 탓으로부터 벗어나자. 크든 작든 잘못을 저지르는 개인은 어디에나 있다. ‘선진국’이라고 사람들이 특별하게 더 윤리적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제도와 환경이 다른 행동을 만드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구조가 다르기에 차이가 많이 날까. 물론, 한두 가지로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국가 자원을 배분하는 데에 작용하는 기본 원리가 한 가지 중요한 이유라고 주장하려 한다.
기본 원리가 부정과 비리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가에 따라 예산을 배정하고 사용하는 용처와 쓰는 방법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전체 과정도 확연하게 달라진다.
첫째는 내용의 원리. 공공의 재정이 ‘인민’의 복리와 안녕에 기여하는가, 아니면 밥 제섭의 말대로 ‘경제적 상상물(economic imaginary)’을 붙들고 있을 뿐인가. 자원 배분의 왜곡과 누수가 어느 쪽이 많을까.
방산비리가 한 가지 실마리를 보여준다. 방위사업청이 자랑하는 것 한 가지가 ‘방산수출 경쟁력’이다 (방위사업청 누리집). 이는 국방도 산업과 경제라는 시각을 포함한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브로커와 중개료가 끼어드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비리의 상당 부분은 ‘국내 방위산업’ 육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을 것이다.
자원개발도 마찬가지다. 그 모호한 가치에 나랏돈을 쓴 것이다(구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원’과 ‘개발’은 얼마나 매력적인 추상인가). 그리고 정부와 공공이 아닌, 기업을 직접 지원하는 방법을 썼다. 사정이 이렇다면 부정과 비리는 예정된 것이 아니었을까. 여느 사람들의 말대로 누가 먼저 차지하는가의 게임.
경제뿐 아니라 사회적 상상물도 있다. 때마침 한 시사주간지가 경상남도가 2015년 서울사무소의 예산을 10억 원 넘게 쓴다고 보도했다 (일요시사 바로가기). 규모는 작년에 비해 3억 원 넘게 증액된 것이라고 한다. 무상급식 예산을 중단하겠다는 방침과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
도 차원이지만 경상남도 역시 예산을 배분한 것이고, 거기에는 도정 운영의 기본원리가 들어있다. 우리는 서울사무소의 예산을 크게 늘린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들은 추상적인 상상물(예를 들어 중앙 정부나 국회와의 ‘협력’)을 선택했다.
둘째는 과정의 원리. 지금 벌어지는 일과 ‘주민참여예산’을 비교해보자. 한국에서도 지방정부가 초보적인 참여예산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것을 모범으로 두고 비교할 일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어떻게 하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참고자료가 많으니 따로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세계은행의 다음 자료 참조).
과정 역시 방법과 기술보다 원리와 정신이 더 중요하다. 민주적으로 배분을 결정하고 국민(주민,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한다는 것. 참여예산제가 자랑하는 강력한 가치가 투명성이라는 것이 함축하는 바가 크다.
처벌과 사정만으로는 부정과 비리를 없애지 못한다. ‘몸통’은 없애기는커녕 줄이기도 어렵다. 우선 잘 드러나지 않는데다, 국가 자원을 배분하는 원리 속에 그리고 그것이 제도로 만들어진 틀이 쓰임새를 예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큰 몫의 쓰임을 성찰 없이 절대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방위력 증강, 자원개발, 해외시장, 국가경쟁력, 창조경제, 문화융성과 같은 추상적 상상물이 위험하다. 특히 경제와 성장의 이름 뒤에 숨은 그 어마어마한 혈세 지출. 그 안에 예외 없이 비효율과 누수와 부정이 꿈틀거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경계(칸막이)가 시민의 안녕과 복리를 위협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무상급식과 보육에 쓸 돈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경계가 흐름을 가로막는다. 복지 재정의 총량은 그냥 받아들인 채, 미시적 배분을 두고 싸워야 한다.
결국 사회 전체가 피땀 흘려 모은 국가 자원을 무엇을 위해,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배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한 사람을 벌해서 얻어야 할 교훈이라면(일벌백계), 다시 국가 자원을 둘러싼 성찰과 가치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