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흐트러진 연금 논의가 좀처럼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노인빈곤이 대란 수준으로 닥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하는 것, 이번 일은 문제를 풀 ‘국가’의 의지와 능력을 민낯으로 드러내는 중이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으나 전망은 밝지 않다. 집권층은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올릴 생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의미 있는 사회적 논의보다는 정부가 주도하는 ‘공포 마케팅’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여기다가 금융지본과 일부 언론이 합작하면 민간형(개인형) 노후 소득보장 모델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지나갈 수는 없다. 현실의 여건이 어렵고 당장 묘안이 없어도 그럴 일이 아니다. 국민연금의 재정을 예측하면서 2060년, 2100년을 말하지만 한 마디로 한가로운 소리다. 노인의 빈곤은 엄연한 현재이자 돌진해 들어오는 가까운 미래가 아닌가.
이제는 놀라지도 않을 노인빈곤율을 또 말해야 할까. 2010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47.2%로 거의 절반이 빈곤층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34개 OECD 국가 가운데 압도적 1위에다 다른 나라와는 비교조차 어렵다 (<한 눈에 보는 연금 2013> 바로가기). 2007년에 비해 빈곤율이 3% 가깝게 올랐다니 개선될 기미도 없다.
노인의 가난이 어디서 비롯되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더 자세하게 말하지 않는다. 멀어봐야 한 다리만 건너면 누구나 겪는 현실을 어찌 모를까. 다만 한 가지, 한국 사회의 기반을 뿌리 채 흔들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시 말하지만 45년 뒤, 85년 뒤가 아니라 바로 오늘 내일의 사회적 위험이다.
공적 연금을 확충하는 일이 급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바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국민연금의 재정, 기초연금의 소요예산, 정부의 재정건전성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달렸다는 사실도 다시 기억하자.
여기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더 답답하다. 국민연금, 나아가 공적 연금을 확충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은 것이 더해진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50%가 말썽이지만 이는 그야말로 ‘평균’이자 ‘숫자’일 뿐이다. 본래 소득이 낮은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이며, 이른바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속한 사람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용돈 수준의 기초연금 액수는?
큰 걱정거리는 공적 연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꼴이 나는 일이다. 알량한 공적 연금마저 엉뚱한(?) 곳에 쏟아 부어야 하면 조금 올라봐야 가난과 파탄을 피하기 어렵다. 사실 노인만 그렇겠는가, 기본이나마 삶의 품위를 유지한다는 것은 연금 액수보다는 훨씬 더 종합적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질병과 의료비가 큰 문제다. 2014년 말에 단편이나마 그 사정을 드러내는 자료 한 가지가 나왔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것인데, 기초연금을 받은 사람들이 돈을 어디다 썼는가를 분석한 것이다.
‘보건의료비’의 비중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정도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높다, 설문에 응답한 사람 가운데 44.2%가 보건의료비로 썼다고 했고, 30.2%가 식비, 15.8%가 주거비라고 응답했다(정책브리핑 바로가기). 거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의료비를 꼽은 셈이다.
좀 더 자세한 분석을 보면 그냥 아무렇게 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연령이 높을수록, 소득이 낮을수록, 대도시 이외의 지역일수록 보건의료비로 썼다는 사람이 많다. 기초연금 때문에 병원에 가는 부담이 줄었다는 답도 있다.
기초연금을 받아 의료비로 충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국민연금도 의료비로 쓰이는 비중이 작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평생 쓰는 의료비 가운데 65세를 넘어 지출하는 것이 절반을 넘는다지 않는가.
정체불명의 건강식품이나 유사 의료기기에 그 많은 돈을 썼을 리는 없고, 결국 공적 연금이 제 구실을 하는가는 이곳에서 공적 건강보장의 건전성과 ‘결합’한다. 국민건강보험과 의료급여의 적용을 받는데도 따로 많은 돈을 써야 한다면? 공적 연금의 보장성이 무슨 소용인가.
많은 사람이 이미 아는 대로, 의료비 가운데에 국민건강보험이 담당하는 비중은 6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보장성을 올린다고 했지만, 몇 년째 요지부동이고 최근에는 오히려 후퇴하는 조짐도 보인다. 상황이 이럴진대, 국민연금, 기초연금, 개인연금 할 것 없이 그 돈이 어디로 가겠는가.
결론은, 공적 건강보장의 보장성을 올려야 공적 연금도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유야 무엇이든 건강보장을 확충하는 일은 이 자체로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다. 따로 점검하고 다시 틀을 짜야 성과를 낼 수 있는 만큼, 한두 가지의 조치나 간단한 정치적 의지로 달성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 문제는 앞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이 논평을 통해 다시 논의할 것을 약속한다.
그 전에라도 단편과 미봉이 아니라 ‘정책 패키지’가 필요하다는 점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국민연금뿐 아니라, 기초연금을 포함한 공적 연금의 강화. 그리고 이제 국민건강보험과 의료급여를 더 튼튼하게 하는 방법을 같이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쓸 데 없는 걱정이기를 바라지만, 이 말도 보태야 하겠다. 노인의 의료비 또한 다른 민간보험으로 해결하자고 주장하겠지만, 무지하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다. 예정된 지출을 대상으로 해서는 보험의 원리가 제대로 적용될 수 없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