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메르스의 과학 – 무용(無用), 오용, 그리고 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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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째 같은 주제(메르스)로 논평을 내는 것은 서글프다. 사태가 진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몇 차례 고비를 넘는 듯 했지만 아직 추세를 장담할 수 없다. 본래 확실하지 못한 점이 많았지만, 실수와 오류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메르스에 어떻게 대응했고 잘잘못이 무엇인지는 앞으로 차분하게 복기해야 할 일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급한 일이 끝나면 평가와 학습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벌써부터 걱정하긴 이르지만 한 때의 관심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긴 호흡의 ‘개혁’과 더불어 현재 진행되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줄이는 것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당장의 현실이 고통과 노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일상과 매일이 모여 새롭게 변형된 구조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잊지 말자.

 

오늘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메르스 사태를 빨리 해결하는 데에 올바른 (근대적 의미의) 과학적 접근과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치와 사회, 문화 등을 빼고 이번 일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협소한 ‘과학주의’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과학인가 아닌가 하는 이분법도 적절치 않거니와 과학 역시 그렇게 좁은 틀에 가두어 둘 수 없다.

근대 과학과 과학적 지식의 의미는 장기적으로 논의해야 할 과제이나, 그러면서도 지금 과학과 비과학이 (실재하는 것이든 구성된 것이든) 메르스를 둘러싸고 많은 이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무시하기 어렵다. 메르스의 위협이라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의 불안과 고통을 생각하는 것이 오늘 논평의 구체적인 맥락임을 거듭 강조한다.

 

이번 사태를 두고 과학은 자주 무용하거나 남용, 오용, 또는 악용된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의식이다. 이 중에서 과학을 악용하는 것은 자세하게 말할 필요가 없을 줄 안다. 혼란과 불안의 와중에 과학을 빙자하여(예를 들어 ‘면역력’이라는 과학의 외피) 아무 근거 없는 예방법, 치료법을 내세우는 것은 범죄에 가깝다. 그것이 돈벌이와 이해관계와 연결될 때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과학의 무용(또는 비과학)과 남용이 악용보다 더 은밀하다. 모두가 짐작하듯이 ‘무용’과 ‘남용’은 사실 과학을 잘못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 즉 ‘오용’과 겹친다. 오늘 한국에서 과학은 무용과 과용, 남용을 넘나들면서 현실과 떨어진다.

쉽게 볼 수 있는 것들부터 짚고 넘어가자. 전파를 예방한다고 목적과 근거를 알 수 없는 연막 소독이 다시 등장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곳곳에 놓여 있는 ‘메르스 소독발판’의 정체는 또 무엇인가(며칠 전까지 서울역에 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무엇이라도 하고 있는 것을 보여야 하는 관료주의적 충정을 모르지 않으나, 과학이 어떤 역할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접촉에 의한 감염 가능성도 같은 위험에 처해 있다. 개방 공간에서 통상적인 사람 사이의 접촉으로 전파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과학적 지식이라면,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노출 거리 몇 미터와 노출 시간 몇 분의 기준만 따지는 것은 과학이 오용된 것이라 해야 한다. 의료진의 자녀라고 무작정 따돌리는 데에 이르면 과학을 말하는 것이 공허하다.

 

논평_20150615

 

물론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 가운데서도 확실하지 않은 것,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이 과학적 접근을 회의하게 만든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이른바 불확실성의 도전.

그러나 과학에서 ‘불확실성’과 지식의 ‘오류 가능성’은 한 번도 면제된 적이 없었던, 늘 당면했던 도전이 아닌가. 실로 지식이 부족하고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이 과학을 부인하게 만드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오히려 불확실성이야말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전 예방의 원칙’은 사회가 위험과 불확실성에 직면하면서 고안한 과학적 접근의 대표적 원리 가운데 하나다. 다들 아는 대로 비록 확률이 낮더라도 나쁜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이 원칙의 핵심이다.

몇 해 전 광우병 파동 그리고 핵발전소 문제 때문에 제법 알려진 것이 되었지만, 현실은 또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확인했다. 초기 대응에서 ‘불확실성의 과학’이 작동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려운 것이 대표적 예다. 불확실한 지식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떤 과학은 남용되었고 어떤 과학은 무용했다(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또 한 가지, 과학의 범위를 좁은 의미의 자연과학으로 생각한다는 것 역시 과학이 오용(또 다른 측면에서 과학이 쓰이지 않는 ‘무용’이기도 하다)되는 또 다른 예다. 이것은 중요한 논쟁거리가 될 수 있지만, 우리는 바이러스와 그것의 전파, 몸 안에서 병을 일으키는 경로에 대한 지식만 과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이 불확실성에 왜 불안하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서로 어떻게 생각을 주고받고 여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근대 과학의 대상이자 내용이다. 제도적으로 ‘사회과학’이나 ‘인간과학’으로 불리는 것들이 이런 것들이 아닌가(‘융합과학’이라 불러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과학의 ‘빈곤’을 나타내는 예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력한 정치 지도자가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병원을 방문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심리나 행동이 달라지는지 우리는 모른다. 질병 정보나 개인위생 지침이 어떤 경로로 전파되고 누구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렇게 하면 실제 행동 변화가 있는지는 알고 있는가. 어떤 격리가 어떻게 효과가 있는지는 또 어떤가.

한 마디로 우리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충분히 갖지 못한 채 메르스를 상대하는 중이다. 물론 개인이 아니라 구조의 실상이자 문제인 점이 더 크다. 예를 들어 질병관리본부에 이런 과학을 다루는 전문가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지식과 방법을 상식이나 의지, 정치적 결단이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사실이다. 현실이 이런 마당에 정책 논의와 대책이 과학적이라 할 수 있을까. 사회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한, 노력과 비용에 비해 효과를 확신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이라도 과학에 기초한 문제해결이라는 근본을 확인하고 더 튼튼하게 해야 한다. 상황이 어렵고 복잡해질수록 전근대적 ‘주술’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메르스 사태가 빨리 진정되지 않으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

감염병 통제는 근대적 의미의 국민국가가 감당해야 할 대표적인 책임이자 과제다. 국가이성이라는 것이 작동하고 있다면 과학 지식과 과학적 실천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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