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동성애 혐오, 당신의 수명이 단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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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성적 편견과 건강

성 소수자는 물론 소수 인종, 이민자, 장애인, 빈곤층, 비정규직 등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이들의 건강 상태가 더 나쁘다는 연구 결과는 이제 새로울 것도 없다.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면서도 건강과 행복에 아무런 부정적 영향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발견이 될 것이다. 동성 결혼 합법화 물결이 이어지고 있는 미국에서도, 성 소수자 성인의 20%가 범죄 피해를 경험할 정도라고 한다. (☞관련 자료 : Hate crimes and stigma related experiences among sexual minority adults in the United States: prevalence estimates from a national probability sample)

2013년 FBI 통계에 의하면 7230명의 피해자를 낳은 증오 범죄 5922건 중 20.2%가 피해자의 성적 지향과 관련이 있었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나 서울 시민 인권 헌장 제정 과정에서 벌어진 ‘난동’을 보면, 공식 통계는 없지만 한국 성 소수자들의 혐오 범죄 피해 또한 매우 심각할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최근 서울에서 열린 퀴어 페스티벌 반대 집회 모습을 접하고 궁금증과 우려가 동시에 생겨났다. 땡볕 아래에서 부채춤을 추고 깃발을 흔들며 북을 치는 이들, 핏발을 세우며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이들, 저들은 과연 괜찮은 것일까?

▲ 성 소수자 인권 단체 기자 회견이 열리자 동성애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는 모습. ⓒ프레시안(서어리)

예상했던 대로, 이런 궁금증은 필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 하첸블러(Hatzenbuehler) 교수 팀이 2014년 <미국공중보건학회지>에 발표한 논문 ‘미국 이성애자들에서 반 동성애 편견과 총사망률’이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관련 자료 : Anti-gay prejudice and all-cause mortality among heterosexuals in the United States)

연구진은 1988~2002년에 시행된 종합사회조사 참여자 중 이성애자 2만226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종합사회조사는 다수의 국가들이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사회과학 분야의 대표적 표본 조사 중 하나이다. 미국에서는 1988년 조사부터 응답자의 성적 지향과 동성애에 대한 견해를 묻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견해는 다음의 4개 항목으로 측정하여 점수를 매겼다. ① 이웃의 누군가가 동성애에 우호적인 책들을 공공 도서관에서 치우자고 제안한다면 동의하시겠습니까? ②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인정한 사람이 대학에서 가르쳐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③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인정한 사람이 지역 사회에서 공개 연설을 한다면 이를 허용하시겠습니까? ④ 동성의 성인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성적 관계는 항상 잘못이다, 거의 언제나 잘못이다, 때로는 잘못이다, 전혀 잘못이 아니다.

이 항목들의 점수가 높을수록 성적 편견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2008년까지의 사망 자료 연계를 통해 이들의 사망 여부와 사망 원인을 확인한 후, 동성애에 대한 편견 수준과 사망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최근 학계에서는 ‘호모포비아’ 대신 ‘성적 편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호모포비아는 비이성애자에 대한 이성애자의 부정적 태도를 지칭하며 ‘두려움’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증 연구 결과 이들에게서 다른 종류의 공포증에 비견될 만한 수준의 두려움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두려움보다는 분노나 혐오가 더 흔한 감정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두려움 개념은 이러한 태도가 본질적으로 비이성적임을 전제하지만, 많은 이들이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합리적 설명을 내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호모포비아’ 개념이 학술적으로 불충분하며 이성애자들의 부정적 반응을 개인의 병리로 이해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성적 편견’ 개념은 이것이 동성애와 관련된 사회적, 문화적 ‘오명’을 감정으로 내면화한 것이며, 부정적 태도의 형태로 성적 소수자에게 표출되는 것이라고 바라본다.)

그 결과, 동성애 편견 점수가 1점 올라갈 때마다 사망 위험이 2.9배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혼인 상태, 인종, 성별, 연령, 국적, 가구소득, 개인의 학력, 현재의 건강 상태 같은 혼란 요인들을 모두 고려한 후에도, 사망 위험은 여전히 1.25배 높았다. 연령별 사망률을 이용하여 환산하면, 이는 약 2.5년의 평균 수명 손실을 의미했다.

인종에 대한 편견이나 종교 변수를 포함해도 사망 위험은 여전히 높았다. 사망 원인별로 분석한 결과,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도 1.3배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이 비적응적인 심혈관 반응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분노가 핵심적인 감정 요소로 작용하며, 그로 인해 촉발되는 생리적 반응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성적 편견으로 인한 부정적 건강 결과가 피해 당사자인 성 소수자뿐 아니라 차별의 가해자 집단에서도 초래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동성애 혐오 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성 소수자 뿐 아니라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개인들이 성적 편견을 표출하는 것은 개인 나름의 심리적 유용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성적 편견이 사회적 인정을 받고, 자아 개념에 핵심적인 가치를 확인하며, 자기 존중감에 대한 위협과 관련된 부정적 감정과 불안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적 편견의 심리적 유용성이 사라졌을 때, 이성애자들은 성 소수자를 향한 긍정적 태도를 발전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변화의 가장 긍정적 촉매는 성 소수자 친구, 친지, 혹은 동료와 밀접한 인간적 관계를 갖는 것이다. 더 많은 교류와 접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련 자료 : Sexual prejudice))

성적 지향은 개인의 몫이다. 다른 사람의 성적 지향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라면 하나를 끓이는 데에도 스프를 먼저 넣을 것이냐, 면을 먼저 넣을 것이냐 취향의 각축이 벌어지는 마당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라면 취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혹은 나와 다른 라면 취향이 인정받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부채춤을 추고 결의 대회를 한다면 이건 심각한 보건 문제이자 혐오 범죄가 된다. 지금도 동성애자에 대한 분노와 우려로 애태우고 있을 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다.

“혐오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이제 그만 내려놓으세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서 좋은 세상 보셔야죠.”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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