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메르스 사태의 ‘출구 정치’와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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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발표하는 통계를 그대로 믿는다면, 메르스 사태가 위기의 정점을 지난 것 같다. 여전히 불확실하고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아래 그림이 보이는 추세와 경향을 믿고 싶다. 6월 20일(토요일)에 다시 3명으로 증가한 점이 불안하지만 다시 증가하는 쪽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메르스 일별 확진자 추이 (2015년 6월 21일 현재, 보건복지부)

메르스 일별 확진자 추이 (2015년 6월 21일 현재, 보건복지부)

 

일단 큰 고비는 지난 것 같은 분위기지만 정부의 대응과 리더십은 여전히 불안하다. 특히 ‘컨트롤타워’가 어디인가(또는 누구인가)를 두고 벌이는 공방은 보는 사람의 낯이 뜨거워질 정도다.

새로 임명된 국무총리는 차라리 가만히 있는 편이 낫겠다 싶다. 취임하자말자 내가 바로 ‘컨트롤타워’라고 선언했다지만 그건 그 자신과 이 정부가 그게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증거일 뿐이다. 임명되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선언과 명령으로 작동되는 것도 아니다.

시장과 보건소를 방문하고 누구누구를 위로한다는 뉴스를 만드는 것이 그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뉴스를 만드는 ‘그림’의 뒤 그 번잡함과 고단함을 상상해 보라. 보고서를 만들고 의전을 챙기느라 그렇지 않아도 바쁘고 정신없는 마당에 민폐를 더할 뿐이다. (지금 있는지 없는지 모르나) 전체 상황을 관장하는 책임자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용히 그러나 꼼꼼하게 챙기고 일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그의 몫이다.

 

우리는 2주 전 이 논평을 통해 메르스 사태를 해결하는 데에 필요한 지도력(리더십)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필수 조건을 제시했다(2015년 6월 8일 <서리풀 논평> 바로가기). 확진자 수와 추세는 바뀌었지만 우리의 문제의식은 그대로다. 여전히 리더가 중요하고 좋은 리더십이 필요하다!

목록은 그대로여도 상황이 달라지면 강조점은 조금씩 이동할 수밖에 없다. 희미하기는 하지만 출구가 보인다는 것이 지금의 조건이다. 확진자 수가 더 줄고 사태가 안정화되어 가는 시점과 국면에 무엇이 더 중요해졌을까.

우리는 앞서 제시한 여덟 가지 가운데 마지막, “장기적 전망과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에 주목한다. 이 역할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이 정부가 임기를 다하는 때까지 그 책임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

구체적인 역할은 그대로 옮긴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망과 비전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 방역체계와 조직, 공공보건의료, 병원, 의료제공체계, 그리고 정치적 리더십 그 자체. 드러난 문제들을 점검하고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제시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메르스 사태에서 나타난 리더십의 부재 또는 기능 부전과 함께 가까운 과거 경험으로 볼 때도 낙관하기 어렵다. 멀리 갈 것 없이 현재까지 지속되는 세월호 사건 ‘이후’를 보라. 그 어느 곳에서 ‘장기적 전망과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십이 작동했는가.

왜 그런가의 교훈도 같은 곳에서 얻을 수 있다. 위기를 기회 삼아 장기적 전망과 방향을 만들어가는 리더십이 좋은 의미라면, 이와 경쟁하는 것은 이번에도 ‘비난’의 정치가 아닐까 한다. 책임 묻기, 희생양 찾기, ‘폭탄 돌리기’, 그리고 수많은 ‘유체이탈’이 다시 등장할 것이다.

사실 이미 시작되었다. 벌써부터 잘잘못을 가리고 책임을 따지는 공방은 속으로 끓고 있고 때로 폭발한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한복판에 있으니 폭발성이 더하다. 그러나 책임과 비난의 축과 층위는 얼마나 다양한가. 그 일단은 이틀 전 ‘데일리한국’의 윤지환 기자가 쓴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바로가기).

책임을 묻고 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 전망과 방향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연결되어야 비로소 가치를 만들어낸다. 이 지점에서 메르스는 불행한 세월호 사고와 만난다. 출구가 막 보이기 시작한 시점에서 판단하는 것이지만, 메르스 사태가 당면한 책임을 둘러싼 투쟁이자 정치는 세월호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책임을 둘러싼 격렬한 투쟁은 두 개의 연결되지만 또한 분리된 국면을 갖는다. 하나는 사고의 책임을 누구에게 어떻게 물을 것인가, 그리고 또 하나는 이를 바탕으로 책임을 어떻게 재조직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2014년 4월 27일 <서리풀 논평>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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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재조직하지 않은 채 개인과 개별 조직 특히 실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필경 사회적 ‘린치’로 끝나고야 만다. 비난의 정치가 성공한다고 해서(대통령은 또 다시 모면하고 장관이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이 한 예다) 무슨 사회적 가치가 있을까. 이런 나쁜 시나리오를 거부하고 책임을 다시 조직하는 것이 리더십의 당면한 역할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 대통령을 비롯한 책임 있는 ‘리더’들에게 요구한다. 비난의 게임에서 이겨 위기를 넘겠다는 유혹을 포기하라. 벌써 사정이 썩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회는 남았다고 본다. 이제라도 좋은 리더십이 발휘되면 영 바라지 못할 일도 아니다. 물론 혼자 할 수는 없으니 사회적 압력이 또 그러해야 한다.

 

이와 함께 다시 그 요구로 되돌아간다. “장기적 전망과 방향을 제시할 것.” 책임의 정치를 회복하기 위한 진정한 리더십의 핵심 역할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당신’들의 그 현실적 필요, 비판과 비난을 피하고 관리하는 것을 건설적으로 해결할 기회라는 점도 잊지 마시라.

장기적 전망과 방향이란 무엇인가? 앞으로도 얼마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는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중심 질문이다. 단언컨대, 장관 경질과 실무 책임자 문책, 정부 조직 개편, 보건 담당 차관 신설, 예산 증액, (공허한) 공공의료 확충, 법률 개정 등등의 단답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예로 보면 그 모든 ‘개혁’은 곧 정부 조직 개편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지금의 능력으로는 이번에도 그리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실무적으로도 결코 위기 대책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세월호 사건에서 출발한 국민안전처가 이번에 무슨 역할을 했는지 보라.

그것보다 훨씬 더 넓다. 이번 일이 벌어진 경과만 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간단하게 말하면 민간과 각 사람, 문화와 가치, 행동의 방식과 환경까지 포함한다. 그러니 할 일은 무슨 한두 가지 조직이나, 정책,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요약하자. 공중보건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까, 결국 국가와 사회, 정부 시스템을 정비하고 재조직하는 일이 지금부터 리더와 리더십이 해야 할 역할이다. 당장은 목표에 이르기 위한 ‘과정’(누가, 어떤 길을, 어떤 방법으로 가야 할까) 그 자체를 조직해야 한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이 책임을 다할 것을 무겁게 요구하고 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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