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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미 씨 사망 8년…삼성, 조정권고안 수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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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4일자 프레시안 기고문입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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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익법인 설립 거부 유감…사회적 책임 다해야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위원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던 황유미 씨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벌써 8년 전 일이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다른 노동자들의 발병 사실이 속속 세상에 알려졌다. 역학 조사가 이루어졌고, 산재 청구와 행정 소송, 승인과 불승인 소식이 교차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기금을 지키려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삼성은 ‘유감’을 표명하면서 근로복지공단 뒤에 그 커다란 몸집을 숨겼다. 노동자들 중 일부는 세상을 떠났고, 또 일부는 여전히 투병 중이다.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은 병마와 싸워야 할 뿐 아니라, 삼성, 근로복지공단과 싸우고 생계를 위해서도 고군분투해야 했다. 조정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삼성전자, 가족대책위원회, 반올림이 조정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무엇보다 이들 노동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시급하다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달 23일 발표된 조정위원회의 조정 권고안에 모든 당사자들이 만족했던 것은 아니다. 다들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한쪽의 주장만 받아들여진다면 그건 이미 ‘조정’이 아니지 않은가. 특히나 보수적인 경제신문들은 영업 기밀, 고유한 경영권 보호 등을 내세우며 삼성이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숙려 기간의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 발표된 삼성의 의견은 상당히 전향적인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1000억 원의 기금 출연은 물론, 그동안 반대했던 협력업체 직원들에 대한 보상까지 담고 있었다. 인과관계는 인정할 수 없다고 못을 박으면서도 조정위원회가 제시한 보상 질환군의 대부분을 수용할 뜻을 비쳤다. 하지만 우려했던 대로 보상 및 지원 문제의 처리를 담당할 공익법인 설립에는 뚜렷한 반대의사를 표명했으며, 삼성의 안전 보건 조치를 모니터링 할 옴부즈맨 제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외부 전문가,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종합진단팀’이 그러한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 같다. 공익법인을 설립하면 불필요한 행정 비용이 소모되고 시간이 지연된다는 이들의 설명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번 조정은 삼성이라는 한 기업과 피해 노동자들 사이의 ‘사적인’ 문제를 초월하는 것이다.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여기에 한국반도체산업협회도 공동 출연할 것을 권고한 것은, 삼성을 넘어서 반도체 산업 전반의 노동자 보호라는 ‘사회적’ 의의가 담겨 있다. 또한 내부 감시자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튼튼한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외부의 옴부즈맨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제안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 대표기구인 노조가 존재하지 않는 기업에서 ‘노사 동수’ 산업안전보건위원회니, ‘근로자 대표’가 포함된 종합진단팀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삼성은 조정위원회가 왜 이런 안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현재의 조정안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상과 지원의 기준은 가용한 최선의 과학적 근거에 기초하고 있다. 그래서 산업보건학회도 권고 수용 의견을 낼 수 있었다. 보건학 연구자로서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이러한 보상과 지원이 산재보험 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점이다. 직업성 질환의 입증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고, 엄밀한 과학적 근거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산재보험은 무척이나 진입 장벽이 높은 사회보장 제도이다. 그나마 삼성 정도의 대기업이니까 이렇게 ‘조정’이라도 가능하지,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기대야 한다는 말인가? 하청, 파견, 단기 계약직 같은 고용이 늘어날수록, 업무와 질병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지는데 말이다. 게다가 삼성 노동자들이 이러한 보상․지원에 만족하고 산재 신청을 꺼려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사례들은 직업병 통계에 잡히지 않을 테고, 그러면 다른 노동자가 비슷한 질병에 걸려도 전례가 없어서 산재로 인정받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실제로 미국 IBM에서도 산재 청구나 소송에까지 이르지 않고 개별적으로 합의한 사례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어떤 건강 문제를 경험했는지, 몇 명이나 되는지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더더욱 공익법인을 구성하고 전체 반도체 산업의 노동자 보상·지원 문제를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산재 인정 이전에라도, 새로운 건강문제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파악되고 그 정보가 공유되어야 한다. 고 황유미 씨의 가족들이 백혈병을 그녀만의 특별한 비극이라 여기고 지나갔더라면, 아마 지금도 우리는 반도체 생산 작업의 위험성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고 있을 근로복지공단을 생각하면 그저 한숨만 나온다. 사회보장제도의 진입 장벽이 왜 이렇게 높아야만 하는지, 희생자들이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을 싸우고 결국은 기업과 맞대면을 해야 하는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삼성에게 조정안 수용을 촉구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하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삼성에게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조정에까지 이르게 된 지난한 과정, 조정권고안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충분히 수용하여,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권고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도 기업으로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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