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새 보건복지부 장관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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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발표되었다. 처음부터 적격인지를 두고 시비가 있었지만 앞으로의 검증 과정도 험난할 것이다. 인사청문회까지 2-3주의 시간이 더 있을 테니 끝까지 견뎌낼지 두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 정부의 전례를 보면 ‘기정사실’이다. 어지간한 사고나 스캔들로는 여당이나 임명권자의 결정을 바꾸지 못할 터, 당연히 장관으로 임명될 것으로 보고 몇 가지를 당부하려 한다. 미리 말하지만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바라는 것은 한 가지, 장관으로 어떤 일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혹시 이전부터 생각하던 것이 있었다면 그런 계획이나 결심을 모두 버릴 것을 권한다.

 

우리는 현재의 내정자가 선택된 배경과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아무리 거듭 생각해도 한 가지는 명확하다. 지금 이 시기 보건복지 정책의 중요한 과제를 잘 풀어나갈 적임자로 보이지는 않는다.

병원 경영을 핵심 국정 과제로 생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억지로라도 갖다 붙일 수 있는 것은 원격의료, 무리하게 넓히더라도 의료서비스 산업과 의료수출 정도가 아닌가 한다. 우리는 이것 역시 중요한 국정과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백보를 양보해서 그렇다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그가 몇 개 병원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그리고 서비스가 아닌 정책 차원에서 이 문제를 고민하고 경험한 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나머지 일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연금과 같은 복지 정책은 아예 꺼내지도 말자. 현재 진행형인 건강보험 재정과 의료인력 정책, 그리고 메르스 사태로 촉발된 공중보건과 방역 정책 등을 제대로 이해할 수나 있을까. 한 번도 다뤄본 적이 없을 테니 일반인이 가진 평균 이상의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관이 잘 해야 하는 또 다른 역할, 정치가 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보건복지 정책을 둘러싼 정치는 어느 분야보다 복잡하다. 연금 문제에서 보듯이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장관의 소임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다. 그러나 병원장으로서의 정치적 훈련과 국가 정책의 정치가 같을 수는 없는 일, 역량을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사실 전문성과 경험, 역량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긴 하다. 이 정부에서 각 부처가 해는 일과 장관의 능력은 별로 관계가 없지 않은가. 좋게 말하면 국정의 일관성이지만, 잘못되면 무능의 틀에 같이 갇힌다. 더구나 보건복지부는 메르스로 ‘사고’를 친 것으로 취급될 테니, 책임과 권한을 위임받은 리더가 되기는커녕 ‘꼭두각시’ 장관을 면하기 어렵다. 말썽 일으키지 말고 시키는 것이나 하라는 메시지를 받을 것이다. 장관 인선 기준에 이미 이런 의미가 함축된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결국 새 장관이 장관으로서 해야 할 책임, 즉 보건복지의 장기적 전망과 비전을 만들고 국정의 틀로 만드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거기서 한 단계 낮추어 다양한 국가 정책을 점검하고 추진해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메르스 사태로 촉발된 국가 방역체계의 재구축 역시 멀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남은 일이 무엇일까. 위에서 내려오는 ‘하명’을 충실히 집행하거나, 의전과 행사, 정치적 방패막이, 서류상의 책임을 지는 일 정도라고 할까. 그 외에는 청와대의 개입 범위를 벗어나는 ‘집안’ 일에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남는다.

일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은 이런 일들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맡은 책임이 원격의료와 의료수출, 영리병원 등의 ‘국정 목표’를 충실하게 집행해야 하는 것이라면, 더 이상 자세하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이라도 과학과 시스템을 훈련받은 바가 있으면 생각해 보라. 이 정책의 합리성과 당위를 어떤 ‘논리 고리’와 ‘변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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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의사로 30년 넘게 살아왔다니 한 가지를 덧붙인다. 그 일들이 의료의 본업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그리고 병원과 환자, 일반 국민들을 얼마나 황폐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정해진 것을 집행하는 것 이상 역할을 할 수 없겠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의료(의사들이 말하는 ‘의업’이라도 좋다)가 이런 꼴이 난다면 어떻게 역사적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적극적인 반론을 할 수 없다면 ‘깔고 뭉개기’라도 해서 버티라.

 

장관이 할 일의 본령인지는 모르겠으나, 청와대나 총리실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일에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 봐야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실무자의 인사와 ‘푼돈’에 개입하는 정도일 것이다. 물론, 적극 나서면 어느 정도까지는 사람과 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학연이나 지연, 개인적 친소관계까지 얽히면 현실의 ‘권력’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정책결정에 미시적이고 구체적으로 그러나 ‘현실’로 개입하기를 바라는가. 별 것 아닌 기준과 숫자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체면과 염치도 없이 나서면 일부는 바뀐다. 그것이 어떤 현실이고 어떤 변화인가는 남지만.

그러나 잠깐, 스스로 경험이 있고 전문가라고 생각할수록 이런 일의 결과는 좋지 않다. 임상의사와 병원장의 경험, 게다가 “그동안 하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부터라도 마음먹고 나서면 내 능력으로 못할 것이 없다”는 이상한 자신감, 어느 쪽이든 국가 수준의 정책을 잘 안다고 생각하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 가장 나쁜 경우는 개인적 이해관계까지 개입하는 것으로, 그 때는 재앙이다.

 

요컨대 장관의 권한이라고,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결정에 따라야 할 당사자에게는 어떤 것보다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런 행태가 조직을 망가뜨리고 정책을 왜곡한다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부작용과 후유증은 심각하고 오래 간다.

산더미 같은 과제를 앞에 놓고 장관의 ‘태업’을 권고하는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다. ‘개혁’을 해야 하는 때에 그저 가만히 있으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역설적 기대와 희망을 담을 수밖에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평가를 듣는 장관이 되기를 바란다. 오랜 환자 치료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잘 이해할 것으로 믿는다. 의사가 함부로 개입하면 병이 낫기는커녕 의원성(醫原性, iatrogenesis) 질병으로 악화되기 십상이다. 세균을 잡으려고 쓴 항생제가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이 한둘인가. 장관의 일도 비슷하다고 할 것이, 무작정 나섰다가는 그 자신, 한국의 보건의료, 국민과 대중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부작위’를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환자 치료에서도 차라리 그냥 지켜보는 쪽이 더 나은 경우가 있지 않은가. 장관이 되어 정말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직접 나설 것이 아니라 대중과 시민의 역량에 기대를 거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결국 이 일로 진정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하는 것이 초월적 질문이다. ‘환자를 위한’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는 어떤 의료행위도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것으로 생각한다. 장관과 그 일의 정당성에는 환자 대신 ‘국민’이 들어간다. 무슨 일을 왜 하려고 하는가? 그 일로 누가 어떻게 되기를 기대하는가? 부디 현명하게 판단하고 처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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