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경단녀’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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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여성의 경력 단절이 줄어야하는 이유

여성의 교육 수준이 향상되고 고용률 역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가정 안에서만 머물러 있던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서 벗어나 노동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이러한 변화를 스웨덴의 사회학자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은 ‘여성 역할의 혁명’으로 표현한다. (<끝나지 않은 혁명>(주은선·김영미 옮김, 나눔의집 펴냄)

그러나 여성 전체의 평균적인 교육 수준과 고용 수준의 증가율만을 보고 ‘여성 역할의 혁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판단하는 것은 자칫 잘못된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혼 여성들은 항상 꽤 높은 노동 시장 참가율을 보이지만,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한 이후에는 급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평등한 성역할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여성이 일과 가정 모두를 지속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 경우는 고학력, 고소득 부부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저학력이며 저소득의 임금 일자리를 갖는 기혼 여성들은 일을 하더라도 스스로 자신을 가정의 부수적 소득원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가정 내 불평등한 성별 분업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즉, 여성 역할의 혁명은 일부 여성에게만 나타남으로써 여성 내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여성의 교육 수준이 증가하고 노동 시장 참여가 늘어났지만 여성 역할의 혁명은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결혼, 출산 및 육아, 자녀 교육 등으로 인해 여전히 경력 단절을 경험하는 여성의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다음 그래프는 전체 경력 단절 여성의 수와 그 중에서 대졸 이상의 비율을 함께 보여주는데, 가장 최근인 2014년을 보면 2011년에 비해 경력 단절 여성의 절대적인 수가 증가했고 그 중에서 대졸 이상의 비율도 함께 증가했다. 또 연령별로 보면 주로 결혼과 첫출산 및 양육이 시작되는 시기인 30~39세 사이 여성의 경력 단절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이후 연령에서는 고용률이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대졸 이상의 고학력 여성이 증가하고 있으나 그 여성들이 취업 시장에 안정적으로 있기는 어렵다는 것을 드러내며, 이와 함께 여전히 많은 한국 여성들이 결혼, 출산, 육아에 따른 모성 패널티를 고스란히 감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경력 단절 여성 현황. 통계청 ‘지역별 고용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 ⓒgsis.kwdi.re.kr

그렇다면 이러한 여성의 경력 단절이 건강에는 과연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미국 아크론 대학의 에이드리언 프렌치 교수 연구팀은 1979~1998년 사이 출산을 한 기혼 여성 2540명을 연구대상으로 하여, 출산 후 여성이 경험한 직업 경로가 그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생애 과정 관점으로 분석하였다. (☞관련 자료 : The Relationships between Mother’s Work Pathways and Physical and Mental Health)

출산 후 12년 동안 경험한 직업 경로에 따라 연구 대상자들을 ‘지속적인 전일제 근무'(30.8%), ‘출산 이후 시간제 근무'(44.2%), ‘적어도 세 번 이상의 실업 경험'(14.1%), ‘지속적인 전업 주부'(10.9%)의 네 집단으로 구분하였으며, 이후 40세가 되었을 때 그들의 신체, 정신 건강 상태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였다.

연구 결과, 지속적인 전일제 근무를 한 집단에 비해 시간제 근무와 실업을 경험한 집단의 신체 건강이 더 나쁜 것으로 나타났으며, 정신 건강에 측면에서도 실업을 경험한 집단이 전일제를 유지한 집단보다 건강 상태가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인종과 교육 수준, 결혼 상태 등의 조건을 동일하게 보정한 상태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전체 연구 대상자의 절반 이상(58.3%)이 출산 후 아이가 12살이 될 때까지 시간제 근무를 하거나 실업을 경험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연구 결과가 던지는 사회적 함의는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

출산 이후 많은 여성들은 불안정한 노동에 내몰리고 있으며, 불안정한 노동은 저임금, 낮은 승진 기회, 직업 불안정 등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실직 후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경제적 어려움도 건강상태를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인 요인들의 누적은 중년 이후의 낮은 건강 수준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생각해볼 것은 여성이 아이를 출산하더라도 전일제 일자리에 지속적으로 종사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하나는 바로 일자리의 안정성이다. 엄마의 일자리가 정규직이며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과 같은 일-가정 양립 지원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직장이라면, 경력 단절보다는 일자리를 지속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봐줄 사람 혹은 기관이 있는지의 여부이다. 출산 후에도 근무를 지속하는 여성의 경우 조부모의 도움을 받거나 돌보미를 고용하는 등 엄마를 대신할 주 양육자를 찾는다. 그러나 이도저도 불가능할 경우 지금까지의 경력을 포기하며 육아에 전담할 수밖에 없다.

일하는 여성이 많아졌고 일하는 엄마도 늘어났지만 이들의 상당수가 경력 단절을 경험한다. 경력 단절 이후에 다시 일을 찾더라도 이전보다 더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를 갖게 되기 쉬우며 그 마저도 불안정한 일자리이다. 경력 단절 없이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지속적으로 일하는 엄마가 불안정한 일자리를 갖는 엄마보다 더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일하는 엄마의 건강을 향상,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일자리 안정이 필요하다.

여성이 결혼 및 출산과 같은 생애 이행으로 인한 불리함을 겪지 않고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들이 하루 빨리 갖추어져야 한다.

 

송리라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영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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