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조선대 ‘데이트 폭력’,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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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폭력의 상흔은 지속된다

최근에 알려진 조선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연인 간의 폭력 사건이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무려 4시간 동안 남자 친구의 일방적이고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하면서 여성은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집행 유예가 되면 학교에서 제적을 당한다’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법적인 처벌은 벌금형에 그쳤고, 학교에서도 단순한 개인적인 갈등으로 돌리며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피해 여성은 폭행을 통한 신체적인 상해말고도 폭행의 긴 시간 동안 느꼈던 공포감과 두려움을 계속해서 상기해야했으며, 더불어 가해자를 오히려 감싸려는 상황들을 보면서 억울함과 분노를 느꼈을 것임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 사건의 충격은 피해 여성의 평생 동안 지속될 것임을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친밀한 파트너의 폭력(Intimate Partner Violence, IPV)은 연인, 부부, 가족 등 가장 가까운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성적, 정서적 폭력 및 행동 통제 등을 지칭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인 만큼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폭력들에 비해 가시화되기 어려우며 따라서 폭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신체적, 정신적 상해에 대한 적절한 치료도,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사회적 지지도 받기 어렵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여성의 약 3분의 1이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관련 자료 : Global health, The global prevalence of intimate partner violence against women) 그리고 이 중 IPV는 전 세계 여성에게서 가장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폭력 형태에 해당한다. 이러한 친밀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은 그 대상이 대다수 여성이라는 점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행되고 있는 IPV의 저변에는 사실상 친밀한 관계라는 것이 동등한 관계가 아닌 권력 관계이며 그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대개는 남성) 그보다 아래에 있다고 여기는 상대방(대개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IPV는 신체적 부상은 물론이고, 만성 질환, 약물 남용, 생식 건강 문제(reproductive health problems), 인체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와 에이즈 감염 및 저체중 출산 등 넓은 범주의 건강문제와 연관된다. 정신 건강 문제 역시 심각한데, IPV로 인한 정신 질환 및 증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화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남은 삶의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대표적인 질환이며, 우울증, 불안, 섭식 장애 등도 포함된다. (☞관련 자료 : Intimate Partner Violence and Mental Health)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는 유사한 사건을 경험했을 때 그 효과가 더욱 증폭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었다.

미국 예일 대학교의 베로니크 재퀴어와 타미 설리반 등은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반복적 폭력이 피해자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국제 학술지 <여성 연구>에 발표하였다. (☞관련 자료 : Fear of past abusive partner(s) impacts current post traumatic stress among women experiencing partner violence)

그들은 미국 뉴잉글랜드 주의 한 도시에 거주하는 여성들 중 적어도 지난 6개월 동안 한번이라도 친밀한 파트너에 의해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212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행하였으며, 이들에게 두려움, 외상 후 스트레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아동기 학대와 방임의 경험을 질문했다.

놀랍게도 연구 대상자 중 86%의 여성이 과거에도 IPV를 경험했다고 밝혔으며 적게는 한 번에서 많게는 열다섯 번이나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212명의 여성 중 184명은 성인이 되었을 때, 28명은 성인이 되기 이전에 처음으로 폭력을 경험했다고 보고하였다. 그리고 폭력을 가한 파트너에 대한 두려움이 높을수록, 아동기 학대 및 방임의 경험이 모두 IPV와 관련된 외상 후 스트레스를 유의하게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좀 더 주목할 만한 부분은 과거의 폭력 경험이 최근 겪은 IPV로 인한 두려움과 외상 후 스트레스를 현격하게 높였다는 점이다. 이는 폭력 경험이 한번일 때에도 정신 건강에 지속적인 악영향을 미치지만 그러한 경험이 중복될 경우 그 효과가 훨씬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연구에서 보듯이 IPV가 대다수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은 여성의 정신 건강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IPV 발생 자체도 문제이지만, 발생 이후 사건 규명 및 가해자에 대한 처벌, 피해자에 대한 회복지원 등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아 이차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역시 고려해야 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사건의 존재를 피해자 자신이 적극적으로 밝혀야한다는 점은 피해자로 하여금 고통스러운 사건을 또 다시 상기할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폭력이 사적이고 사소한 문제로 받아들여질 경우 사건 자체에서 발생한 정신적 충격에 억울함, 분노 등이 더해진다. 또는 피해자가 사건 발생의 이유를 오히려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사건을 회피하려하지만 그 충격은 여전히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폭력이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몸에 각인되어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폭력의 경험은 피해자에게 트라우마가 되며 이는 또 다시 폭력이나 이와 유사한 상황에 마주했을 때 증폭된 효과로 발현되는 것이다. 인권의 측면에서도, 정신 건강의 측면에서도, 폭력은 절대 용인될 수 없다. 하물며 정서적 지지가 오고가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란 두말할 나위 없다.

송리라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영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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