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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동네는 장내 세균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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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건강 불평등과 장내 세균

살고 있는 동네에 따라 건강 수준에 차이가 난다는 연구는 이미 새롭지 않다. 가난한 동네의 주민들일수록 천식, 당뇨, 심근경색, 뇌졸중 발생은 물론 사망률도 높은 경향이 있다.

대개 가난한 동네라는 것이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이 안 좋다보니 동네 통계 결과도 안 좋은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다. ‘동네’ 그 자체도 사람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본인이 꼭 가난하지 않더라도 가난한 동네에 사는 것만으로 건강에 부정적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왜 그럴까? 운동을 할 수 있는 공원,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는 안전한 보도, 신선 식품을 파는 소매점 등의 분포, 대기오염과 범죄 수준 등 건강 ‘결정 요인’이 동네의 사회 경제적 지위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심리학과 그레고리 밀러 교수 팀이 발표한 논문은 이러한 설명에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동네의 사회 경제적 지위에 따라 주민들의 장내 미생물 분포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관련 자료 : Lower Neighborhood Socioeconomic Status Associated with Reduced Diversity of the Colonic Microbiota in Healthy Adults)

원래 우리 몸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함께 살고 있다. 특히 장내 세균은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의 분해와 배설을 돕는 중요한 동반자이다. 최근 많은 연구들이 저강도의 염증 반응이 여러 만성 질환의 공통 위험 요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러한 만성 염증은 장내 세균 무리 구성의 변화로도 나타난다.

예컨대 당뇨병이나 심장병, 일부 암 등에 이환된 환자들을 살펴보면 건강한 대조군에 비해 장내 세균 무리 다양성의 상실이 관찰된다. 밀러 교수 팀은 이러한 선행 연구들에 착안하여, 지역 간에 관찰되는 건강 불평등이 장내 세균 분포와 관련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연구 팀은 미국 시카고에 살고 있는 건강한 성인 44명의 장내 세균 분포와 이들이 살고 있는 동네의 사회 경제적 지위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

연구 참여자들은 모두 위장관 질환이 없고 신체 검사와 혈액 검사 결과가 정상이며 과도한 음주 습관이 없는 이들이었다. 또 장내 세균 분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항생제나 프로바이오틱스, 기타 의약품을 최근 3개월 이내에 복용한 적이 없었다.

흔히 대장 내시경을 하기 위해서는 하루 전날 관장제 복용으로 장을 깨끗이 비우지만, 이 연구에서는 장내 미생물의 자연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이런 작업을 하지 않았다 (검사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대단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연 상태에서 내시경을 시행하여 구불결장의 점막 표본과 대장 내부의 대변 표본을 채취한 후, DNA 추출과 분석을 통해 어떤 세균이 살고 있는지 확인하여 세균 무리의 다양성 지표를 산출했다.

또 인구 통계 자료의 가구 중앙 소득, 학력 수준, 고용률, 주택 가격 정보를 활용하여 참가자들이 살고 있는 동네의 사회 경제적 지위 점수를 만들었다. 점수가 높은 동네일수록 보다 부유하고 학력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두 가지 자료를 연계하여 분석한 결과, 동네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대장 미생물 다양성 변이의 11~22%를 설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네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구불결장 점막과 대변에 분포하는 미생물 무리의 다양성이 높아졌다. 이는 개개인의 성별, 연령, 인종, 체질량 지수, 흡연과 음주 상태를 보정하고 나서도 지속된 결과였다.

또한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은 동네 주민일수록 구불결장 점막 세균 중 박테로이디스 (Bacteroides)가 더 번성하고 프레보텔라 (Prevotella)는 덜 번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테로이디스는 동물성 지방 섭취가 상대적으로 풍부한 식이를 반영하고, 프레보텔라는 탄수화물 중심의 식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연구 팀은 이 분석에서 장내 세균 분포가 이렇게 나타난 중간 경로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흔히 가공 식품, 신체활동 부족, 복부 비만, 사회 심리적 스트레스, 과도한 항생제 사용, 오염 물질이나 독성 요인 노출 같은 생활습관 요인, 생태학적 요인은 장내 세균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인들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들 모두 가난한 동네일수록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 하다하다 이제 우리 대장 점막, 대변 속 세균 분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각자 식습관을 개선하고, 운동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두 함께 건강해지려면 무엇보다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답이다.

참고 자료

☞관련 기사 : 추석에, 지역 불평등을 되돌아보다

☞관련 자료 : 건강 불평등 공부 길잡이(시민/활동가용)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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