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브렉시트, 더 불평등한 국민국가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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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하면서, ‘브렉시트’라는 낯선 말이 모든 뉴스의 중심이 되었다. 주가가 폭락하고 여러 군데서 온갖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방송사는 긴급 좌담에, 인터넷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도 난리가 났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지는 해라고는 하지만 영국은 명목 국내총생산 기준 세계 5-6위를 차지하는 경제대국이다. 유럽 국가 대부분을 묶은 EU가 차지하는 국제 정치, 경제의 비중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꼭 지구화, 세계화를 들먹이지 않고도 ‘극동’의 작은 나라까지 큰 영향을 받는 형편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 나머지 대부분은 혼란스럽다. 온갖 해석과 전망이 난무하지만, 명료한 것은 많지 않다. 브렉시트로 결론이 난 이유에는 이런저런 모든 이유가 다 들어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도 ‘점’을 치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

 

불확실성의 한복판에서도 관심은 한쪽으로 크게 쏠려 있으니, 그것은 경제다. 브렉시트에 이르게 된 경과는 물론이고, 앞으로 벌어질 사태도 대부분이 경제, 금융, 수출 이야기다. 그래 봐야 결론은 영국과 다른 나라, 그리고 세계 경제가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것이 전부지만, ‘경제주의적’ 해석은 그만큼 힘이 세다.

경제에 추가되는 것이 약간의 국제정치가 아닌가 싶다. 그동안 미국과 영국이 국제정치 판의 ‘동반자’였으니 이도 당연한 일. 미국은 영국이 빠진 EU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위상은 어떻게 될까,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국제정치적 위상은 어떻게 변할까, 논란이 분분하다.

미국이나 러시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핫이슈’는 EU 자체의 존립이다. 탈퇴 도미노 현상과 EU의 붕괴(또는 무력화)가 현실이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바로 등장했다. 이 또한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프랑스, 체코, 스웨덴 같은 나라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경제와 정치, 그리고 약간의 부록 같은 이야기들. 언뜻 듣기에는 그럴싸한 가능성과 시나리오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지지만, 그 누가 알겠는가. 브렉시트 이후는 여러 주체(국가와 EU)가 서로 맞물리고 작용하면서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니, 개방 시스템의 미래는 크게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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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EU, 나아가 이를 비롯한 초-국민국가적 연합의 세계사적 의미가 단기적 정치, 경제변화보다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의회, 사법재판소, 중앙은행이 있는 EU는 단순 국가연합과 다르다는 점을 기억하자. 핵심은 EU가 국민국가의 평면적 연합을 넘어, 초-국민국가적이라는 점, 그리고 그 유명한(또는 악명 높은) ‘세계 정부’의 싹일 수 있다는 점.

들여다보면 브렉시트에 이르게 된 사정 안에 이미 국민국가를 넘는 초국가적 연합의 형성과 해체를 둘러싼 의미 투쟁이 내장되어 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한 가지 핵심 쟁점, 이민 문제가 그것이다.

너무 많은 이민자 때문에 일자리와 임금, 학교, 국가보건서비스(NHS), 주거가 위협받는다는 주장은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다. EU가 내세우는 이동의 자유 때문에 영국이 이민을 통제하기 어렵고, 그 때문에 막상 국민국가의 구성원 전체나 그중 일부가 손해를 본다는 주장이다. 한참 논란이 된 난민 문제는 평상시 이민보다 더 난감하다.

 

여기가 최전선이다. 국민국가가 어쩔 수 없이 가장 강력한 삶의 단위이자 경계라면, 초국가적 연합이 지향하는 (따라서 초-국민국가적인) 가치 지향은 현실에서 힘을 갖기 어렵다. 더구나 모순과 충돌의 결과가 국민국가 내에서 일부 계층(예를 들어 빈곤층과 저학력자)의 희생을 강요할 때, 초국가적 연합의 토대는 허약할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의 한 가지 이유는 이 모순이 폭발한 것이다.

브렉시트는 초국가적 연합으로부터 국민국가로 되돌아가는(탈출하는) 힘을 드러내 보였다. 이민과 국민의 일자리, 기여금과 보조금, 국제 불평등과 국내 불평등의 모순을 넘어서는 방법 중 국민국가 강화를 택한 것이다.

 

문제는 국민국가의 정체성과 그것의 자기결정권이 모든 사회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국민국가의 내부조차 모든 구성원이 고루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틀인가 하는 점이다. 경험적으로 또 규범적으로, 국민국가로 탈주하는 것이 답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국가가 그 자체로 어떤 보장이 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초국가 기구가 가질 수 있는 ‘상대적 진보성’에 주목하고 싶다. 물론, 초국가 기구도 새로운 이익 추구의 거점이 되기 쉽고 내부 권력관계도 또 다른 문제지만, 진보의 잠재력조차 부인하기는 어렵다.

 

첫 번째 예는 인권으로, EU 이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유엔이 인권을 주류화하고 새로운 국제 규범을 제시한 사례는 초국가적 연합이 진보의 ‘상방(上方)’ 압력을 받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유엔이 추구하는 인권이 선언적인 수준에 머물 수 있는 데 비해, EU가 추구하는 인권은 더 실질적이고 현실적이다. “인권은 EU법질서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함으로써 과거 유럽정치공동체에 관한 조약이 구현하고자 했던 모습으로 회귀하고 있으며, 인권보호는 조약 규정과 함께 EU법상 일차적 연원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이주윤. EU법상 인권보호체계의 연원과 발전. <법학논총>, 29집 3호, 2012년)

 

“유럽 연합의 핵심 가치는 인권, 민주주의, 법치주의이다….(중략)…EU의 법적, 제도적 근간이 되는 리스본 협약에는 민주주의, 법치주의, 인권과 근본적 자유의 불가분의 원칙 및 보편성, 인간 존엄성의 존중, 평등과 연대의 원칙, UN 헌장과 국제법 원칙의 존중과 같은 원칙을 EU가 따른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앞서 거론된 모든 권리들을 하나의 문서로 통합하는 EU의 “기본 권리헌장”을 통하여 강화되었다.” (주한 EU 대표부 홈 페이지. http://bit.ly/28XCgcR)

 

또 다른 영역이 공중보건으로, 감염병이나 환경보건을 생각하면 쉽다. 보건에는 과학과 가치의 역할이 크고, 따라서 초국적 기구의 역할은 흔히 협력과 지원의 모양을 보이는 것과 동시에 개입하고 때로 강제할 수 있다. 여러 국민국가의 평균이나 국내 사정, 이해관계보다는 국제 표준과 규범이 더 자주 동원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EU와 영국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올해 3월, 런던보건대학원의 마틴 맥키와 마이클 골스워시는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영국의 공중보건은 크게 후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바로가기). 영국이 따로 시행할 보건정책이 EU가 환경을 규제하고 흡연 정책을 추진하며 공공보건정책을 지원하는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다.

대표적 예가 공기의 질 문제다. EU는 영국 정부에 공기의 질에 대한 법을 만들 것을 요구해 왔다. 2015년 현재 런던의 모든 자치구 가운데에 EU가 정한 이산화질소 기준을 충족하는 곳이 2개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EU의 역할은 사라지고, 영국은 ‘주권’을 회복했다. 공중보건이 후퇴하는 쪽을 택할 것인가?

 

인권과 공중보건을 말했지만, 초점은 여전히 국민국가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국민국가가 구성원의 좋은 삶을 보장하고, 이를 위해 초국가 연합이 국민국가를 압박하거나 규율하는 것. EU에 속한 각 나라의 인권과 공중보건이 더 나아지는 것이 이에 속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인권과 공중보건의 영역에서 브렉시트는 국민국가 영국의 후퇴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궁극적 관심은 EU와 영국에 한정되지 않는다. 분위기와 추세, 계기가 문제라면, 영국과 EU의 후퇴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국민국가를 넘어서 모든 이에 해당하는 공통과 보편의 가치가 어떻게 될 것인가? 브렉시트 또는 이것이 촉발할 EU의 후퇴는 초국가 연합이 지향할 수밖에 없는 가치의 후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 후퇴가 자기중심적이지만 경쟁적이고, 고립주의적이지만 동시에 제국주의적이라면?

우리는 특히 불평등에 주목한다. 이번에도 보았듯이 국내 불평등은 국민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동시에 초국가 연합을 불가능하게 하는 이중적 방해물로 작동한다. 국가 사이의 불평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극심한 불평등을 그냥 둔 채로 국민국가는 생존할 수 없으며, 이런 국민국가들의 연합도 실현될 수 없다.

영국에서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일부 집단은 분열과 증오와 싸우자는 구호를 내걸었다. 그저 한 국민국가 내에서 분열과 증오를 극복하자는 뜻이라면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로서는 국민국가를 넘는, 때로 세계정부에 이르는 협력과 연대, 통합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국제적이면서 동시에 국내적인.

 

저 먼 곳에서 일어난 브렉시트의 역할. 비현실적이지만, 새로운 질서에 대한 꿈을 일깨우는 가치가 있다. 어떤 국가 어떤 사회보다 ‘국민국가’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브렉시트는 역사적, 그리고 반면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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