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대책’으로 저출산을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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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8월 25일 “출산율 회복을 위한 보완대책: ‘출생아 2만+α’ 대책”을 발표했다(바로가기). 올 초부터 시작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보완한 것이라고 한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출생아 수가 일 년 전 같은 기간보다 만 명이나 줄어들었으니, 마음이 급했던 것일까.

(예상한 대로) 내용은 평범하다. 난임시술비 지원을 확대한다는 것을 빼면 두드러진 것이 없다. 일·가정양립대책을 보완한다는 내용도 들어있으나, 남성육아휴직수당을 인상하는 것으로 뾰족한 방법이 될지 잘 모르겠다. 정부는 새로운 대책으로 최소 2만 명 이상 추가 출생을 기대한다고 했지만, 그리 자신감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정부, 특히 보건복지부가 초조한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오죽하면 장관이 ‘호소문’까지 발표했을까. 심금을 울리려는 정책은 유토피아적인 것이 아니면 ‘주술적’인 법이라, 안타깝다. 호소문에서는 “저출산 극복에 사회 모든 구성원이 힘과 뜻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하고, “특히 기업이 나서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고 하면서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또 답답하다. 정부가 작년 기본계획을 발표할 때 사태는 이미 준비되었다. 정책의 결과, 그리고 지금 벌어지는 일은 작년 10월의 <서리풀 논평>에서 예상한 그대로다(바로가기).

 

“목표가 명확하지 않고 가치가 전도되어 있을 때는 어떤 명약이라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어떤 저출산 대책도 뚜렷한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을. 3차 기본계획이 아니라 5차, 6차까지 가도 이대로는 어렵다. 그러니 더는 예산을 낭비하지 말 것.”

 

한 가지가 늘어나긴 했으니, 그 어떤 ‘정신’이 추가되었다.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와 심정을 나타내기 위해 이렇게 말했을지는 모르나, 통치의 근대성조차 1980년대 이전으로 후퇴한 것인가 싶다. 다음과 같은 ‘국가’의 발언은 시기를 훌쩍 건너뛸 정도로 회고적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호소문을 통해, 절박한 인식과 뼈를 깎는 노력으로 지난해 수립한 3차 저출산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저출산 대책에 대한 피로감이나, 성급한 실패론에서 벗어나, 사회 모든 구성원이 힘과 뜻을 모아주시기를 호소하면서, 특히 기업이 나서지 않으면, 우리사회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절박’ ‘뼈를 깎는’ ‘피로감’ ‘성급한’ ‘호소’ ‘미래’ 등으로 보건대, 다음 차례는 ‘국민운동’을 벌이지 않을까? 이미 작년 12월 「저출산 극복 실천을 위한 시민단체 선언식」이 있었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혹시 또 다른 무슨 재단과 연합, 협의회, 운동본부가 준비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같아서는 새마을운동과 결합해도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결론을 말하면, 이래도 아니다. 작년 10월의 <서리풀 논평>에서 우리가 주장한 올바른 대책의 요건은 다음 두 가지였다.

 

첫째, “저출산이 왜 문제인가”에 대한 답을 분명히 할 것

둘째, 출산을 수단(도구)이 아닌 본질적 가치로서 이해하고 실행할 것.

 

그리 긴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니, 우리의 문제의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시작한 이후 출산율이 더 떨어지지 않았는가. 이번 ‘대책’에 대한 결론은 더욱 강화되었다.

다시 말한다. 저출산을 보는 패러다임을 근본에서 바꾸어야 하고,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출산과 인구(그리고 사람)를 도구로 여기는 한, 어떤 대책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그 틀을 그대로 유지하는 한, 백약이 무효라고 장담한다.

 

정부가 보완 대책을 내놓았으니, 우리도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 국가와 정부, 보건복지부가 이런 대책(들)이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정말 모를까? 난임시술비와 육아휴직수당이 정말 효과가 있다고 확신할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다. 국가와 정부와 공무원도 한계와 무용성을 아주 모르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이른바 ‘헬조선’이라 부르는, 삶의 종합적 국면과 그 파탄이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깨달았을 것이다. 얼마의 수당과 의료혜택, 어린이집으로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삶의 전망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모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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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도 그러는 첫째 이유는 관료주의적 정치와 행정 때문이다. 아무리 미래의 위험과 공동체의 전망을 말해도, 그들에게 저출산은 여전히 먼 훗날의 이야기다(담화문과 발표문, 공식 발언을 다 믿으면 안 된다).

인구에서 10년, 20년은 비교적 짧은 기간이지만, 정치와 행정에서 그 기간은 짐작하기도 어려운 먼 미래다. 적어도 지금 정치인과 관료에게 저출산은(고령화도 마찬가지다) 비현실적 주제임이 틀림없다. 올해의 실업률, 내년의 경제성장률, 다음 대선과 다음 총선, 또는 5년 뒤의 승진과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한다.

물론, 저출산도 한 가지 이해는 걸려 있다. 올해 대책의 성과, 그렇다면 내년 상반기의 출산아 수. 단 한 가지, 지표와 숫자가 중요하다. 정당성과 정치적 자산이 걸려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이 정권과 우리 부처, 나의 단기 이익이다.

 

대책과 대응의 무용성을 안다 하더라도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없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관료주의와 연결되면서도 좀 더 근본적인 문제, 그것은 저출산과 인구감소를 피해야 하는 진정한 동기를 묻는 차원이다. 국가는 정말 저출산을 해결하고 싶어 하는가? 왜?

장기적으로 인구를 유지하고 확대해야 하는 ‘국가이성’은 의심할 수 없다. 내재한 본능이자 존재 의의라 해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국민국가인 한, 어떤 통치자, 어떤 정권도 이를 거스를 수 없으니, 시늉으로라도 인구의 질과 양을 보존하고 향상하려 애써야 한다. ‘부국강병’은 근대 국가의 이념이고, 인구는 이를 뒷받침하는 기초가 아닌가.

국가이성과 통치의 틈과 모순은 바로 ‘시간’의 문제, 장기 이익과 현재 이익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인구를 말한다면, 인구 감소는 당장이 아니라 나중의 일이라는 것, 나아가 지금은 오히려 과잉을 의심해야 하는 것이 포인트다.

 

인구를 순전히 통치 대상으로 보자. 올해와 내년, 5년 후의 인구는 모자란 것이 아니라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남는다. 생산과 기술, 이에 따른 노동의 성격이 달라지면 인구 과잉은 그 후에도 계속될 수 있다. 심각한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더 근본적으로는 저출산 자체가 ‘상대적 인구 과잉’의 징후다.

과잉을 통치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현재의 국가이성에 부합하는 것이면,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에서 유지되는 것이 (사회를 ‘보호’하는 데에) 더 이성적일지도 모른다. 가장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통치는 저출산의 패러다임 전환(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의 더 나은 삶의 조건)과 직접 충돌한다.

 

그것이 이성인 한, 저출산 대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허하다. 의지와 실력, 또는 정책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그 체계의 필연적 합리성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가장 적합한 정책을 찾아냈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는 것이면, 정책 대안을 말하거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것은 헛다리 짚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우선 한 가지 가능성은 ‘틈’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이성의 미래와 현재가 충돌하는 것 자체가 바로 기회다. 삶의 나쁜 조건을 바꾸는 모든 노력(국가이성의 미래와 관련된다)은 이 틈을 벌리고 넓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틈을 벌리면 전체가 동요하는 법, 아무리 작아도 그것은 보편성을 겨냥할 수밖에 없다.

 

좀 더 근본에서는, 저출산을 해석하고 대응하며 실천하는 주체를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한 가지, 국가와 정부 관점에서 ‘탈-국가’ ‘탈-정부’로. 아직 그것이 어떤 다른 길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다만, 우리는 그 길에 저출산뿐 아니라 삶 전체가 같이 걸려 있다는 것은 잘 안다. 새로운 삶의 방식과 그 조건을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다. 사실, ‘출산(出産)’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시작이고 전체이니, 이런 전환은 늘 전면적이고 근본적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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