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니 절반, 아니 70%쯤은 이루었다고 믿고 싶다. 헌법재판관의 성향이 어떠니 위헌 사유가 어떠니 하지만, 헌법재판은 법률이 아니라 ‘정치’가 본질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민심과 열망이 이 정치의 핵심이면, 그들이 ‘시민권력’을 이길 수는 없다.
이런 믿음이 곧 헌법재판소를 신뢰한다는 뜻은 아니다. 과거 헌법재판소가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는 논쟁적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때처럼 부당하게 행사된 의회권력을 바로잡은 적도 있지만, 저 유명한 ‘관습헌법’ 판결처럼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또한 헌법재판소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대통령, 대법원, 국회가 추천하니 겉으로는 삼권분립의 원리에 충실한 듯 보이지만, 실제 그런가는 의심스럽다. 한국에서 권력의 분립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있을까? 대통령 비서실장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미리 안다든지, 또는 사법부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의심들은 전혀 놀랍지 않다. 독립적 판단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헌법을 바탕으로 행정, 입법, 사법을 견제하는가도 문제지만, 이들이 주권자(국민)를 대표하지 않는 것이 더 큰 한계다. 헌법재판이 ‘숙고’를 통하여 판단한다고 하겠지만, 이 판단은 단지 지식과 경험에 기초한 기술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숙고는 사회 구성원의 여러 다양한 가치와 생각을 반영하는 민주적 과정의 일부이며, 헌법재판과 재판관은 마땅히 이를 ‘대표’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숙고를 위임했을 뿐이다.
여러 국가에서 법관과 검사를 선거로 뽑는 것도 민주주의의 대표성 원리 때문일 것이다. 이제 모든 국민이 헌법재판 전문가가 될 조건이니, 사법과 헌법재판에 민주주의의 원리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논의해야 한다. 다음 헌법 개정에서 중요한 논점이 되어야 마땅하다.
짧게는 2개월, 길게는 6개월을 끌 탄핵 심판은 그 자체로 시민권력이 평가하고 개입해야 할 대상이다. “이제 헌법재판소로 넘어갔으니 차분히 두고 보자”는 소리는 헌법재판을 단지 기술적, 전문가적 사무로 보는, 그들만의 주장일 뿐이다.
개헌이든 뭐든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여기까지, 현실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누구나 동의할 결론을 끌어내리라 믿는다. 이미 충분한 정치, 사회적 근거가 있으니, ‘실무’를 잘하면 심판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탄핵의 이유에 주목한다. 국회에서 가결된 탄핵 소추의 이유에는 비선 실세 국정 농단, 뇌물죄, 언론 탄압, 세월호 참사 등이 포함되었다. 이 중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탄핵에는 충분하다는 것이 중론, 오히려 나머지 이유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남는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각각의 이유에 대해 헌법재판의 판단을 밝혀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비선 실세 국정 농단이나 뇌물죄로 충분하지만, 세월호 참사 당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도 중요하다. 특히 앞으로 경계로 삼기 위해서는, 한두 가지 사유로 충분하고 “나머지는 더 살펴볼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
같은 맥락에서 국회의 탄핵 소추 사유에서는 명시되지 않은 것을 다시 꺼낸다. 이른바 ‘의료 게이트’. 뇌물이나 비선 실세, 세월호 참사보다 덜 중요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다른 많은 사유와 겹쳐 있고 구조를 공유한다. 국정을 어떻게 운영했는지를 드러내 알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노릇을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첫째는 불법 의료. 대통령은 불법인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고, 특정 의료기관에서 가명으로 무상진료를 받았다. 대통령직 수행에 필수적인 공식 의료 시스템을 무너뜨린 것도 불법과 다름없다. 그 대가로 특혜를 제공하거나 입법, 정책 지원을 하는 행위를 했으니 불법성의 정도가 더 심하다.
뇌물이나 비밀 유출에 비하면 가벼운 죄라 할지 모르나, 하급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죄를 지은 것에 비교할 일이 아니다. 법치를 가장 앞서 실천, 실현해야 할 국정 책임자가 앞장서 법을 무시했다는 것 자체가 중대한 탄핵 사유다. 이를 그냥 두면 누가 어떻게 법치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보건의료 정책의 사유화. 참여연대가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를 고발하면서 낸 보도자료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후 차병원그룹에 192억 원 가량의 국고를 지원하고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 승인 등 차병원그룹의 숙원사업 관련 규제를 폐지하고 또한 차바이오가 임상시험 중인 알츠하이머, 뇌경색 줄기세포 치료제와 같은 상병에 임상시험 완화 조치를 취하는데 역할을 함.” (☞바로 가기)
겉으로는 투자 활성화니 성장 동력이니 했지만, 사사로운 인연과 보답으로 국가 정책을 주무른 셈이다. 헌법재판이 이를 심판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 보건의료 정책만 그럴까, 모든 논쟁적 정책이 배경을 의심받고 신뢰를 잃게 될 것이 뻔하다.
법의 딜레마를 모르지 않지만, 실정법의 논리만으로 불법의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솔직히 말해,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는 그보다 더한 결정들도 해 오지 않았던가. 결정들이 어디로 치우쳐 있었는지, 지금은 반성이 필요한 때다.
셋째, 한국 보건의료의 왜곡. 각종 미용 시술에다 이상한 이름의 주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료인의 혀를 차게 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여느 평범한 사람이 그랬더라도 정말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될 정도로 충격적이다.
물론 실정법 위반은 아니지만, 그는 국가지도자가 아니었던가. 이런 대통령을 보고 정부와 관료, 그리고 시장이 어떻게 반응했을까? 자격을 갖춘 대통령이라면,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몰고 올 국가적, 사회적 파급을 이해하고 예상해야 한다. 미용 시술에 안티에이징, 정체 불명의 주사에 의존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행동, 의료인, 의료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고민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그러지 못했고 그러지 않았다. 이해 부족에, 자격 미달에, 의지도 없었으니, 결과적으로 국정을 어지럽게 했다(국정은 공무원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국정 이해, 국민의 신뢰에 대한 배신이 의료에 그치지 않는다고 본다. 모든 분야 모든 사안이 필시 비슷했을 것, 그가 했다는 국정 수행을 짐작할 수 있다.
넷째는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소홀히 한 것. 세월호 참사가 묻는 것과 같다. 그는 이 시기 한국의 보건의료가 가진 많은 시대적 과제, 예를 들어 공공성 강화, 불평등 해소, 소수자의 건강 보호 등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노인과 돌봄, 연금, 장애인, 저출산은 그저 관료적 메커니즘에 따라 굴러왔을 뿐, 그 어느 것도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라 할 만한 것을 발견할 수 없다. 지난 4년 허송세월을 해왔고, 결과는 사회적 삶의 명백한 후퇴다. 이 정도로도 탄핵 사유가 부족한가? 그저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괜찮다 할 것인가?
박근혜 정권의 ‘의료 게이트’는 실정법으로는 중대한 위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탄핵 사유에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이 법률 논리일 수 있지만, 우리는 이것만으로 탄핵 사유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믿는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그저 법률적 판단을 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우리의 이해를 다시 강조한다. 법률가들이 문구 그대로 헌법 위배 여부를 정하는 제도적 장치도 아니다. 헌법재판과 탄핵 심판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한 과정으로, 시민권력을 배신할 수 없다.
시민권력이 심판하는 ‘의료 게이트’는 탄핵 사유로 모자람이 없다. 관련 헌법 조항은 이렇다.
제7조 1항.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제34조 2항.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제36조 3항.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제66조 2항.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