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왜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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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누구에게는 기나긴 연휴, 누군가에게는 평소와 다름없는 출퇴근의 일상이 반복된 징검다리 휴일들이 지나갔다. 사상최대의 인파가 해외여행을 떠나고 고속도로는 여행객들로 마비가 되었지만, 또 그만큼의 사람들은 스스로 혹은 억지로 떠밀려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법으로 정해진 유급 휴가가 있어도 원하는 때 이를 자유롭게 쓰기란 쉽지 않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러한 슬픈 사연이 한국사회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레바니즈 아메리칸 대학교의 알리 파키 교수는 캐나다 노동자들의 유급 휴가 사용과 관련된 요인들을 분석하여 국제 학술지 <경제연구편람 Bulletin of Economic Research> 최근호에 발표했다 (관련 자료: What determines vacation leave? The role of gender).

휴가 사용이 노동자의 삶과 건강 수준을 향상시키고, 결국 생산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은 이미 여러 차례 발표된 바 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캐나다 직장 노동자 조사(Canadian Workplace Employee Survey)’ 자료를 활용했는데, 여기에는 고용주와 피고용인 정보가 함께 들어 있어, 개인과 조직 요인을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었다.

분석 결과, 캐나다 주류 출생자에 비해 사회적 소수자일수록 부여된 유급 휴가 일수가 적고 사용하지 않은 휴가 일수가 많았다. 학력의 경우, 학력이 높을수록 유급 휴가 사용일수가 많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성별에 관계없이 정규직에 비해 유급 휴가일수가 적으면서 그나마도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유연 근무라고 알려진 재택근무자들의 경우, 남녀 모두 유급 휴가일수 자체는 통상적 근무형태의 노동자들보다 더 많았지만, 사용하지 않은 휴가일수 역시 많았다. 노동조합에 가입된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유급 휴가일수는 많았지만, 사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한편 직종 등에 따른 대체인력 투입의 어려움은 유급휴가 사용 여부와 관련이 없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성별 차이였다. 직업과 사업장 특성을 모두 고려한 후에도 남성과 여성은 유급 휴가 사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서 차이를 보였다. 남성은 기혼자인 경우, 나이가 많을수록, 자녀가 있는 경우에 유급 휴가를 더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성의 경우, 막내 자녀의 연령이 유급 휴가 사용의 주요 요인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여성이 가정사로 인한 휴가를 더 많이 쓸 것이라는 통념과는 다른 결과이다.

저자는 이러한 성별 차이가 가족에 대한 책임과 경력 관리의 필요성을 동시에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따라서 유급휴가 제도나 부가급여 등에서 성별 차이를 개선하는 조치 뿐 아니라, 휴가 사용이 노동자에게 부당한 대우 혹은 경력 관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정책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있는 휴가도 다 쓰지 않고 업무에 매진하는 것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야 경력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문화는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고 성차별이 보다 강력하면서 위계적 조직문화를 가진 한국 일터의 상황은 이 논문에 소개된 사례보다 훨씬 심각하고 복잡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연휴의 마지막,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대통령 선거일에 “쉼표 있는 삶”(관련자료: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56807) 공약을 내세운 문재인 후보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대체 공휴일을 확대하고, 국제노동기구 협약에 따라 연차 휴가를 다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며, 근속 1년 미만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도 월 1일의 유급 휴가를 부여하겠다고 했다. 사실 이것들은 이미 현행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들이다. 다만 그동안 지켜지지 못했을 뿐이다. 광장의 힘으로 낡은 정치를 바꾸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는 우리 생활, 우리 일터의 낡은 질서를 바꿀 차례다. 다같이, 쉬었다 가자!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상임연구원 조원섭


  • 서지정보

Ali Fakih. (2017). What determines vacation leave? The role of gender. Bulletin of Economic Research. Retrieved from http://onlinelibrary.wiley.com/doi/10.1111/boer.12114/full

  • 참고자료

한겨레 건강렌즈로 본 사회 “휴가 땐 일을 잊어야 ‘진짜 휴가’” (http://health.re.kr/?p=1834)
시민건강이슈 2012-여름특집 “다같이, 쉬었다 가자!” (http://health.re.kr/?p=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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