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민영화? 아니 사영화(私營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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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가 다시 등장했다. 두 가지 교통문제가 우연히 같은 때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수서에서 출발하는 KTX와 서울메트로 9호선.

더 말하기 전에 우선 ‘민영화’라는 말부터 바꾸자. 언론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민영화라는 말을 쓰지만 우리는 이 말이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민영’이라는 말은 아마도 ‘국영’이나 ‘공영’에 견주어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쓰인 민영이라는 말은 현실을 가리고 진실을 비튼다. 공공성이나 공익이라는 가치판단을 ‘공(公)영’에 포함한다면 ‘민(民)영’은 가당치 않다 (민주, 민생, 민중과 같이 ’민‘이 들어간 말을 생각하자). 우리가 제안하는 대안은 ‘사영화(私營化)’이다. 영어의 privatization(영국식 영어로는 privatisation)을 우리말로 옮기더라도 이 쪽이 더 정확하다.

철도와 지하철의 사영화가 어떤 문제를 일으켰고 또 일으킬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안다. 지하철 9호선은 황당한 요금인상을 계기로 그 사이 진행된 사영화 과정의 실상이 일부 드러났다. 탐욕에 가득 찬 자본과 이에 맞장구를 친 서울시(정부)의 합작품이 사영화된 지하철의 기막힌 모습이다. KTX를 사영화하겠다는 것은 아예 이해하기도 어렵다. 요금이 내려간다는 소리는 무엇인지, 경쟁을 촉진하여 서비스를 개선한다는 주장은 또 무엇인지 도무지 요령부득이다.

현재로선 KTX 쪽이 운이 나쁜 것 같다. 현 정부는 시장이 만능이라는 믿음으로 밀어붙이지만 지하철 요금 인상에 데었는지 국민들의 여론이 좋지 않다. 경쟁과 효율, 더 좋은 서비스, 싼 요금이라는 약속을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상황이 달랐다면? 정부 입장에서 그리 운이 나쁘지 않았다면 KTX 일부를 민간 기업에 넘기는 일은 훨씬 쉬웠을 것이다. 걸핏하면 사고에다 요금은 점점 비싸지는데 민간에 맡기면 더 잘 할 수 있다. 서로 경쟁하면 서비스는 좋아지고 요금은 싸진다. 대강 이런 논리로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지 않았을까? 태백선이나 경전선, 경원선 같이 만성 적자노선을 이용하는 사람이나 요금 혜택이 있는 장애인, 노인, 학생이 아니라면 혹할 수도 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추진한다고 하니, 또 무슨 이상한 논리가 동원되는지 보자.

이번에 철도와 지하철이 도드라졌지만 사영화는 여러 곳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인천공항 매각을 둘러싼 시비는 유명하지만, 청주공항 운영권은 잘 모르는 사이 지난 2월에 이미 민간기업에 넘어갔다. 우리은행과 산업은행도 논란이 뜨겁다. 주목해서 볼 것은 사영화의 경과와 진도가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다른 사정도 있겠으나, 사회적 관심, 동의와 비판, 저항과 수용의 힘이 각기 다르다. 앞으로도 인천공항은 반대 목소리가 더 클 것이고, 은행은 좀 더 쉬울 것이 틀림없다.

사영화를 둘러싼 찬성과 반대로 볼 때, 인천공항 매각을 반대하는 여론은 예외적이라고 할 만하다. 공공과 공기업은 흔히 비효율과 낮은 경쟁력으로 상징되는데 반해 인천공항은 거기에서 벗어나 있었기(또는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진작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사적 체계에 편입된 대한항공공사(대한항공), 대한석유공사(SK에너지), 한국통신(KT), 포스코,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 등은 공공의 ‘실패’를 중요한 명분으로 내세웠다. 앞으로 KTX도 적자와 인건비, 안전사고, 이용자의 불만을 내세우면서 공공이 “돈의 가치(value for money)”를 구현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거듭 강조할 것이다.

사영화의 근거는 시장과 효율성이라는 한국 사회의 지배적 담론을 충실하게 따른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효율성을 ‘돈벌이’라는 아주 좁은 기준으로 정의하더라도(사실 좁게 정의한 것이 아니라 잘못 정의한 것이지만) 사영화가 더 효율적이라는 근거는 빈약하다(지금은 인천공항 사례가 유용하게 쓰인다). 그래서 효율성 주장은 대부분 근거가 아니라 ‘믿음’에 의존한다. 사영화 실패(예를 들어 영국의 철도)를 비판하면, “더 완전한 사영화”와 “더 철저한 시장경쟁”이라는 근본주의적 대응이 돌아온다.

더구나 효율성은 이익이나 돈벌이라는 목표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치를 얼마나 잘 성취했느냐를 따지는 기준이다. 미국의 영리병원이 돈을 더 번다고 해서, 질과 안전을 희생한 채 얻은 이윤을 효율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제대로라면, 어떤 목표(예를 들어 정의나 평등, 삶의 질, 의료의 질)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달성했는가를 묻는 것이 효율성의 진정한 의미이다. KTX 문제로 다시 돌아가면, 이윤, 서비스와 질, 안전, 국민의 권리보장, 어느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사영화가 효율적인가?

사영화는 효율보다 더 근본적 문제를 제기한다. (본래 그렇지 않던) 많은 인간활동과 사회적 관계를 상품과 화폐가치로 바꾼다는 것이다. 폴라니(Polanyi)의 말대로 인류는 시장 방식으로만 노동분업 활동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영화는 시장에서 멀던 것을 시장 속 깊이 밀어 넣고, 돈으로 바꿀 수 없던 것들을 화폐가치로 바꾸어낸다. 샌델(Sandel)의 표현을 빌리자면, 살 수 없는 것(예: 사랑)과 사고 팔아서는 안 되는 것(예: 장기)까지 상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KTX는 사영화될수록 (삶의 가치이자 권리일 수 있는) 사람들의 이동을 화폐가치로 볼 것이며, 보건의료는 영리화될수록 병과 아픔을 돈벌이의 기회로 여길 것이다. 노인의 일상생활을 사회적으로 돕는다는 장기요양도 사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상품교환과 영리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것도, 지식을 얻고 나누는 것도, 인터넷도, 건강관리도 이제 모두 상품이 되었고, 그리하여 경제적 능력에 좌우되게 되었다.

모든 것을 상품과 돈으로 바꾸어내는 경제사회 구조가 조만간 “거대한 전환”을 할지는 불확실하다. 자본주의의 조정 능력을 결코 낮추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상품화된 인간활동과 사회적 관계가 다시 본래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면, 사고 팔아서는 안 되는 것들을 공공화(또는 재공공화)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 참고
– 앤드루 머리(오건호 옮김). 탈선. 이소출판사, 2003.
– 칼 폴라니(홍기빈 옮김). 거대한 전환. 길, 2009.
– 임준 외. 의료 사유화의 불편한 진실. 후마니타스, 2010.
– 마이클 샌델(안기순 옮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와이즈베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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