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DRG 논쟁을 시민의 관점에서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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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시행을 앞두고 뒤늦게 DRG 논쟁이 뜨겁다. 텔레비전 심야 토론 프로그램이 보건의료 문제를 다룬 것이 얼마 만인가.     

 
하지만 논쟁은 너무 늦었다. 제도 시행을 코앞에 두고 이제야 전후 사정을 따지는 것은, 그 사이 경과가 어찌 되었든, 전형적인 ‘한국병’이다.
 
그러나 기왕 사회적 관심사가 되었으니, 미래를 위해서라도 몇 가지 사항을 짚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있을 수 있으므로, 그 때도 적용될 공통된 원칙을 생각해 보는 것이기도 하다.    
 
첫째, 새로운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언뜻 낭비와 소모전인 것 같지만, 더 좋은 정책결정을 배우고 경험을 축적하는 기회로 삼자. 
 
DRG는 현재의 진료비 지불제도(보통 ‘행위별수가제’라고 한다)에 손을 대는 첫 시도라고 해도 좋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단군 이래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제도라면, 논쟁과 갈등은 당연하다. 
 
민주적 정책 결정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토론 없는 만장일치는 가당치 않다. 가장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정치체제가 민주주의 체제라고 하지 않던가. 사회적 가치와 이해관계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면, 민주적 정책결정의 ‘비효율성’을 감수해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만들어지는 데에 이번 논쟁이 기여하기를 바란다.   
 
<지난 6월 16일 SBS 심야토론 (출처: 의약신문)>
 
 
둘째, 경쟁하는 대안을 둘러싼 논쟁이 되기를 희망한다. 
 
바람직한 논쟁이 되려면, 특히 정책 논쟁인 경우에는, 막무가내 주장이나 감정 토로가 아니라 ‘대안’ 사이의 경쟁이 되어야 마땅하다. 
 
정부는 (조금 명확하지 못한 점이 있지만) 과잉 진료를 줄이고 진료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대안으로 DRG를 내놓았다. 그렇다면 반대측은 이와 경쟁할 수 있는 대안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옳다. 
 
물론, 현재의 제도(행위별 수가제)를 그대로 두는 것이 대안이라고 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정부가 대안의 전제로 삼고 있는 문제(예를 들어 과잉진료, 의료비 지출 증가 등)를 아예 부정할 수도 있다. 그러면, 논쟁은 지금 제도를 고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옮겨간다.  
 
우리는 현재 진료비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는 국민이 누리는 편익에 비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부작용이 심하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합리적 판단이라고 믿는다. 
 
DRG 반대론자들은 새 제도의 부작용을 말하지만, 지금 제도의 부작용과 비교해야 균형이 맞다. 현재의 진료비 제도가 DRG라는 대안과 비교해서 문제와 부작용이 적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흔히 새로운 제도는 비용이 들고, 실패하면 더 큰 값을 치른다고들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새 정책의 비용을 피하기 위하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낡은 제도가 매일 익숙하게 만들어내고 있는,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엄청난 비용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DRG가 가장 좋은 대안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7개 질병군을 대상으로 하는 ‘부분적’ DRG 제도 시행을 반대하지 않는다. 현재 시점에서, 그리고 현재의 보건의료 여건을 전제로 할 때, 여러 가지 대안 중 하나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미 다른 논평(http://health.re.kr/bbs/board.php?bo_table=b003&wr_id=33)을 통해 언급했지만, 더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정책 결정이 되어야 한다.                
 
정부는 보건의료미래위원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포괄수가제 발전협의체 같은 곳에서 나름 오랜 논의를 거쳤다고 주장할 것이다. 시민소비자단체나 지금 반대하는 당사자인 의사협회도 참여했으니 그렇게 말할 만도 하다. 
 
그러나 보통의 시민과 대중은 여전히 잘 모르고 판단하지 못한다. 100분 토론, 심야토론이 그나마 학습과 소통의 장이지만, 소외되고 배제되긴 마찬가지다.    
 
DRG 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복잡하고 어렵다. 보통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를 수밖에 없다. 4대강이나 FTA도 어렵지만, 이건 어려운 정도, 이른바 ‘전문성’의 수준이 다르다. 
 
그러나 전문성은 참여적 결정을 막는 결정적 이유가 될 수 없다. 결정의 결과가 시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 관점과 시각, 원하는 바, 그리고 참여의 과정 자체가 소중하다. 또한 의사결정에 필요한 전문성은 학습과 토론을 통해 함양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지만, 실질적 참여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정확하고 필요한 정보가 있어야 하고, 서로 다른 의견이 균형을 맞추어 제시되어야 하며, 학습과 토론, 숙고가 필요하다. 
 
또한 의견과 주장은 합리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고, 참여하는 사람들은 양심적, 이성적으로 그리고 공익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누가 설계하든 참여가 제도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앞에서 말한 원칙들이 DRG 정책에 적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앞으로 보건의료 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더욱 많아지고 다양해지며 격렬해질 것이다. 
 
그럴수록, 합리적 대안에 기초한 민주적 결정이 사회적 의사결정의 기본 패러다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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