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안전과 건강 – 정부 시스템을 넘어 사회 시스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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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은 다르지만 둘 다 ‘후진국’형 사고다. 이대목동병원의 신생아 사망 사건과 제천의 화재. 조사가 끝나면 자세한 원인과 경과가 드러나겠지만, 무언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고 관리되지 않아 이런 참담한 결과가 빚어진 것이 틀림없다.

작게는 사람들이 잘못하거나 실수를 저질렀을 것이다. 지켜야 할 규칙을 지키지 않거나 잘 모르고 엉터리로 일을 했을 수 있다. 또는 제대로 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직원이 너무 적거나 일이 힘들면 뻔히 알면서도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질병관리본부의 혈액검사에서 사망한 환아 3명에게서 유전적으로도 완전히 동일한 ‘시트로박터 프룬디’가 검출되고, 환아 4명 모두 동일한 영양수액 처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인은 ‘세균감염’ 또는 ‘의료과실’에 무게가 실리는 중이다.”(기사 바로가기)

현상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이 중요하다면, 실수, 오류, 잘못, 무지, 태만 등에서 끝나지 않고 그 원인까지 살펴야 한다. 의료 인력의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사람이 없거나 적은 것, 시설이나 장비가 문제가 있는 것, 관리가 부실한 것 등이 모두 ‘중간’ 원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원인이 개별적이고 우연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 직결된다는 것.

 

 

시스템이라고 해서 바로 건강보험 수가나 대학 교육, 의료인의 자세로 비약하지는 말자. 그동안도 일부는 무사했고 다른 병원이나 시설이 모두 그런 사고를 겪는 것도 아니다.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가까운 작은 시스템이 있고 멀고 좀 더 근본적인 큰 시스템도 있다. 상위-하위 시스템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작은 시스템은 독립적이 아니라 상위 시스템, 큰 시스템에 영향을 받는다. 직원을 몇 명이나 두어야 하는지 법 규정을 따라야 하고, 시설 점검을 얼마나 어떤 간격으로 해야 하는지도 마찬가지다. 돈을 둘러싼 시스템도 위계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병원이 직원과 시설을 배치하는 데는 돈이 들고, 개별 병원의 재정 능력은 건강보험제도와 수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번 병원과 스포츠센터의 사고 또한 큰 시스템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신생아 사망 사건의 연원을 추적하면 반드시 한국의 의료체계와 건강보험체계에 닿는다. 스포츠센터 화재와 소방에 지난 정부의 규제완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치다.

“신생아중환자실의 담당 의료진을 상대로 병상수와 인력, 장비, 설비, 특수치료 여부, 협진 현황 등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1년과 견줘서 의료인력과 장비의 절대 수는 늘었지만, 증가한 병상수에 걸맞은 합당한 인력과 장비는 보충되지 못했다.”(기사 바로가기)

“”이명박 정부가 도시형 생활주택 공급을 활성화시킨다며 건축기준, 국민안전과 직결된 규제를 대거 완화했다”면서 “건물 진입도로 폭을 6m에서 4m로 줄이고, 10층 이하 건물에는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도 없었다”고 지적했다.”(기사 바로가기)

 

큰 시스템의 문제를 부인할 수 없다. <서리풀 논평>은 이 시스템의 문제를 꾸준히 지적했고 근본 개혁이 있어야 함을 주장했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때가 그러했고, 경주 지진 때도 같은 시각에서 접근했다. 공공보건의료, 응급의료, 중증외상센터 또한 마찬가지다.

 

정치 상황이 바뀌었지만, 이번 사건에서 비롯된 문제의식도 그때와 비슷한 점이 크다. 2015년 11월 9일 <서리풀 논평>에서 한 주장의 일부를 옮긴다.

 

“공중보건 위기대응체계, 방역체계, 감염병 관리체계, 또는 다른 그 무엇으로 불러도 좋다. 메르스에 ‘꽂힌’ 좁은 대책이 아니라 다른 위기의 가능성까지 열어둔, 그야말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를 다시 제기했다….(중략)…메르스와 폐렴을 시스템의 문제로, 그리고 정치의 문제로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힘이 될 수 있다고 다시 주장한다.”(논평 바로가기)

 

한국에서 거시 시스템은 주로 국가와 중앙정부 차원에 상응하고 지금까지 우리의 주장도 주로 이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 두 가지 사고는 어떤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중앙정부의 대응에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을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의 ‘국소성’과 시스템의 범위가 서로 맞지 않는다.

 

거시 시스템 또는 국가 시스템만으로는 ‘시스템 갖추기’나 ‘시스템 고치기’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뜻이다. 새로운 도전, 아니 잠재되어 있었지만 그동안은 잘 드러나지 않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던 문제다. 바로 세부∙하부 시스템이라는 과제. 세부 또는 하부라고 하지만, 사실 이는 시스템에 포함된 것이니, 시스템의 완전성 또는 완결성의 문제라 해야 한다.

 

그 세부 시스템은, 다른 말로 ‘더 나은 시스템’은, 중앙을 넘어 지역으로, 정부 영역을 넘어 민간에 이른다. 지역까지 포괄하는 시스템은 굳이 설명을 보탤 필요가 없으니 생략한다. 문제는 국가와 정부 영역을 벗어난 곳에서의 시스템.

 

민간을 포괄하는 시스템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시장이다. 애덤 스미스를 흉내 내자면, 굳이 강제하고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이익을 위하여 누구는 쌀을 생산하고 누구는 신발을 만든다. 하지만 병원의 사고와 화재는 시장을 통해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어려운, 이른바 시장 실패의 영역이다.

 

사회적 의미에서의 시장 실패는 경제학적 규정보다 더 광범위하다. 헤겔은 <법철학>(임석진 옮김, 한길사 펴냄)에서 사회를 가족-시민사회-국가의 세 주체로 파악하는데, 그가 이해하는 ‘시민사회’는 경제 또는 시장에 가깝지만 그 이상이다. 그는 ‘인륜’이라는 시각에서 시민사회의 딜레마를 이렇게 표현한다.

“시민사회는 …욕구의 대립과 착종 상태 속에서 과잉과 빈곤의 무대로 화하여 양자 모두에게 공통된 육체적∙도덕적인 퇴폐성을 드러내기에 이른다.”(359쪽)

 

‘교정’도 시장 실패의 차원을 넘는다. 시스템 시각에서 보면, 지금까지 시스템이 주로 ‘국가’에 대한 것이었으면, 이제 ‘시민사회’를 어떻게 시스템에 포괄할 것인지가 우리의 관심이다. 예를 들어 병원과 스포츠센터가 어떻게 사회적 ‘안전 시스템’ 또는 ‘건강 시스템’에 편성될 수 있을까 하는 것. 그 시스템은 단지 규정과 매뉴얼이 아니라, 가치, 규범, 행동을 모두 포함한다(그런 의미에서 시스템은 ‘레짐’일 수도 있다).

 

이미 작동하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의료인은 법과 처벌이 아니어도 공식∙비공식 교육을 통해 양질의 의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배우고 그런 규범과 가치를 내재화한다. 소방차가 출동할 때 운전자들이 길을 비키는 것은 사회적 규범이다.

 

이를 포함하여 또는 이런 수준을 넘어 시장, 조직, 개인을 규율하는 포괄적인 안전과 건강 시스템이 어떻게 구축될 수 있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폴리스론’에서 말하듯 종교, 풍속, 위생, 교육 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할지도 모른다(<폴리스로서의 교육>, 시로즈 히로노부 지음, 정규영 옮김, 학이시습 펴냄).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시민사회와 상호작용 관계에 있는) 국가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통치’로 보면 국가의 역할은 논쟁적이지만, 그 역할은 단지 제도와 법률의 조건을 갖추는 것, 자기 시스템을 완비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가족과 시민사회가 안전과 건강 시스템에 편입되도록(또는 구축하도록) 지원하고 지지하는 것 또한 국가의 역할이다.

 

이때 국가가 어떤 국가여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회적 국가, 그리고 ‘새로운 국가’ 또는 ‘되찾은 국가’라는 것(논평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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