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응급의료, 공공이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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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8월부터 전문의만 응급실 진료를 할 수 있게 응급의료법을 개정한다고 했다가 다시 한 번 난리가 났다. 당직 전문의가 병원 안에 대기해야 하는가, 또 3년차 이상 레지던트가 전체 당직의 1/3 이상을 응급실 당직을 서야 하는가가 말썽을 일으켰다. 
 
우여곡절 끝에 의무규정을 줄여서 봉합을 했지만, 의사나 병원의 걱정은 말끔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당장 지방 중소병원에서는 차라리 응급실을 없애겠다는 소리가 나오는 모양이다. 
 
응급의료라고 하면, 얼마 전 일인에도 벌써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 있다. 작년에 한참 언론을 장식했던 석해균 선장 사건을 기억하는가? 
 
기억을 되살려 보자. 당시 석선장의 총상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중증외상 전문병원을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전문의 한 사람이 마치 영웅처럼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1년 1월 30일, 아주대 병원에 도착한 석해균 선장과 이국종 교수의 모습 (출처: 뉴시스)> 
 
그 다음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대로 정부가 나설 차례다. 2016년까지 2000억원을 들여 전국에 중증외상센터 16곳을 설치한다고 발표한 것이 작년 10월. 
 
이 계획은 사실 역사가 있었으니, 2009년에 세운 응급의료 선진화계획을 고친 것이었다. 처음에는 6개 권역에 각각 1,000억 원을 투자해 외상센터를 건립하겠고 계획을 세웠다.   
 
사건 이후에 내놓은 계획이 처음과 달라진 이유는 돈줄을 쥔 기획재정부가 이미 퇴짜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는 으레 단골로 등장하는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경제성이 낮게 나왔다는 것이 이유다. 참고로, 4대강 사업은 재해예방을 명목으로 아예 타당성조사를 면제받았음을 기억할 것. 
 
그나마 복지부가 작년 10월 대책을 내놓은 이후에도 속도를 거의 내지 못했다. 지난 5월이 되어서야 우여곡절 끝에 재정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아직도 갈 길은 멀고 그리 쉬운 것 같지도 않다. 센터를 몇 개나 만들지 겨우 정해졌지만, 기본방침 자체가 튼튼해 보이지 않는다. 재정지원 규모도 제대로 된 센터를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이대로라면 중증외상센터가 언제 제대로 만들어질지 기약할 수 없다. 앞으로도 비슷한 사건과 비슷한 반응이 되풀이되지 않을지 의심스럽다. 
 
아직 진행 중인 응급실 문제와, 아마도 용두사미가 될 것 같은 중증외상센터 설치, 이 두 가지 사례를 꺼낸 것은 지금 응급의료가 가진 문제를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짐작할 수 있듯이 이 현상들은 같은 뿌리에서 비롯된다.   
 
첫째, 응급의료를 건강권(인권)과 건강정의의 차원에서 보지 않는다. 대표 격이라고 할 것이 앞에서 말한 예비타당성조사이다. 
 
조사에서는 비용편익분석(경제성 분석) 결과를 핵심논리로 삼아 예산을 투입할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나마 경제성 분석에 추가한 것이 정책적 분석인데, 지역균형발전 분석과 정책의 일관성과 추진의지, 위험요인 같은 항목이 차지하고 있다. 
 
경제적 관점 이외에는 타당성을 가름하는 판단이 개입할 틈이 거의 없다. 이런 논리로는 인구가 적거나 노인이 많은 지역은 어떤 재정투입도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생사가 갈리는 응급상황에서 적절한 도움을 받는 것은 기본적 권리이자 정의의 문제이다. 권리를 제대로 충족하고 불평등을 얼마나 줄이는가가 판단의 일차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   
 
둘째, 민간과 시장이라는 기본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을 시장에 의존하는 의료체계에서조차 응급의료 만큼은 그렇게 할 수 없는데도 그렇다.
 
앞에서 본 것과 같이, 응급실의 인력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정책방침에 일부 중소병원은 응급실을 없애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응급의료를 ‘시장’이라고 하면 이 시장 참여자는 지극히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33조에는 응급환자를 위한 예비병상을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그 병상 수는 허가병상의 1%에 이른다. 짐작할 수 있듯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문제는 비워 놓을 병상의 운영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이다. 대기해야 하는 의료진에 들어가는 비용도 마찬가지다. 아주 가끔 필요한 응급 헬기에 이르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일부에서는 건강보험 진료비를 더(또는 아주 특별하게) 인상하는 것을 이야기하지만, 민간기관이 경영수지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금과 예산으로 일부를 지원하는 것도, 지금까지 늘 봐 왔듯이 딱 그만큼, 일부분을 넘지 못한다. 
 
기본체계마저 허술한 마당에 질을 올리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렵다. 응급의료에서 시장은 늘 실패한다. 
 
그렇다면, 민간 위주의 의료체계가 그대로라도 응급의료 만큼은 공공의 ‘섬’이 될 수도 있다는,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응급의료는 국가와 공공부문이 쓰고 투자하고 모두 책임지는 것으로, 개념과 ‘멘탈’을 바꾸자. 
 
1948년 영국의 보건부 장관 자리에 있던 아뉴린 베번은 한국에도 꽤 알려진 유명인사다. 찬양과 혹평이 엇갈리는 영국 국영의료체계(NHS)를 출범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새로운 제도가 영국 국민을 ‘공포로부터 해방(freedom from fear)’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말한 네 가지 자유(해방) 중 하나와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일상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응급 상황에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거대한 공포다. 내재화된 바람에 은밀하게 숨어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공포를 넘어, 안심할 수 있는 사회에 가까워지려면 응급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권리로, 그리고 공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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