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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지 않은 사회, 우리가 원하는 보건의료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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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연구통] 평등해야 건강하다?

평등하지 않은 사회, 우리가 원하는 보건의료의 모습은?

 

김 선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

 

사회가 불평등할수록 여러 질병의 유병률이 높고 기대수명 역시 낮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미국과 같이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 그 영향은 더욱 분명하다 (관련 자료: <건강 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 <평등해야 건강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불평등이 공적 지출을 막는다는 것이다.

보건의료와 같이 공적 지출의 역할이 큰 분야에서 이러한 설명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넉넉한 경제 수준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보건의료 제공에 인색한 미국 사례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 보편적 보건의료 제공을 위한 공평한 (누진적) 조세/보험료 부담은 지지를 얻기 어렵다. 개인화, 시장화된 보건의료체계는 건강 불평등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전체 건강수준도 낮춘다.

보건의료는 건강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지만, 강력한 일차의료는 불평등의 부정적 건강 영향을 줄일 수 있다. 취약 집단도 접근 가능하고, 치료보다는 예방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건강 문제를 조기에 관리하는 한편 불필요한 전문 의료 이용에 따른 건강 피해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자료: <Primary Care>).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이러한 ‘가능성’은 최근까지도 검증되지 않았었다. 최근 보건학 분야의 권위 있는 학술지 중 하나인 <사회과학과 의학 Social Science and Medicine>에는 이러한 가능성을 검증하는 탐색적 연구가 실렸다. 벨기에 겐트 대학 연구팀의 “유럽 내 소득 불평등과 건강의 연계, 일차의료의 강도 차원을 더하기”라는 논문이다.

연구진은 소득 불평등이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강력한 일차의료는 이러한 영향을 완충할 수 있다는 가설을 검증해 보고자 했다. 유럽 내 국가별 일차의료의 강도를 측정, 비교할 수 있는 유럽 일차의료 모니터 (European Primary Care Monitor) 자료를 사용했다.

분석의 단위는 국가로, ① 소득 불평등 (지니계수로 측정), ② 건강 수준 (출생 시 기대수명/영아 사망률/자가 평가 건강/정신적 행복 4가지 방법으로 측정), ③ 일차의료의 강도 (<표>와 같이 측정) 자료가 가용한 총 24개 국가가 분석에 포함되었다.

수준 차원 의미
구조 거버넌스 옹호, 규제, 정보의 수집과 사용을 통해 영향을 발휘하는 건강정책의 비전과 방향
경제적 조건 보건의료의 재원조달과 지출, 일차의료 인력의 소득과 보상
인력 개발 일차의료 제공자의 현황, 보건의료체계에서의 위치
과정 접근성 일차의료 서비스의 가용성, 접근가능성, 구매가능성, 수용가능성
지속성 시간에 따른, 정보적, 관계적 지속성
조정 일차의료 제공자가 다른 수준의 보건의료 이용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
포괄성 환자들의 보건의료 필요를 충족시키는 가용한 일차의료 서비스의 범위
출처: Kringos (2012); Detollenaere et al. (2018)에서 재인용

 

 

분석 결과, 강력한 일차의료는 그 자체로 건강 수준을 증진시키며, 소득 불평등의 부정적 건강 영향 역시 완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예컨대 소득 불평등이 높으면 영아 사망률이 높아지고 기대수명과 정신적 행복이 낮아지지만, 일차의료의 구조와 지속성을 강화함으로써 이러한 영향을 줄일 수 있다.

한편 일차의료의 포괄성에서는 반대의 경향, 즉 소득 불평등의 부정적 건강 영향을 도리어 악화시키는 것을 확인했다. 저자들은 이에 대해 반대방향의 인과 관계로 설명했다. 넓은 범위의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는 국가에서 고가의 서비스를 부유한 환자만 이용하고 취약 집단은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 일차의료의 포괄성 (가용한 서비스의 범위)은 소득 불평등의 부정적 건강 영향을 줄이기보다는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미국의 사례를 들었지만,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지지도와 보험료 인상에 대한 순응도는 같지 않다. 개인화, 시장화된 보건의료체계는 예방보다는 치료에, 일차의료보다는 전문 의료에 더 많은 자원을 소모하고 있다. 그 피해는 모두에게 돌아가는 중이지만, 취약 집단에서는 더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은 ‘문재인 케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세간의 관심을 얻고 있지만, 보건의료체계, 특히 일차의료에 대한 관심은 그에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불평등한 사회, 시장적 보건의료체계를 유지한 상태에서는 보장 서비스의 확대만으로 건강 수준 개선, 건강 불평등 완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우리가 원하는 보건의료는 어떤 모습인가? 개헌 국면, 그리고 「일차의료 발전 특별법」이 발의된 상황에서 오는 월요일 (3/5) 오후 2시, “건강권 보장과 바람직한 일차보건의료”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린다. ‘전문가’들 손에만 맡기지 말고 우리도 목소리를 내보자. (행사 안내와 의견 작성 바로가기)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통通’에서 매주 금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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